2006. 4. 16. 00:12ㆍ야단법석
부처님의 거시기
부처님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하시고 누어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마지막 유촉으로 “내가 살아 있을 때나 내가 간 뒤에는
스스로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고 했다.
아난은 부처님과는 속세의 친척으로 조카뻘에 해당된다. 그래서 애정이 각별하여 근심과 슬픔에 빠져 더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니로두 장로가 이렇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대는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지킬 사람이다.
범부들과 같이 스스로가 근심의 바다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온갖 유위법은 모두가 무상한 모습이다. 그대는 너무 근심치 말라.”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에 모든 제자들도 비탄에 잠겨 모두가 부처님을 따라 열반에 들려고 했다.
이때 가섭존가 대중들에게 고했다.
가섭존자는 가장 연장자로 부처님이 열반 한 신 뒤 교단을 이끈 사람이다.
“불법이 멸하려 한다. 부처님은 세 아승지 겁 동안 갖가지로 애쓰면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을 배워서 얻으셨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그의 제자들로서 법을 알고, 법을 지키고, 법을 외우는 이들도 모두 부처님을 따라 열반에 들려한다면 미래의 중생들이 매우 가엾다. 지혜의 눈을 잃어 어리석은 소경이 되리니, 부처님의 크신 자비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들도 본받아야 됩니다. 모름지기 경장을 결집해 놓은 뒤에야 열반에 드십시다.”
그래서 대중들이 이 제안을 받아드려 모두가 모였다.
그때 가장 연장자인 가섭존자가 그들 중 천명의 사람을 선정 했는데 아난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신통력까지 지닌 아라한들이었다. 그리고 보름날 계(戒)를 설할 때 가섭은 선정에 들어가 이 대중 안에서 번뇌가 다하지 못한 자가 혹시 있나 해서 살펴보았다. 혹시나 아직 번뇌의 때를 씻지 못한 자가 있다면 이를 쫓아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살펴살펴 보았더니 오직 아난만이 다하지 못했고 나머지 9백9십9명은 모든 허물이 이미 다하여 때가 없이 청정하였다.
가섭존자가 아난에게 번뇌를 끊기 전에는 여기에 머물지 말 것을 지시하며 그가 저질은 몇 가지 <돌길라> 죄를 예시했다. <돌길라>는 승가에서 추출되는 가장 가혹한 벌인 <바라이>죄 다음에 해당되는 벌로서 몸과 말로써 계율을 범한 자에게 내리는 처벌에 속한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뜻에 반하여 여인의 출가를 부처님에게 권한 일, 부처님의 승가리를 밟은 일 등 모두 5가지 열거하면서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의 음장상(陰藏相: 거시기)을 여인들에게 보였으니 이는 지극히 창피스러운 짓이며, 돌길라 죄 중 가장 큰 돌길라 죄를 저질렀다고 꾸짖었다.
요즘 군인들의 누드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 보라. 2500여 년 전에, 그것도 일반 대중이 아닌 부처님의 거시기를 여인들에게 보여주었으니 그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아난은 생각이 달랐다. 아난이 이에 답하기를
『그때 내가 생각하기를 ‘이 여자들이 부처님의 음장상을 보기만 하면 문득 자신들의 여자 꼴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남자로 태어나기를 희망하여 부처님의 상호를 받을 갖가지 복덕을 닦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오늘 날 그 어떤 큰절의 큰스님이라도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여성인권운동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박한 일반 여인들로부터도 몽둥이세례를 받거나 네티즌들에게 몸살을 앓을 것이다.
사실 작금의 세태는 변하고 있다. 남녀의 평등문제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호모>나 <레즈비언>의 문제도 그렇고, 심지어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 하는 문제도 이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공공연히 그 정당성을 따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다. 가섭존자가 만약 오늘날까지 살아서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열반에 일찍 든 것을 백번 잘했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오늘날 우리들 사회는 산업과 문명사회가 부여하는 기계의 편리함과 복잡한 일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력도 좋아진 반면에 반대로 그 일과 스트레스 때문에 건망증도 그기에 비례하여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번보고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여인들은 몇 십 년 전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 헤어스타일, 값비싼 귀걸이나 목걸이, 밍크코트 등 의상에 대한 기억이나, 결혼기념일, 생일 등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남자들 또한 코 흘리게 시절에 한 망나니짓이나, 군 생활에 일어난 잡다한 일까지도 환갑, 진갑에 이르도록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어느 날 갑자기 까막케 잊혀지게 된다. 그런데 한번 보기만 하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무덤에 가기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그것이 바로 <남녀(男女)의 상(相)>이다. 한번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은 다 잊어버려도 한번 본 사람은 그 사람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식하고 기억한 것도 아닌데 그것은 영원히 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이 삼삼매(三三昧) 중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남녀의 상’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모든 상(相)을 다 벗어나도 이 남녀의 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무상삼매에 들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남녀의 문제, 이는 중생이 중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영원한 숙제요, 난제가 분명하다. “악마는 아랫도리를 좋아한다.” 는 서양의 말처럼 거시기 문제는 중생이 중생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진정 번뇌와 희론의 요람이란 말인가?
그래서 <사십이장경>에,
『이성에 대한 욕망보다 강한 애욕은 없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그 크기가 끝이 없다. 다행히도 그것이 하나이기 망정이지, 만약 둘이었다면 천하에 도를 닦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라고 했던가?
불자여,
『굶주림은 가장 큰 병이며,
육체는 고통의 근원이다.
이를 분명히 깨닫게 되면 그대는 알 것이다.
니르바나, 그것만이 최상의 기쁨이라는 것을』
<법구경>의 이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며 살자.
'야단법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것 (0) | 2006.04.22 |
---|---|
사랑으로 일어서라 (0) | 2006.04.16 |
필경공(畢竟空) (0) | 2006.04.15 |
주인공을 찾아 가는 길(1) (0) | 2006.04.06 |
주인공을 찾아 가는 길(2) (0) | 200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