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

2006. 3. 22. 22:51야단법석

 

 

마음의 여유


날이 더우면 땀이 납니다.

땀이 나는 것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생리적인 현상은 마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땀이 나서 덥다고 여기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바꾸면 됩니다.

열심히 일하거나,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땀이 비 오듯 쏟아지더라도 오히려 시원한 감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생리적인 현상을 조절할 수는 없지만

감정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로애락은 감정입니다.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마음을 바꾸면 희로애락의 감정은 바뀌게 됩니다.


일찍이 부처님은 8가지 고통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했습니다.

태어난 이 육체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태어남 - 이는 마치 생리적인 현상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마음으로 조절할 수도 없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업으로, 인연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모든 삶은 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인연으로, 그 업으로 지어지는 희로애락은 마음의 문제가 됩니다.

그럼으로 삶 그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삶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바꿀 수 있습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무아>의 이론도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 번뇌, 고통 이 모든 것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은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듯이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은 그 실체가 없습니다.

단지 마음이 지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으로 마음을 거두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고,

마음이 흐트러지면 거기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심명>에 이르기를

       『미생적란(未生寂亂) 오무호오(悟無好惡)

         일체이변(一切二邊) 망자짐작(妄自斟酌)』

   (마음이 미혹에 빠지면 열반번뇌가 뒤 바뀌어 일어나고,         

        깨치면 좋고 나쁘고 가 없나니       

        일체의 분별망상을 스스로 망령되이 짐작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외로움이 엄습할 때 가까운 산이나

강가에서 허공을 바라보십시오.

그 허공이 어디에 있는 지를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풀어질 것입니다.

그 괴로움과 그 외로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불제자로서 사는 삶에는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악따구리 같은 사바세계가 불국토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공덕을 짓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기에는 그런 공덕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원(願)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서원(誓願)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소의 힘이 수레를 끌기에는 족하지만 마부가 있어야 목적한 곳에 이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옥 같은 이 사바의 세계를 깨끗이 만들고자 하는 서원도 그러합니다. 짓는 복덕(福德)은 소와 같고 서원은 마부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고난이 닥치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갈팡질팡하여 짓든 작은 복덕도 의심이 생기고 회의가 생겨 중도에 그만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자기 삶에 서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자님들은 기억하십시오. 죄와 복은 일정치 않으나 서원을 세운 이는 적은 복을 닦아도 그 원력(願力) 때문에 큰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십시오. 복은 그 갚음이 한량(限量)이 없고, 죄의 갚음은 한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원을 지닌 사람은 그 어떤 괴로움과 고통이 닥쳐와도 그 원력으로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음의 여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완연한 봄이 시작됩니다.

꽃샘추위도 지나가고 벚꽃나들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삶에 찌든 육신도 식히면서 마음의 열기도 식히면서 진정한 내 삶의 행복을 위하여 새롭게 피어나는 작은 벚꽃송이처럼 작은 서원하나 쯤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홍서원이나 여래의 십대발원문과 같은 거창한 서원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 한번 바꾸어 내가 처한 구석진 이 세상에 태양처럼 밝지는 않지만 조그만 등불이 되고, 내가 처한 이 황량한 들판에 재스민이나 라일락의 향기가 아니지만 비록 이름 없는 들꽃이라도 작은 향기를 뿜는 꽃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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