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相)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2006. 3. 19. 09:01붓다의 향기

 

 

 

 

상(相)에 집착을 버리자.


어느 작은 절에 한 처사가 찾아왔다.

몹시도 센시티브한 사람이었다.

이를 간파한 주지스님은

조그마한 플라스틱에 물을 담아 발을 씻으라고 갖다 주었다.

처사는 

“참으로 배려 깊은 친절한 스님이구나.”

하고 발을 씻고 잤다.


다음날 아침

주지스님은 또 그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담아 와서 세수를 하라고 했다.

처사가 보니 어제 자기가 발을 씻던 바로 그 그릇이 아닌가.

어제 발을 씻던 그 그릇으로 세수를 하려니

마음이 꺼림칙하여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주지스님이 말했다.

“[세수를 하지 않고 멀해?

빨리해야 그 그릇으로 아침밥을 담을 것이 아닌가?]”


우리의 삶이 맑지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와 사랑과 미움,

좋은 것과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다름 아닌 겉모양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상(相)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황금으로 만든 귀신이나, 황금으로 만든 부처가 무엇이 다른가?

둘 다 금일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금을 보지 못하고

상에 매달려 귀신을 보고, 부처를 보지 않는가?


우리는 아무런 감정의 느낌 없이 통나무는 깔고 앉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통나무로 사천왕을 만들고 부처를 만들어 놓으면

그때는 전혀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이란 상(相)에 매달리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상(相)에 매달리기 때문에

우리는 맑은 마음이 진실과 멀어지고

마음이 흐려져 미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탐욕과 명예,

이양(利養)과 과대망상과 편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똥묻은 컵은 씻어도 더럽다고 생각하면서

똥묻은 내 손은 씻어서 깨끗하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둘다 씻으면 그 깨끗함은 같은 것이다.

자기의 손은 씻으면 깨끗하고

대소변을 담았던 컵은 씻어도 깨끗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상(相)에 집착한 것이다.

남의 잘못은 보면서

자기의 잘못은 가리는 것은 모두가 아상(我相)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나>라는 상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생사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생(生) 쪽에서 보면 죽음은 생에 다가옴이고,

죽음에서 보면 생은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다.

생사는 보는 쪽에서 따라 달라지니 상(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옛선인들도, 부처님도

[생사(生死)는 일여(一如)하다]고 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상(相)만 보기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이다.

 

물을 보라.

물은 H2O 다. 두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로 되어있다.

그러나  H2O는 변하지 않는데

얼음이 굳고(死), 물은 유연(生)하지 않는가?


한 마음 돌려서

상(相)에 벗어나야 참 다운 진리를 볼 수가 있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이 일찍이 무상삼매(無相三昧)를 닦으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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