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기운 나무

2006. 2. 22. 08:07야단법석

 동쪽으로 기운 나무


화엄경에 이르기를 신심(信心)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신심은 모든 선근(善根)을 성장시키고 양육한다고 했습니다.

신심은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은 모든 종교에 공통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조금 다릅니다.


신심은 범어로 <프라사다(prasada)>라고 합니다.

이는 마음이 맑아지는 것, 곧 <심청정(心淸淨)>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이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똑똑히 알아서,

 그대로 실천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반드시 훌륭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이 말속에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뜻과,

따라서 확실히 아는 것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과,

그래서 좋은 말, 좋은 행위 등의 훌륭한 일들이 당연히 거기서부터 나오게 되는

가장 중요한 근원이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당연히 동쪽으로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동쪽으로 기운 나무가 서쪽으로 넘어 질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그것을 분명히 안다는 사실입니다.

둘은 알고 있기에 나무를 동쪽으로 넘어지게 하려면 동쪽으로 기울게 만들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셋은 그렇게 동쪽으로 기울 된 나무는 분명 동쪽으로 넘어지게 된다는 필연성에 의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원인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당연성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알고,

의심 없이 한 마음으로 노력하면,

그 결과를 분명히 내게 돌아온다는 것,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는 이 한마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교적 믿음이란 알지 못하면서도, 신비에 가려져 알지 못하면서 믿고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다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신비가 없습니다. <와서 보라>고 했지 <나를 믿어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그 가르침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면 의심이 먼저 없어지게 됩니다.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사라지면 당연히 노력하게 되고 또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물러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그럼으로 그 노력의 결과는 당연히 그렇게 알았던 것과 같이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붕이 허술하면 비가 새듯 마음에 이런 믿음이 없으면 의심은 끝없이 일어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런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진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런 믿음을 가지고 따른다면 어찌 서방정토인 극락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을 따르는 불제자가 어찌 부처님의 땅에 태어나지 어디에 태어나겠습니까?


우리들 중생의 삶은 나그네와 같습니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날이 저물어 여관에 묵듯,

우리가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아침이면 나그네가 다시 길을 떠나야 하듯

우리는 죽음이 찾아오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의지하여 하늘을 날듯

우리는 진리의 믿음을 날개로 삼아

영원한 저 니르바나 낙원으로 날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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