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로 본 사람의 인품
2025. 8. 1. 15:50ㆍ삶 속의 이야기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만남은 대화로 시작되고 대화는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는 말로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속이 깊다.”거나 아니면, “ 저 사람은 너무 가볍다.” 등등.
사람의 인품은 천차만별이지만 흘러가는 물과 같습니다.
사람의 인품은 부동(不動)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흘러가는 물과 같이 그 모양도 다양합니다.

첫 번째는 연잎의 물방울 같은 사람입니다.
동기회나 친목 단체의 모임에 가보면
으레 너스레 떠는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늘 말이 없던 친구가 한마디 합니다.
장황한 연설도 아니고 고작해야 두세 마디 간결한 말인데
찰나지만 그 말이 그 자리의 사람들을
모두 한순간 생각을 멈추게 하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물방울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방울이 연잎 위에 떨어지면
돌돌 굴러 모든 물방울이 하나로 뭉쳐집니다.
그 물방울이 햇살을 받으면 맑고 순수한 영롱한 빛을 띱니다.
물방울 같은 사람을 그런 사람입니다.
순수하고 맑은소리로 뱉어내는 이 짧은 응축된 소리는
초저녁 잠시 나타나는 금성과 같이
잠들어 있었던 의식을 일깨우는 듯
순간적이나마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은 간결하고, 말의 전후(前後)가 생략되어 있기에
그저 세속적으로만 살아온 사람들의 귀에는
금방 돌아서서 마치 이상한 이방인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외눈박이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외눈박이가 정상이고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물방울 같은 사람은 대중 속에서 외톨이가 되기도 합니다.
너스레 떠는소리를 하지 않고 함축된 짧은소리만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여울물 같은 사람입니다.
생각이 있는 듯하지만, 말이 버들처럼 흔들거리는 사람입니다.
분위기에 민감하여 거기에 얹혀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강물은 여울물이 모여서 강이 됩니다.
강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지만 얕은 여울물은 소리를 냅니다.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를 돋보이고 싶은 사람은
그래서 말을 많이 합니다.
생각 없이 자신을 드러내다 보니 분위기에 편승하게 되고
시류(時流)를 인용하여
마치 자기 말인 양 끌어들여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서면 앞의 말은 모두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 말이 아니라 남이 한 말이나
세상의 말을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심하게 평하면 말이 아니라 앵무새와 같이
그저 소리를 잘 내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속이 없는 빈 깡통처럼 말의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대게 분위기 몰이꾼으로 호감을 사기도 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모르는 자는 말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근본적인 신념이라기는 보다는
오로지 세속의 말만 주워듣고 떠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안이 비었기 때문에 밖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말재주는 능란하여
남의 말을 포장하고 각색하여 떠벌이기를 잘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과시를 하고
자기의 우월성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때로는 은유적으로 자기 가진 것들을 자랑하고
해외여행이나 성공담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은 백번 들어도 한번 들어도 같은 소리이기에
이런 사람을 여울물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연못과 호수 같은 사람입니다.
작은 연못은 눈 안에 들어오지만
큰 호수는 측량하기가 힘듭니다.
작은 연못의 물은 흐르지 못하고 갇혀있습니다.
그래서 편협은 사람은 작은 호수와 같다고 합니다.
자기의식에 갇혀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편협해지면 고루(孤陋)하게 되고 옹졸해집니다.
말이 인색해지고, 남을 칭찬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남을 비평하고 비난하는 능력은 뛰어납니다.
연못과 달리 호수는 그 깊이를 알 듯 말 듯 모호합니다.
가장자리와 중심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드러나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들 이런 사람을
“속이 깊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속은 검은지 흰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의 일에는 침묵하지만 자기 처세에는 능합니다.
어려운 질문이나 동의나 협조를 구하는 질문은 물론
상대의 공격적인 예봉(銳鋒)을 피하는데
능수능란(能手能爛)한 기질을 발휘합니다.
무관심을 침묵으로 응대하기도 하고,
직설적이어야 하는 것을 반어(反語)적으로 말하고,
싫고 좋은 것에 가부(可否)를 가볍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상황을 요령 있게 피해 가면서 침묵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결과에 실속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이 깊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세속적인 처세관으로 자기의 한계 속에 갇혀있는 사람입니다.
화통한 것 같지만 장막에 가려져 있습니다.
연못과 호수는 공통으로 방죽이나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방죽과 산이란 현실이라는 방죽이요 산입니다.
비현실적인 것은 일체 배제해 버립니다.
열린 듯하지만 막혀 있습니다.
종교적인 문제나 이념이나 관념의 문제 등은 눈을 감습니다.
자기의 가정 문제는 예민하면서도 남의 가정사는 침묵합니다.
눈앞에 부딪히는 자기의 ”현실의 문제“만 관심이 갈 뿐입니다.
재물에 관한 한 철저하게 이해타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대게 보면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영역만을 잘 지키기에 처세에 능하고
이재(利財)에 밝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강물과 같은 사람입니다.
남의 생각이나 말에 경청하면서도
자기의 생각이나 관념을 확실히 가지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밀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감추거나 숨김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체로 삶을 어려움 없이 대인(大人) 같은 풍모를 풍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은 힘이 있고 신뢰가 갑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거짓과 타협하지 않지만, 진실을 그대로 수긍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길을
요령 있게 지켜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결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지만,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
남을 포용하는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야박한 인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의리도 있고
신의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면서도 편협성이 없기에
이런 사람을 강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섯 번째는 바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침묵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말은 모든 사람이 수긍하고 존경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하고 단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은 심해(深海)와 같이 불가사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관용과 포용의 문제를 세속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정신병자도 아니고 정신병자도 술 취한 사람도 아닌데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면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서
그 속을 짐작할 수가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가(可)도 아니고 부(不)도 아니기에
이해하기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예를 하나 들면 도둑질은 누가 봐도 죄가 되는데도
이를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도둑질한 것은 죄가 된다고 말합니다.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마치 달관한 사람같이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현실의 가치관으로서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맑은 옹달샘의 물이나, 빗물이나, 황토물이나
똥물이라도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모두 한 맛이 됩니다. 그 물은 하나같이 짠물이 됩니다.
바닷물을 떠서 어느 물이 옹달샘의 물인지
빗물인지 구별할 수 없듯 이 사람의 말이 그렇습니다.
가부(可否), 자타(自他)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선하다고 하면 그렇다 하고
저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도 그렇다고 합니다.
상반되는 질문인데도 둘 다 긍정합니다.
바다와 같은 사람은 이를 구별하지 않고 받아드리기 때문에
단순히 결과만 생각하면 황당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바다와 같은 사람은 세속의 도리로
분별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바다가 흘러 들어오는 탁한 물, 맑은 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드리듯 삶의 방식 또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해득실이 분명해야 함에도 이에 구애되지 않고,
영리한 듯하면서도 바보같이 행동하고,
민첩하게 행동해야 함에도 조급해하거나 서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도리로 이해하고
수긍하기가 힘든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런 사람의 말은 마치 화두와 같아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알 수가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다와 같이 포용력이 크고 관용적인 이런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세속적인 이해타산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자기편이 되어 자기를 옹호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만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좋아는 하지만 따르지는 않습니다.

물이란 고여있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합니다.
큰 강물은 넓은 평원에서는 소리 없이 흘러가지만
계곡에서 흘러내릴 때는 우렁차게 포효합니다.
곧게 흘러가기도 하고 굽이쳐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흘러가는 곳은 바다입니다.
삶이란 것도 물과 같이 흐르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절연(絶緣)한 비속(非俗)의 삶이 아닌
세속의 삶이라면 세상에 순연(順緣)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해서 미워할 것도 없고
세상 사람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호(好), 불호(不好)에 따라갈 것도 없습니다.
모든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한 맛이 되듯
삶도 그 근원에 이르면 한 맛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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