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적한 옛 도반을 그리며, 구로 와룡산 원각사에서
2025. 6. 9. 13:48ㆍ삶 속의 이야기들
살다 보면 어느 날 이유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 때가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나들이를 자주 하지 않는 편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길눈은 어둡지만
집 가까이 있는 공릉역에서 7호선을 탔다.
7호선은 종점이 석남역이라 목적지 없이 그냥 승차했는데
이번 전철은 온수역이 종점역이었다.
7호선 종점이 두 곳이 인 줄 처음 알았다.
온수역에 내려 혹시 주변에 둘레길이나
호수가 없는지 살펴보았더니 호수는 보이지 않고
둘레길만 전철역 출구표시판에 나와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7번 출구를 나와 길 건너
우측 길로 접어들면 체육공원이 바로 보이는 데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한다.
일러준 대로 따라가 보니 이정표가 보였다. 이정표를 보니
좌측은 온수체육지구이고 우측이 구로올레길이고
그 올레길이 와룡산 순환산책로였다.
체육공원 쪽에서 시작하여 3~40분 정도
올레길을 걷다 보니 맨발로 걷는 등산객이 솔솔이 보인다.
맨발로 걷는 것이 지압효과가 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한참 걷는데 <원각사>라는 조그마한 사찰 푯말이 하나 보인다.
명산 고찰도 아니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찰인데
왠지 모르게 들려보고 싶은 충동감이 일어났다.
푯말을 따라 약 200m 정도 산을 내려가니 아담한 사찰이 보인다.
생각대로 눈에 띄는 그 어떤 것도 없는 시골의 조그마한 사찰같은데
절의 규모에 비해 거대한 미륵보살상이 조성되어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떤 사찰인데 검색해 보았다.
사찰은 그저 평범한 사찰이었지만
그 절의 주지가 법운(法雲)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30여 년 전 함께 공부했던 도반 중 스님 한 분 중에
법운이라는 법명에 가지 스님이 있었는데
혹시 그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났는데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다시 온수로 가 순환로를 따라 원각사를 찾아갔다.
법당을 나오는 사찰의 공양주 한 분을 만나
법운스님에 대해 물었드니 옛적에 두 분의 법운 스님이 계셨다고 한다.
한 분은 재작년에 열반했고,
그 후 같은 이름을 가진 스님이 들어오셨다가
지난달인가 다른 사찰로 옮겨 갔다고 한다.
열반의 든 그 스님의 내력을 보니 함께 공부했던 도반과 일치했다.
그래서 홀연히 그런 일이 일어난나 보다 생각하고
분향이라도 하고 갈까 했는데 위패까지 대구로 옮겨갔다고 해서
빈 법당에 참배만 하고
섭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왔다.
생자(生者) 필멸(必滅)이라 했던가.
절 이름이 원각사(圓覺寺)이니 원각(圓覺)을 증득했는 지 알 수 없어도
분명한 것은 원적(圓寂)에 들었으니
옛 도반을 그리는 마음만으로 분향을 대신하였다.
원각(圓覺) 이란 무엇인가?
원각(圓覺)이란 佛의 원만(圓滿)한 깨달음을 일러 원각이라고 한다.
일체의 有情이 모두 본래부터 깨달음이 있고
眞心이 있어서 시작이 없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淸淨하여 소소(昭昭)히 비치고 요요(了了)히 밝게 알아
체(體)에 맞으면 圓覺이라 하고, 因에 맞으면 여래장이라 하고,
果에 맞으면 원각이라 한다.
圓覺은 圓滿한 영각(靈覺)을 말하는 것이다.
《원각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여 無上法王에게 대다리니문(大陀羅尼門)이 있어
이름하여 원각이라 하는데 일체의 淸淨, 진여, 보리,
열반 그리고 바라밀(波羅密)을 유출하여
보살을 교수(敎授)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원각의 청정한 본성이 몸과 마음에 나타나서
기류(機類)에 따라서 각각 응한다.」라고 하였다.
규봉(圭峰)의 『원각경량소서(圓覺經略疏序)』에 이르기를
「만법이 모두 허위(虛僞)인데 연(緣)이 모여 생(生)한 것이다.
生法도 본래 無라 일체가 본래 유식(唯識)인 것이다.
식(識)은 환몽(幻夢)과 같은 것, 다만 이 한 마음뿐인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여 覺知하는 것을 지목하여 원각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佛이 이 원각을 증명하기 위하여 설한 경전을
《대방광원각수다라 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 了義經)》이라 한다.
<원각사: 02-2688-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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