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32) 여도지죄(餘桃之罪)와 권력욕
2025. 4. 17. 20:47ㆍ삶 속의 이야기들
인간의 탐욕적인 욕망은 재앙을 불러오는 근원이지만
이를 놓지 못하는 것은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인간의 많은 욕망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권력이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장애 되거나 거슬리는 자를 억누를 수 있고,
권력의 힘을 방편으로 이용하면
자기의 욕망을 쉽게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어떤 행위에도 이를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이 없을 때는 힘 있는 자에게 기대려고 안달하게 되고,
힘을 가지게 되면 그 힘을 잃지 않으려고,
힘 있는 자의 눈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아름답고 추한 것을 가리지 않고
의지하려는 권력자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볼 수 있듯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하기 위해 하는
흑색선전(黑色宣傳)에 앞장서는가 하며,
거짓 비리를 만들어내 자기편에 호의적인 언론을 통해
반복해서 게재하는 것도 자기가 의지할 권력자에 대한
호감을 쌓기 위한 사전 포석인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던
밀어준 자가 당선이 되면 그 공로로
권력의 단맛을 계속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는 코끼리 똥에 환장을 한다.
배설물 성분이 대부분 섬유질인 코끼리 똥은
사자를 흥분시키는 성분이 많아서
코끼리 똥을 발견하면 사자는 얼굴을 파묻고
온몸을 똥칠하며 먹어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권력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한번 그 황홀한 단맛의 쾌락을 느끼게 되면
계속해서 탐닉하게 되어 있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권력이 인간의 많은 욕망 중에서 치명적인 것은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위정자가 그 단맛에 빠지게 되면
나라도, 국민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개인의 향락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삼국지>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명이 죽고 유비가 세운 촉나라는
위나라 사마소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아둔하고 향락만을 즐기던 유비의 아들 유선은
죽임을 당할까 봐 성문을 열고 항복해 버렸지만,
유선의 아들 유감은 이를 통탄하고
할아버지인 유비의 사당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정복자 사마소는 정복한 촉나라 조정을 위무하기 위해
촉나라 궁전에서 큰 연회를 베풀고 촉의 신하들을 초청했다.
연회에 불려 나온 신하들은
피할 수 없는 연회라 울분을 감추고 참석했지만
패국의 임금인 유선은 연회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깊이 감사함을 여기고
흥청망청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향락에 취해 나라도, 국민도 모두 잊어 버린 것이다.
그가 죽어서 먼저 간 아버지 유비를 저승에서 만난다면 무엇이라 할까?
후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할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권력을 잃을까 그것만이 두려운 것이다.
권력이란 오늘 총애를 받았다고 해서
어느 권력자도 영원히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개구리 뛰는 방향과 같아서
그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총애를 받을 때는 법을 어겨도 충의(忠義)로 받아들여지지만
같은 말이라도 어느 날 임금의 마음이 변하면
반역(叛逆)의 소리가 되고
패악질 하는 비난의 소리가 되어
좌천되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고사성어(故事成語)에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말이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 죄란 의미다.
「옛날 미자하(彌子瑕)는 위령공(衛靈公)의 총애를 받았다.
당시 위나라 국법에 따르면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刖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 을 받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에 미자하는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미자하는 왕명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미자하가 어질다고 하면서 말했다.
“효성이 지극하구나.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월형을 범한다는 것을 잊었구나.”
다른 날 왕과 함께 과수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먹어 보니 아주 달아, 복숭아를 다 먹지 않고
반을 남겨 왕에게 먹였다. 왕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까지 잊고 나에게 먹이려 했구나.”
미자하의 자태가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어느 날 미자하가 왕에게 죄를 짓자, 왕이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또 한번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라고 하면서
마자하를 처벌해 버렸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에 나오는데,
미자하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먹였다는 말에서
‘여도지죄’가 유래했다. <자료 출처: 나무위키>
미자하의 행동에는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어질다는 소리를 들었고
나중에는 죄를 얻었던 까닭은,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도 마찬가지다.
위정자들 자기에게 유리하면 총애하지만,
자기에게 불리하면 아첨하는 소리조차
가차없이 버리는 것이 정치의 속성인 것이다.
지금은 총애를 받는 줄 알고 우쭐대지만
어느날 그 총애가 빌미가 되어 날 벼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힘이 있을 때는 법의 수호자인냥, 정의의 선봉자인냥 행세하지만
힘이 추가 옮겨 갈 때는 범법자요, 위선자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수 있듯
위정자의 마음도 그렇고, 세인의 관심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대선(大選)은 나라의 최고 위정자를 뽑는 선거이다.
당선자가 베푸는 조그마한 부스러기 같은 은덕을 받으려고
유망한 대선 주자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마타도아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라와 국민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자당의 득표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추종자들이 있다면
“여도지죄(餘桃之罪)”란 이 말을
깊이 명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진: 중국 사천성의 숨은 비경 황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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