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변명과 공(空)의 도리
2025. 2. 16. 16:50ㆍ경전과교리해설
옛날 어떤 여섯 사람이 짝이 되어 지옥에 함께 떨어져
한 솥에 같이 있으면서 각기 전생의 죄를 말하려 하였다.
첫째 사람은 '사(沙)'라고 말하고,
둘째 사람은 '나(那)',
셋째 사람은 '특(特)',
넷째 사람은 '섭(涉)',
다섯째 사람은 '고(姑)',
여섯째 사람은 '타라(多羅)'라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보고 웃으시자,
목건련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왜 웃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여섯 사람이 짝이 되어
지옥에 함께 떨어져 한 솥에 같이 있으면서,
각기 전생에 지은 죄를 말하려 하는데,
솥의 물이 펄펄 끓어오르기 때문에 첫마디 말을 내자
둘째 말이 나오기 전에 물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첫째 사람이 '사(沙)'라고 말한 것은
'세간의 60억 년이 지옥의 하루이니
언제 끝날까' 하는 뜻이요,
둘째 사람이 '나(那)'라고 말한 것은
'언제 벗어날는지 기약이 없네'라는 뜻이며,
셋째 사람이 '특(特)'이라고 말한 것은
'아아,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뜻인데,
제 마음을 조복 받지 못하고 다섯 집의 재물을 빼앗아
거룩한 세 분께 공양하였지마는 어리석고 탐하여
만족할 줄 몰랐으니 지금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넷째 사람이 '섭(涉)'이라고 말한 것은
'살림살이를 지성으로 하지 못하여
내 재산이 남에게 속해버렸으니 매우 고통스럽다'는 뜻이요,
다섯째 사람이 '고(姑)'라고 말한 것은
'누가 나를 보호하여
지옥에서 나갈 수 있으면, 다시는 계율을 범하지 않고
천상에 나서 즐기겠다'는 뜻이며,
여섯째 사람이 '타라(多羅)'라고 말한 것은
'위의 이 일은 본래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니,
마치 수레를 잘 몰지 못하여 바른길을 잃고
삿된 길로 들어가 수레 굴대를 부러뜨린 것과 같으니,
후회하여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니라.”
<舊雜譬喩經>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 되는 날까지
7일째마다 차례로 7번 시왕(十王) 앞에 나아가
생전에 지은 죄업의 경중과 선행 ·악행을 심판 받는다고 한다.
그 판결에 따라 선(善)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 가고,
악(惡)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영혼이 있어야 천당이나 지옥을 갈 수 있지만
영혼의 유무(有無)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선악(善惡)의 문제 살펴보자.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말하는 선악(善惡)의 기준은
종교적 율법이나 사회적 규범이나
규율을 따르고 잘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를 잘 지키는 자는
선인(善人)이 되고 도덕군자가 되고,
이를 어기면 악인(惡人)이 되고
범죄자나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전락한다.
그러면서도 맹목적인 규범이나
계율을 지키는 것은 하나의 겉치레일 뿐이다.
진정한 규범이나 계율이란
자기 자산 안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규범이나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은
선(善)한 사람일지 몰라도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이를 어긴 비도덕자는 악(惡)한 사람일지 몰라도
지혜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혜롭다는 말은 무엇일까?
불교의 근본 교리인 공(空)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문수사리소설부사의불경계경
(文殊師利所說不思議佛境界經)>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동자여, 공이 어찌하여 있는 것이며
탐욕․성냄․어리석음도 어찌 있는 것이라 하겠느냐?”
문수사리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공(空)을 말로써 말하기 때문에 있으며,
탐욕․성냄․어리석음도 말함으로써 있으니,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되,
‘생김 없고[無生] 일어남 없고[無起] 짓는 것 없고[無作]
함이 없는 것[無爲]이 있으므로
이는 모든 행의 법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김 없고 일어남 없고, 짓는 것 없고,
함이 없는 것은 모든 행의 법은 아니나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니, 만일 있지 않는 것이라면
곧 생김과 일어남과 짓는 것과
하는 모든 행의 법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없을 것인데,
있기 때문에 벗어난다고 말할 뿐입니다.
이와 같아서 만일 공(空)이 없다면,
곧 탐욕․성냄․어리석음에서 벗어남이 있지 않으려면,
공이 있기 때문에 탐욕 등의 모든 번뇌를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동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아서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일체 번뇌는
모두 공 가운데에 머무르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동자여, 그대는 탐욕․성냄․어리석음에서
이미 벗어났느냐, 벗어나지 못했느냐?”
문수사리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본성은
곧 평등하나니, 저는 항상 이와 같은 평등에 머무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탐욕․성냄․어리석음에서
이미 벗어난 것도 아니며, 벗어나지 못한 것도 아니옵니다.」
참 난해한 문구이다.
문수사리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것인가,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그렇다면 벗어난 것도 아니고,
벗어나지 못한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행하라는 말인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空) 가운데 머무르지 아니함이 없다.〟는 말은
어떻게 행하라는 말인가?
경전의 이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공(空)인 무위(無爲)의 행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위(無爲)란 상(相)이 없으므로
세속의 말로 이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의 말을 빌리지 않으면
드러낼 방법이 없으므로
불이문(不二門)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의미는 접어두고 중생으로서
무위(無爲)의 행(行)을 더듬어 보자.
바로 말하면 무위(無爲)의 행(行)이란 거울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거울은 앞에 오는 모든 사물을 그대로 비춘다.
추한 자가 오던, 선한 자가 오던, 붉은 것이 오던,
푸른 것이 오던 가리지 않는다.
뱀이든 꽃이든 거울은 판단하고 행동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자>일 뿐이다.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이든지 거울 밖에서 일어난다.
결코 거울 속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꽃이 아름답다고 보듬지도 않고,
뱀이 추악하다고 했어. 내치지 않는다.
또한 거울의 비춤에는 과거, 현재 미래도 없다.
비춤이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경전에서 찰나가 무량원겁(無量遠劫)이요,
무량원겁이 일 찰나라고 한다.
예로 사바세계의 일 겁이
아미타 세계에서는 하룻낮 하룻밤이라고 한다.
시간은 자성이 없다는 의미다.
거울에 비춤은 바로 그 순간이지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울은 결코 아름답고 선한 것이기에
그 모습을 좀 더 머물러 달라고 달라붙지 않고,
추하고 악한 것이라도 빨리 사라지라고 독촉하지도 않는다.
상황이 지나가 버리면 거울의 비춤도 가버린다.
흔적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이것이 공(空)으로서 무위(無爲)의 행이다.
<행위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자>가 되는
그것이 무위의 행이다.
불교는 이것을 깨달은 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모든 형상은 인연 따라 생(生)하고 멸(滅)할 뿐이다.
거울의 비춤은 비춤이 있지만 비춤에 머물지 않고,
다시 말해 매이지 않고 행하되 행하지 않음이다.
곧 비동화(非同化)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선악(善惡)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인연에 의지하여 생한 것은
인연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악이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인연따라 생하고 멸할 뿐이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그것을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인식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에 머물지 않으면
이것을 심의식(心意識)을 초탈했다고 하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벗어난
<바로 지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식(識)이란 뿌리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뿌리는 바로 거울이다.
무위의 행이라는
바로 이런 거울이 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불게에서
「죄무자성(罪無自性) 종심기(從心起)
심약멸시(心若滅時) 죄역망(罪亦亡)」
이라 한 것이 이를 말한 것이다.
죄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사라지면
즉 식(識)이 사라지면 죄 또한 사라진다.
이 말은 거울같이 되어라,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지켜 보는 자>가 되어라
무위의 행을 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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