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포구 나들이

2024. 4. 24. 00:37삶 속의 이야기들

반세기 동안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나니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이 시간에 대한 해방이다.

일을 할 때는 일자와 시간에 쫓기며 살았는데

모든 일을 접고 나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채 안 되었는데도

모든 관심이 사라져 버리고 무딛어져 버렸다.

시간으로부터 해방되고 나니

오늘 꼭 해야 할 일도 없고 서두를 일도 없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미루어왔던

이런 일 저런 일을 시도하다 보니

시간에 구애되지 않지만, 하루하루가 바쁘기는 매일반이다.

 

반세기 동안 약업에 종사했던 집사람도

오늘따라 왠지 무료함을 느꼈는지 소래포구나 다녀오자고 했다.

일을 할 때는 시간에 쫓겨 일주일에 겨우

일요일 하루밖에 쉴 수 없었기에

어디를 나들이 나갈 때는 으레 자동차로 움직였는데

오늘은 차도 수리에 들어가고 해서 전철로 다녀오기로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50여 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간이 없었기에

이제 생활방식도 바뀌어야 할 때라는 생각도

그 이유 중에 한 몫을 거들었다.

집에서 소래포구까지는 갈아타야 하는 구간도 있어서 그런지

지루할 정도로 무려 2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소래포구에 도착하니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소래포구 어시장 입구 몇 군데에 걸려 있고,

여기저기 가게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이 노인네들이다.

하긴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이제 그 축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여기 줄을 짓고 서 있는 사람들은

소래포구 축제 행사에 찾아오는 방문객에게는

광어회 한 접시를 공짜로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찾아온 것 같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방문하는 사람이

분명 한둘이 아닐 텐데 어떻게 국비도 아닌

지방의 한 시장에서 그 많은 사람에게

비싼 광어회를 한 접시씩 공짜로 주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텐데

사람들은 괴이치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두 낙천적으로 되었기 때문일까.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바램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그 바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바램은 하나의 욕망이 되고, 향상하려는 노력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좀 더>라는 탐욕이 되고,

그 탐욕이 해결되지 않으면 당연히 불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삶은 바란다고 다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꿈이 클수록, 기대가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좌절이 뒤따르게 된다.

젊은이들의 꿈과 비교하면 나이가 든 사람들은 허망하고

부질없는 줄 알지만, 허구적인 욕망일지라도 버리지 않는다.

다만 젊은이들보다 기대는 걸지만

설령 아니 되더라도

큰 미련을 느끼지도 않는 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차피 인생은 속이고 속아가면서

사는 것이 아니든가 하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숫처녀들만을 중심으로 한 사교 클럽이 결성되어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아기를 안고 와서 가입신청을 냈다.

이를 본 클럽 회장이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부인, 여기는 숫처녀 클럽입니다.

어떻게 아기를 안고서 가입하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 여자 말했다.

「이 클럽이 조직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만 거짓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도 어리석은 처녀의 일원으로서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비록 한 접시에 불과하지만 비싼 광어회를 공짜로 준다는데

어찌 솔깃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시계 하나를 선물했다.

그런데 그 시계는 시침도 분침도 초침도 없었다.

받아 든 사람이 물었다.

「이상한 시계군요. 시침, 분침 초침도 없으니

어떻게 시간을 알 수 있지요?」

그러자 시계를 준 사람이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설령 기대에 어긋나 공짜 환대를 받지 못하면 어떠랴.

식당에서 사 먹으면 된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소래포구를 찾았을 수도 있겠지.

 

소래(蘇萊)라는 지명의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니

660년(무열왕 7) 나당 연합군을 결성한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장수 소정방(蘇定方)을 출격시켰는데,

그때 출발한 곳이 중국 산둥성의 내주(萊州)였고,

도착한 곳이 오늘날의 소래포구 지역이라

소정방의 소(蘇)와 내주의 래(萊)를 취해

‘소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나당 연합군으로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금강을 건너기 위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해서 도하(渡河)의 장애물이었든

용을 낚았다는 백마강의 유래에서 보듯

미끼를 사용하는 소정방의 후예들이

그런 유지를 받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밖에 과거 이 지역의 냇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해

‘솔내(松川)’로 불리다가 소래가 되었다는 설,

이 지역의 지형이 소라처럼 생겨 소래가 되었다는 설,

그리고 지형이 좁다는 뜻의 ‘솔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긴 하지만.

 

소래포구는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시흥시의 경계를 이루는

뱀내천(신천)의 하구로, 이 하천은 만수천,

장수천, 은행천, 내하천이 합류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의 명칭으로 소래포구 일대는 과거에는 간석지였으나,

인천의 여느 바다와 같이 대부분 매립되어

대규모 공단,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져 있고

포구 입구에 줄지어 있는 어시장 풍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적한 바닷가나

고즈넉한 해변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소래포구 축제 온 노인들처럼 교회나 절에 가보면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진리 대신 위선과 허식,

그리고 이론과 율서(律書)가 있는 곳에는

늙은 사람들만이 모여든다고 한다.

왜냐하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노년이 되면 무신론자조차 신을 믿게 된다고 한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가식(假飾)의 종교는 두려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씨앗도 뿌리지 않았는데도 열매를 기대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인연의 법이다.

선업(善業)을 쌓지 않고 무슨 천당과 극락을 기대하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삶이 무료해지고

경제적으로도 궁핍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세월의 무게를 느낄수록 인생에 대한 패배감도 깊어진다.

나무가 안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을 두껍게 하듯

나이가 들수록 <자아>라는 에고는 강해진다.

성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와서 여기 휴식하라」

그 짐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에고다.

<나는 ...이다>라고 느끼는 그것이 에고다.

「나는 왕년에 이런 사람이었다.」 하고 자존심이 바로 에고다.

 

에고가 강하면 강할수록 슬픔도 거기에 정비례한다.

에고는 상처와 같다.

에고가 약하면 약할수록 상처도 작아진다.

인생에 있어서 패배감을 느끼는 것은

승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는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모든 차별은 에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에고가 만족을 느끼면 성공이고, 승리다.

그러나 에고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패배와 실패가 된다.

이 모든 패배와 좌절은 에고 때문에 존재한다.

에고가 없어지면 성공도 실패도 없다.

에고가 없는 사람은 단순하게 살아간다.

단순한 이 삶이 바로 종교적인 삶이다.

바다 갈매기 노니는 소래포구의 갯벌 위에

덩그런 매여 있는 어선과 같이

우리네 삶도 저렇게 삭막하고

황량하게 흘러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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