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설날 아침에

2024. 2. 10. 13:33삶 속의 이야기들

 

 

갑진년(甲辰年) 설날 아침이다.

자식들은 멀리 있고 찾아오는 친인척도 없어

집사람과 둘이서 호젓이 차례상을 치르고 나니

홀연히 한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전생의 내 부모였을지도 모르고,

내 형제 내 자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부처님처럼 성자도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하물며 중생의 옷을 벗지 못한 이 몸이

어찌 전생의 삶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만남과 헤어짐에서 초연(超然)할 수 있을까마는

가슴 한쪽에 밀려오는 허전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만남이 그리워셨을까?

 

(중국 법우선사 구룡벽)

 

서기전 500년 무렵 인도에서 활동하던

6명의 별난 자유사상가가 있었다.

불교 관점에서 말하는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바로 그들이다.

푸라나 카사파((ⓢPūrana Kāshyapa, ⓟPūraṇa Kassapa)) 는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한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더라도 악을 행한 것은 아니며,

제사, 보시, 수양 등을 해도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선악(善惡)의 행위는

도덕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일종의 무도덕주의(無道德主義)

또는 도덕 부정론(道德否定論)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은 기원전 500년이라는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보지 않고

21세기 사람들의 눈으로보면

당시 도시 문화의 도덕적 난숙함과

그에 따른 도덕적 퇴폐를 이해할 수 없다면

무기형이나 사형이 아니라 능지처참(凌遲處斬)도

모자랄 정도의 사람으로 평가되었을 인물이다.

그는 강물에 들어가 자살함으로써

마지막 생애를 마감했다고 전한다.

 

그이 태생은 노예였다. 인도의 사성계급이 뿌리박힌

확고한 그 시대에 비참한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그의 생애는 한 가닥 희망도 없는 핍박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주인의 갖은 학대와 모멸과 핍박을 견디지 못해 수

차례 탈출을 시작했지만,

그는 번번이 잡혀 들어와 더 심한 학대를 받았다.

어느 날 다시 탈출하다 잡히자

주인은 그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고

다시 탈출하지 못하도록 알몸으로 광에다 가두어버렸다.

그 후 푸라나카사파는 광에서 풀려나고서도

평생을 알몸으로 일생을 지냈다고 한다.

오늘날 누드족의 원조를 찾는다면

당연히 푸루나카사파가 될 것이다.

 

(북한산 승가사 포대화상)

 

오늘은 갑진년 설날 아침이다.

설은 만남의 날이다. 조상님을 만나고,

부모님을 만나고 일가친척

그리고 고향의 이웃과 친지 동무들을 만나는 날이다.

그 만남은 육신(肉身)의 옷을 벗어버리듯

미움과 증오, 시시비비했던 마음의 옷을 벗어버리고,

관습과 인습, 전통적인 사고나 관념도 벗어 버리고

잃어버린 옛 자식을 만나는 어버이 마음으로

일면여구(一面如舊)의 마음으로

만나는 만남의 날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삶 속의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래포구 나들이  (4) 2024.04.24
초원과 같은 삶을 살자  (2) 2024.03.17
눈 내리는 날의 소요산 풍경  (4) 2024.02.07
야누스(Janus)와 딱따구리  (2) 2024.01.26
갑진년 새해 수락산 매월정에서  (0) 202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