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雪景) 도봉산 둘레 길에서

2024. 2. 23. 13:37포토습작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여니 온통 눈이다.

밤사이에 많은 눈이 내린 모양이다.

하얗게 쌓인 눈을 보니 문득 그 쌓인 눈길을 걷고 싶었다.

지난 주에도 많지는 않았지만 눈 내린 날이 있었다.

그날 도봉산 신선봉에 갔다가 정상을 오르는 계단이

쌓인 눈이 녹아서 빙판길이라 아이젠이 없어

신성봉을 넘어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내려왔던 아쉬움 때문일까?

 

여느 때보다 일찍 아침을 먹고 카메라만 달랑 챙겨 집사람과 집을 나섰다.

집 앞은 경춘선 숲길이라 어젯밤에 내린 눈으로 멋진 상고대를 이뤘다.

오늘 설경 나들이는 멋지겠다고 생각하면서 전철역으로 향했다.

도봉산은 집에서 겨우 다섯 역이라 잠깐 사이다.

별도 점심거리를 챙겨 나오진 않은 탓으로

도봉산역에 도착하여 간식거리로

빵을 사기 위해 제과점에 들렀다.

그런데 제과점 주인이 묻는다.

“산에 가십니까?”

그렇다고 하니 주인이 말한다.

도봉산은 오늘 입산(入山)을 통제하고 있다고.

매년 눈은 내리지만 도봉산이 눈 때문에 입산이 통제된 적은 기억이 없어

괜한 뜬 소문이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제과점을 나와 도봉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등산복 차림을 한 두서너 명이

전철역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배낭을 멘 우리를 보고는

입산(入山)이 통제되었다고 일러주면서

자기들도 등산을 포기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제과점 주인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멋진 설경을 기대하고 오늘은 아이젠까지 챙겨서

일찍 집을 나셨는데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문득 옛적에 망월사를 내려오면서

도봉산 둘레길을 돌아내려 온 기억이 나서

둘레길로 향했다.

 

둘레길은 막지도 않았고 등산객도 뜸했다.

다만 둘레길에서 이어지는 도봉산 등로는

공원 관리 요원이 나와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도봉산 옛길에서 시작하여

원다락능선 둘레길을 걸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춥지도 않았고 소요하기는 안성맞춤이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머리 위에 떨어졌다.

숲은 상고대를 이루고 있었다.

기대했던 도봉산 설경(雪景) 산행은 못 했지만,

미련은 없다. 쌓인 눈을 밟으며 둘레길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상고대의 멋진 설경(雪景)을 즐겼으니 꿩 대신 닭이면 어쩌랴.

 

 

 

 

 

 

 

 

 

 

 

 

 

 

 

 

 

 

 

 

 

 

 

 

 

 

 

 

 

 

 

 

 

 

 

 

 

 

 

 

 

 

 

 

 

 

 

 

 

 

 

 

 

 

 

 

 

 

흰 눈이 쌓인 옛도봉산 둘래길

인적이 끊어진 눈길이다.

 

일없이 걷는 둘레길이라

느긋하기 그지없다.

 

발밑에 눈 밟히는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히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하늘은 흐려도

마음은 상쾌하다.

 

삶의 길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처럼 매일 하얀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시시비비와 욕망이 부글부글하는

아수라의 숲에 갇혀서

오늘도 어제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