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십마(是什麽), 이 뭣꼬?

2023. 7. 15. 22:37선시 만행 한시 화두

 

 

붓다의 가르침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의 심사(尋思)이다.

 

@부휴선사(浮休禪師: 1543~1615)

七十餘年遊幻海(칠십여년유환해)

今朝脫却返初源(금조탈각반초원)

廓然空寂本無物(확연공적본무물)

何有菩提生死根(하유보리생사근)

 

환(幻)같은 이 몸은 물거품같고

마음은 바람과 같은데

幻 속에서 무슨 생사, 열반, 보리가 있겠는가?

 

 

@청허선사(淸虛. 휴정(休靜 1520~1604))

 

머리는 희어도 마음은 희지 않는다고

옛 성현이 말했건만

이제 닭우는 소리를 듣고서

장부의 할 일을 마쳤구나

 

내 집 소식 알고나니

모든 일에 의심없어

천만경전 이른말씀

쓸데없는 빈 종이일세

 

@ 미국의 비더 교수란 사람이 해인사의 성철스님을 방문했을 때

불교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한

성철 스님의 화답 서신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진리는 언어문자에 있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진리를 알고자 하면 자기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언어문자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면 땅을 파고서

하늘을 찾는 것과 같다.

때문에 진리를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자기 마음을 닦아서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불교경전의 근본 입장입니다.

일체의 진리가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경전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진리는 마음속에" 란 것이

이해되면 경전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이 불교 입문의 필수 단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의 진리를 개발하는 데

제일 큰 장애물은 언어문자다.

그러니 천만 년 동안 경전 공부하는 것이

일 일간 마음 닦는 것만 못하다.

"경전을 버리고 자기 마음을 닦아라"라고

부처님은 항상 훈계하시고

제자들에게 좌선(坐禪)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을 전공하는 학승(學僧)과

좌선에 전념하는 수도승(修道僧)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일자무식한 사람이라도 자기 마음을 깨치면

『팔만대장경』을 다외운 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는 큰 지혜의 힘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불교의 생명선은 경전지식이

풍부한 데 있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깨치는 데 있습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