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석(靈鷲石)

2023. 4. 23. 20:11넋두리

영취석(靈鷲石)

1980년 어느 가을날

홀로,

괴산 병산곡 어느 골짜기,

땅 밑에 외치는 소리 있어,

낙엽 헤치고 돌무덤 거두니

날개 접은 저 신령

어둠에서 솟아났네.

온갖 풍상

어두운 날 속에

이제사 비상할 숙연이던가,

억 만겁 쌓인 공덕 지장(地藏)의 위신력이던가.

장엄한 기상(氣像)이여!

영축산의 화신(化身)이여!

신령한 구담의 옛 향기,

도리천의 부촉,

안인부동(安忍不動)은 대지와 같고,

정려심밀(靜慮深密)은 비장(秘藏)을 품었네.

삼계의 화택(火宅) 속에 육도 중생 애민하여

천성산 보당(寶堂)에 여의주 감추시어

천성(千聖)의 지문(智門) 내리시고도,

미도(迷途)의 삼유(三有)를 인도하고자

당신의 전령 여기에 또 세우셨나?

사바의 고해 속에 고통받는 뭇 중생

감로고(甘露鼓) 높이 울려

이익되고 안락게 하옵시고,

앞서간 뭇 중생들

아비옥의 고통에서 왕생극락하옵도록

당신의 연화(蓮華) 가피(加被) 여기 실어 보내 주옵소서!

<1998.5. 천성산 용주사 명부전 개원식 날에>

 

@아마도 30여 년 전쯤 일일 것이다.

한때 수석에 심취하여 동네 수석회 동우회 회원들과

괴산 지역으로 탐석을 나설 때다.

회원들과 떨어져 괴산 어느 계곡을 홀로 헤매고 있을 때

땅속에서 이상한 울림이 들렸다.

무언가 싶어 호기심에 덮인 돌무더기를 치우니 저 돌이 나왔다.

영락없는 독수리를 닮은 물형석(物形石)이다.

돌무더기를 걷어내니 돌은 이상하게 광채가 나는 듯 했고

돌의 결이 3갈래로 특이하여 내 눈에는 영물(靈物)로 보였다.

빨리 옮겨 집으로 가져가야지 하는 생각 외에는

나 홀로 떨어진 계곡이라 누구의 도움을 기대할 겨를도 없었다.

어떻게 옮겼는지 혼자서 돌을 언덕까지 간신히 올려놓았다.

언덕에 올라서니 주위가 트이고 차로 옮기려고

다시 돌을 들어보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온 동우회 회원에게 연락했더니

감사하게도 네 명의 회원이 협조해 주어

간신히 들어 차에다 싣고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장정 4명이 간신히 들 정도의 큰 돌이었는데

어떻게 혼자서 산등성이로 옮겼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좌대값은 비싸냐 2~3만원 정도였는데

좌대를 만들려니 30만원 가까이 들었다.

나로서는 큰 거금이었지만 돌이 너무 커서 좌대를 깎으려면

두세 사림이 달라붙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다 싶어

감수해야만 했다.

보름인가 지나서 좌대가 완성되어 집으로 가져와

응접실 한구석에 놓아두고 영취석(靈鷲石)이라 이름 짓고

10년 가까이 즐겼다. 세월이 지나니 응접실이 좁아

어디다 기부해야 하겠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대학 모교의 상징이 독수리라

학교에 기증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친 동불원에서 같이 수학했던 천성산 용주사의 주지가

지장전을 개원한다고 내사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길래

달리 마땅한 선물도 없고 해서

용주사에 영취석을 기부하기로 했다.

휴일을 틈타 차에다 돌 하나만 싣고 나 홀로 용주사로 향했다.

서울에서 양산 천성산 용주사로 혼자서 내려가는 것도

거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래 머물 수 없어 다음날 바로 귀경했는데

훗날 내려가 보니 지장전 옆쪽에 좌대 체로

그대로 묻어 안치되어 있었다. 돌을 알지 못한

스님의 속가(俗家) 형님이 대충 자리만 잡아

안치한 것이었다.

지장전 개원을 축원하는 의미로

<영취석>이라는 시 한 수를 내려보냈더니

시비(詩碑) 겸 세워놓았다고 한다.

 

금수산 독수리바위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함께 수학했던 옛 지기였던

스님도 열반한 지 어언 10여 년이 훨씬 지났고

불행히도 그사이에 지장전도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다행히 영취석은 지금의 돌탑 옆에 안치되어 있다.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제천 금수산 독수리바위 산행을 나갔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취석에 대한 옛 자료를 찾아보니

오래전 일이라 내 컴에서도 글과 사진이 모두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용주사 카페의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다행히 위 자료가 하나 남아 있어 다시 옮겨 그때를 회상해 본다.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에 허기 질 때는  (0) 2023.06.04
가신 님의 향기를 기리며  (0) 2023.04.30
봄은 왔는데(1)  (0) 2023.03.29
사랑하는 마음은  (0) 2023.03.01
수심(愁心)  (0)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