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화개산 도피안사
2022. 12. 24. 23:22ㆍ국내 명산과 사찰
절대권력자도 권좌에서 밀려나면 초라해지듯
잎이 다 떨어진 겨울의 나무도 쓸쓸하게 보인다.
산사도 마찬가지다.
설상가상으로 눈 쌓인 산사는 인적이 뜸해 더욱 삭막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방문한 철원 도피안사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연이은 차가운 날씨 탓인지 아직 녹지 않아
겨울의 냉랭함을 그대로 느껴진다.
도피안사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花開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에 속한다.
865년(경문왕 5)에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도피안사는 큰 가람은 아니지만,
국보 제63호인 철제 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다.
옛적에 방문했을 때는 불사(佛事) 중이라 어수선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불사가 끝난 모양이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수록된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이 철조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일주문
<화개산 도피안사(花開山到彼岸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산 이름은 꽃이 피는 산이라는데 백설이 덮고 있는
이 겨울철에 꽃을 기대하기 무리다.
일주문 단청까지 새롭게 칠하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경내주변은 백설로 덮여 있고 길만 눈이 치워져 있다.
천왕문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사천왕의 구별은 지물(持物)로 구별하는데
그 조성한 시대를 조선 후기를 기준으로
전후에 따라 사천왕의 이름이 달라진다.
일례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검을 든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왕으로 보지만
그 이전 즉 통일신라 이후의 기준으로는
비파를 든 사천왕을 동방지국천왕으로 본다.
(본방 <경주 토함산 불국사(1/2) 참조)
<참고>
중문
천왕문을 지나면 또 편액이 없는 하나의 문이 있다.
대개 이런 경우 사찰에서는 해탈문이나 불이문 등
따로 편액을 조성하는데 도피안사의 이 중문은 편액이 없다.
경내를 들어서면 좌측에 범종각이 보이고 앙상한 고목 뒤편에 대적광전이 보인다.
대적광전
새로 단청한 도피안사의 본당이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법당 앞에는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조성되어 있고
법당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제 비로자나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일전에는 불상이 보수 중이라서 모사품을 봉한 하고 있었는데
보수가 끝났는지 현재 봉안된 불상은 원본인 것으로 보인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鐵原 到彼岸寺 三層石塔)
문화재 지정: 보물 제223호
조성: 신라 경문왕(景文王) 5년(865)
도피안사 대적광전 앞에 세워져 있는 이 삼층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그 구조가 특이해서 보통 4각의 돌을 이용한 데 비해
여기에서는 8각 모양의 돌로 높게 2단을 쌓았다.
아래층 기단의 8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이 기단의 맨 윗돌에는 위층 기단을 괴기 위한
높직한 8각의 괴임돌이 놓여 있는데,
이곳에는 연꽃무늬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위층 기단은 매우 높으나 각 면에 꾸밈이 없다.
다만, 기단의 맨 윗돌 아랫면에 다소 두툼한 느낌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둘러놓았다. 탑신과 닿는 곳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괴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기단의 꾸밈새는 석탑의 기법이라기보다는
불상의 기단 기법으로 보이며, 덮개돌 윗면의 높은 괴임 형식은
9세기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수법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각 층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3층은 3단인데,
조각이 얕아서 다소 무거워 보이긴 하나,
네 귀퉁이가 한껏 위로 들려 있어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단의 꾸밈새에서 보이는 특이한 양식,
지붕돌 받침이 4단, 3단으로 일정치 않은 점 등이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임을 보여준다.
탑을 만든 시기는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 절을 건립할 당시
불상과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鐵原 到彼岸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문화재 지정: 국보 제63호
조성: 신라 경문왕(景文王) 5년 (875년)
이 불상은 기록에 의하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평판적인 신체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 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몸에 비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지권인(智拳印)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라는 뜻의 수인으로
보리인(菩提印), 각승인(覺勝印)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금강정경(金剛頂經)에 기초를 둔 것으로
주로 밀교계의 대일여래가 취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지권인은 오른손이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전자를 우권인이라 하고 후자를 좌권인으로 분리한다.
자세한 것은 비로자나불 수인에 대해 후술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 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 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극락보전
전면 3칸 측면 3칸의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법당 안에는 철조 아미타삼존불을 봉안되어 있다.
조성 시기는 근대에 들어와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의 보관에는 아미타상을 조각하지만
대세지보살의 보관에는 보병을 조각하는 것이 상례인데
도피안사의 이 대세지보살은 관음보살과 같은
아미타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도피안사의 도로 맞은 편에 보이는 이 건물은 향교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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