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 제118구 간음과 무생법인의 의미

2022. 10. 9. 13:45증도가

(증도가) 제118구 간음과 무생법인의 의미

勇施犯重悟無生(용시범중오무생)

早是成佛于今在(조시성불우금재)

용시비구는 중죄를 짓고도 무생의 법을 깨달으니

벌써 성불하여 지금에 있음이로다.

 

@증도가의 이 귀는 옛적 보월여래(寶月如來)의 전생담인

용시비구의 이야기를 빌어 간음과 살인을 범한 자라도

광대무변한 진리 즉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구절이다.

무상대도에 이르는 길은 문(門)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무문대도(無門大道)라고도 합니다.

무상대도는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말합니다.

용시비구의 이 이야기는 <불설정업장경(佛說淨業障經)> 에 나와 있습니다.

 

오대산 중원암 문수전 탱화

오랜 옛적 중향세계(衆香世界) 의무구정광여래(無垢淨光如來)라 불리는 

부처님이 계실 때 용시(勇施)라는 비구가 있었다고 한다.

중향국(衆香國)은 불경(佛經)에서 가정(假定)으로 만든 나라로

이 나라는 누각(樓閣)이나 원유(苑囿: 대궐이나 나라 안의 동산)가 모두 향기롭고

그 향기는 시방의 모든 나라에 펴지고 있다고 하는 나라로

<유마경> 향적품에도 나옵니다.

 

비구는 남자 스님을 말합니다.

그는 준수한 얼굴에 학식 또한 너무 뛰어나 났으므로

뭇 여인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어떤 젊은 여인이 용시스님을 보고는 짝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날이 갈수록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져

마침내 상사병(相思病)으로 앓아 드러눕게 되자

병의 원인을 모르는 그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병은 더 악화하기만 하였답니다.

상사병이 어찌 약으로, 설득으로 치료가 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단짝인 친구로부터 용시스님을 보고는

상사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들 듣고

어떻게 용시스님을 불러드릴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느 날 용시스님이 탁발하려 이 집을 들렀다가

몹시 수척한 딸을 보고는

‘따님이 왜 저렇게 병이 났습니까?’ 하고 묻자

이에 어머니는 천연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딸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가 부질없는 지껄이라 하고 항상 엄하게 막고

그 뜻을 이뤄주지 않았더니 결국 저런 병이 났지 뭣니까.’

이런 말을 들은 용시는

‘따님의 뜻을 막아서 법문을 듣지 못하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 하자 이때 어머니는

‘만약 스님이 능히 내 딸에게 경전의 가르침을 가르쳐 주신다면

내가 마땅히 이를 허락하겠습니다.’ 이 말은 들은 용시는 바로 허락하였고

매일 탁발을 나설 때마다 이 집을 들러 딸님에게 설법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딸의 상사병은 날이 갈수록 호전되었습니다.

 

그런데 원효스님이 이르듯 「心生卽種種法生」이라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오만 가지 생각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스님과 불자라는 관계였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이와

젊은 여인이 단둘이 방안에서 자주 만나게 되니 자연히 정이 깊어지고,

정이 깊어지니 마침내 음행(淫行)을 저질러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남녀 사이란 속된 말로 <뻔할 뻔 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城이란 흙으로 쌓든 돌로 쌓든 한 귀퉁이가 무너지면

성 전체가 쉽게 무너지게 되듯 한 번의 간통이 계속 이어져

두 사람의 불륜(不倫)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는 말처럼 빈도가 잦아지자

그 딸님의 약혼자가 될 남자가 이를 눈치채자

이를 감추기 위해 여인과 공모하여

그의 배우자를 살해하기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용시비구는 독약을 딸에게 넘겨주면서

그 남자를 집으로 초대하여 밥에다 몰래 약을 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가 지어준 독약을 탄 밥을 먹고는 죽고 말았습니다.

 

양귀비와 현종의 조우

유부녀만 골라 간통한 삼국지 영웅 조조 이야기는 차제하고서라도

당나라 시대 자기의 며느리인 양귀비를 보고 반하여 염치불구하고

아들과 이혼시켜 그녀를 아내로 취한 현종과

양귀비의 역사 이야기에서 보듯

간음과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국경도, 귀천(貴賤)도, 양심도 의리도 가려지는가 봅니다.

 

간음과 살인은 지금의 형법으로 본다면 간통죄에다 살인까지 했으니

가중 처벌되어 최소한 무기징역이나 사형에 해당하겠지만

용시비구의 죄는 수행자인 스님이기 때문에

율법에서 가장 무거운 바라이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승가에서 생명과 같은 승적을 박탈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수행자로서

저질은 범행에 대한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요,

마음속에 쌓이는 번뇌는 바다처럼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율법의 최고 범죄인 중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지은 죄를 용서받고

어떤 수행을 해야 해탈하여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번뇌와 고민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혜무(醯無)라고 하는 정사에 머물고 있는

비유다라(鼻揉多羅)라는 이름난 보살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이를 털어놓고 지은 죄를 용서받을 방법이 있는지 청을 하게 됩니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은 비유다라 보살은

걱정하지 말라 내가 구원책을 알려주겠다고 하고는

즉시 모든 부처님의 경계인 

대승묘문(大乘妙門) 여래보즉삼매(如來寶卽三昧)에 들어가

부처님을 설법을 듣게 하였다고 합니다.

용시보살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마침내 무상대도를 성취하였디고 합니다.

경전에서는 그때의 비유다라 보살이 지금의 이 미륵보살이라고 합니다.

그 용시비구가 바로 보월(寶月)여래라고 합니다.

 

함안 마애사 만수전

경전의 말을 좀 더 인용하면

「이 불국토에서 항하의 모래 수의 모든 불세계를 지나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은 상광(常光)이니라. 보월 여래가 거기에서 성불하였느니라.

문수사리여, 그대는 이 법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업장을 여의게 한다는 것을 관할지니라.

음란한 짓을 하였고 사람의 목숨을 끊었어도

능히 현재의 몸이 무생인을 얻게 하였나니, 무슨 까닭인가?

능히 삼계가 그림자와 메아리 같다는 것을 관한 때문이니,

마치 환술사(幻術師)가 환인(幻人)을 보는 것처럼 걸림이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모든 종교는 지옥과 천당이라는 것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죄악에 대한 인과응보가 되고,

천당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은 해결책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생각하지만

그런데 여기에 깊이 숙고해 볼 것이 있습니다.

지옥과 천당을 말하는 전제가 죄라는 실체가 있고,

죄를 짓고 받는 실체가 있고

또 해방 시켜주는 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존재 즉 自性의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에 대한 자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존재자 쉽게 말해서 일례로 영원한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없던 것이 새로 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이라고 합니다.

없던 것이 새로 생(生) 것도 아니라면 멸(滅)할 것도 없게 됩니다.

영원(永遠)이란 시작과 끝이 없기에 영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가 영원하다고 하면 생(生)이 없는데

어떻게 사(死) 즉 멸(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멸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이라는 말이 성립되겠습니까?

 

그래서 <참회게>에서

罪無自性從心起(죄무자성종심기)

心若滅時罪亦亡(심약멸시죄역망) 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자성은 본래 없고 그 마음을 따라 생기나니

그 마음이 멸하면 죄업 또한 없어지는 것이다.

라는 말한 것입니다.

 

@ 과거칠불 중 제2존인 尸棄佛(시기불)의 송(頌)에서

起諸善法本是幻 (기제선법본시환) 造諸惡業亦是幻 (조제악업역시환)

身如聚沫心如風 (신여취말심여풍) 幻出無根無實性 (환출무근무실성)

라고 했고,

@제6존인 迦葉佛(가섭불)도

一切衆生性淸淨 (일체중생성청정) 從本無生無可滅 (종본무생무가멸)

卽此身心是幻生 (즉차신심시환생) 幻化之中無罪福 (환화지중무죄복)

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청정심(淸淨心)이라고 하는 중생의 본래 마음 곧 자성은

없던 것이 생한 것도 아니며, 생한 것이 아니니 멸함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고 여기는 이 몸뚱어리는 물거품 같고

마음은 바람과 같은 허깨비(幻)이기에 실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업(善業)을 짓는 것도, 악업(惡業)을 짓는 것도

선악(善惡)이란 실체 즉 자성이 없는 환(幻: 허깨비)이요,

이 몸과 마음 또한 환(幻)이기 때문에

환으로 생한 것에는 환 속에는 죄와 복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숭산 소림사 달마상

달마대사의 어록에 이른 말이 있습니다.

“대사님 저는 도살장을 경영하는 백정입니다.

대사님도 저더러 살생하지 말라고 하지만

제 직업은 살생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도 대도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달마대사는

“내가 법을 설한 것은 업(業)을 말한 것이 아니라 도(道)를 말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업(業)이란 선업이든 악업이든

분별심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선악에 대한 모든 분별을 떠나는 것이 도라는 것입니다.

곧 무생법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성 보현암

그러므로 증도가의 이 구절에서 말하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참 의미는 참된 도를 구함에는

따로 선과 악이란 고정불변한 것이 없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길임으로

무생(無生)의 참 뜻을 이해하면 선악이란 시비분별을 초월하게 되고

따라서 환(幻)과 같은 이 몸과 마음의 작용에서

얽매임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이 없다면 무슨 답이 필요합니까?

그래서 <신심명>의 첫 귀가

「至道無難 唯嫌揀擇(지도무난 유혐간택)」

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