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 제119구 어리석은 완피단(頑皮靼)을 슬퍼하노라.

2022. 10. 1. 20:43증도가

 

 

<증도가(證道歌)> 제119구(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師子吼無畏說(사자후무외설)

深嗟懵懂頑皮靼(심차몽동완피단)」

 

풀이하면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어리석은 완피단을 몹시 슬퍼하노라 라는 의미다.

몽동(懵懂)은 멍터구리라는 뜻이며,

완피단(琓皮靼)은 가죽이 두꺼워 송곳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딱딱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이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귀에 들어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확증편향(確證偏向)에 걸린 환자라면 더하면 더하지 덜할 리가 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과정에서 불거진

비속어 논란 때문에 요즘 정가는 시끌버끌하다.

국회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전후 관계와 국익 등 이해득실과

진실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가리는 것은 아예 제쳐놓고

확증편향(確證偏向)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한심할 정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진작 피해 당사자는 조용한 데

가해자 측이 더 요란을 떨고 있으니 모순적이지 않은가.

양쪽 모두가 확증(確證) 편향증(偏向症)에 걸려도 되게 걸린 모양이다.

 

노랑 상사화

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것을 말하는 데

이 병에 걸리면 그야말로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사람의 마음은 열면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지만

닫으면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다고 한

옛 선사들의 말처럼 여기에 이르면 부처가 환생하여

팔만사천의 법문을 가르친들 그 소리가 바르게 들리겠는가?

 

 

한국 근현대사에 간화선풍을 일으킨

거목 경허(鏡虛, 1849년~1912년) 대선사가

청계사에 머물 때 일이다. 눈이 몹시 내리는 어느 날 오후

늦게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스님을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기를 요청하자

스님은 거절하지 않고 허락했다.

그런데 내리던 눈이 며칠이 지나도 그치지 않아

그 여인은 절을 떠나지 못하고 스님의 방에서 그냥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인과 건장한 스님이 한 방에서 며칠을 기거했으니

절집 사람 모두의 입방앗간에 오를 수밖에.

여인과 스님이 한 방에 머물면서 무엇을 했을까?

물어보나 마나 뻔할 뻔 자가 아니겠는가?

중생의 관념으로 보면 당연한 귀결이지 않겠는가?

확증편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눈이 그치고 절문을 나서면서 여인은 가려던 얼굴의 수건을 벗어 보이며

하직 인사를 했다. 절집 사람들은 여인의 그 얼굴을 보자

모두 놀라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그 여인은 문둥병 환자였던 것이다.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쫓아내도 시원찮을 문둥병 환자를

스님은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며칠을 함께 지내주었던 것이다.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쟁이 스님으로도 불리는 스님이 있다,

평생을 옷 한 벌, 바리때(鉢盂, Patra) 하나만으로 살다 간

무소유의 실천가였던 춘성(春城, 李昌林; 1891~1977)이란 스님이다.

종교의 참뜻을 깨우친 선승으로 1891년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서 태어나

1901년 13세 때 백담사에 출가하여,

10여 년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을 모시고

수학한 유일한 수좌였으며 1919년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가 되었고,

1929년 만공스님의 법을 이어받았으며,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북한산의 망월사를 떠나지 않았던 스님인데

그 스님에 대한 이런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노랑 상사화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에 불심 깊은 한 노(老) 보살이 있었다.

그 노 보살은 부족할 것이 살고 있었는데 다만 아름다운 외동딸이

혼기가 다 찾는데도 시집갈 생각을 하지 않아 그것이 고민이었다.

얼굴도 이쁘고 똑똑하고 재력까지 갖추고 있어

많은 매파도 다녀가고 청혼도 많이 들어 왔지만,

딸은 모두 거절하고 아예 시집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속된 말로 여자가 콧대가 높아 마음에 차는 신랑감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이다.

한해 한해 해가 갈수록 노 보살의 근심도 깊어져만 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스님을 찾아가 자기 딸을 법회에 내 보낼 테니

스님이 좋은 법문으로 인도 좀 해달라고 청탁을 드렸다.

그리고 법회가 있는 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오라고 딸을 절로 보냈다.

노 보살과 달리 딸은 절에 잘 다니는 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법회를 하는 날 유난히 눈에 띄는 여인이 있어

자세히 보니 노 보살이 말한 딸이었다.

그런데 설법을 듣고 있는 태도를 보니

법문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이를 간파하고 그 딸을 지목하여 이르기를 느닷없이

“네 좁아터진 그곳으로 내 큰 것이 들어가겠느냐?” 고 질문을 던졌다.

이 소리를 들은 딸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법당을 뛰쳐나와 집으로 줄행랑했다.

붉그락 푸르락하며 돌아온 딸을 보고 노 보살은

“오늘 스님의 법문이 어떠하더냐?” 하고 묻자

딸이 말하기를

“완전 땡초 중에도 상 땡초입니다.

아니 처녀인 내게 하는 말이

네 좁아터진 그곳에 내 큰 것이 들어가겠느냐?’이라고 합디다.

아니 이런 땡초를 어찌 여태까지 스님으로 모셨습니까?”

그러자 노 보살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좁아터진 소갈머리에 스님의 그 큰 법문이 들어가겠느냐?”

 

자아집착에 빠져 아집에 똘똘 뭉친 딸은 스님의 법문을

성희롱으로 받아들인 것에 대한 질책인 셈이다.

하긴 욕쟁이 스님으로 알려진 스님이니

확증 편향이라 치부하기도 조금 그렇기도 하겠지만…….

 

부처님을 만나 정법을 듣는데도 어려운 4가지가 있다.

이를 사난(四難)이라고 하는데

하나는 치불난(値佛難)이니 부처님 계실 때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고,

둘은 설법난(說法難)이니 기연(機緣)이 익숙할 때까지는

설법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셋은 문법난(聞法難)이니 부처님 설법을 친히 듣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넷은 신수난(信受難)이니 교법을 믿고 이를 지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고승들의 법문이란

듣는 자가 기연이 익지 않았다면 바람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믿고 지니며 수행의 지침으로 삼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진실이란 것은 「득지본유(得之本有) 실지본무(失之本無)」 가 아니던가.

확증 편향(確證偏向)의 늪을 벗어나는 근본된 길은

<신심명(信心銘)>에 이르듯 간택심(揀擇心)을 내려놓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옳다고 여기면 100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다가도

그르다 싶으면 금방 100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는 요술 방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