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오서산 관음사

2021. 9. 25. 14:46국내 명산과 사찰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에 있는 관음사는 억새로 유명한

오서산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신흥사찰이라 전각도 그렇고 보물급 문화재도 없지만,

이번 홍성기행에서 제일 먼저 이 사찰을 들리게 된 것은

최근에 조성되었다는 마애관음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근래에 조성된 사찰의 면모를 보면 석불이나 석탑은 많이 조성하지만,

마애불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음사로 가는 진입로는 승용차가 쌍방 교차 통행하기는

좁은 도로라 맞은 편에 차가 오는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관음사의 유일한 전각은 관음보전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약수터와 이 절의 창건주인 천년화보살의 공덕비가 있고

바위에 부조된 달마상이 눈길을 끈다.

 

조금 더 오르면 자연석인 바위에 암각화 된

문수동자가 항주의 무착문희(無着文喜 821~900)에게 전했다는

공양구가 부조되어 있다.

조금 마모가 되었긴 하지만 판독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面上無嗔供養具(명상무진공양구)

口裡無嗔吐妙香(구리무진토묘향)

心裏无嗔是眞實(심리무진시진실)

無染無垢是眞實(무염무구시진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지금까지 알려진 공양구와는 의미로는

大同小異하지만 몇 귀(句)는 조금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양구를 보면

 

<원문>

面上無嗔供養具(명상무진공양구)

口裏無嗔吐妙香(구리무진토묘향)

心裏無嗔是珍寶(심리무진시진보)

無染無垢是眞常(무염무구시진상)

<번역>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구나

성 안내는 그 마음이 참다운 보배요

깨끗하고 티가 없는 그것이 부처라네

 

@<裏>와 <裡>는 뜻도 발음도 같고 <無>와 <无> 도 같은 글자이다.

그러나 제3구절과 4구절의 진보(珍寶)와 진상(眞常)이

관음사의 바위에 부조된 글귀와는 다르다.

바위에 새길 때 아마 오류가 생긴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경내에 들어서면 관음사의 유일한 전각인 <관음보전>이

계단 앞에 세워진 양쪽 석등 뒤로 조성되어 있다.

이번 관음사 탐방이 마애관음불이라

먼저 마애불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관음사의 마애불은 관음상으로 남순동자와 천녀(天女)상이 부조되어 있다.

 

 

 

 

 

 

 

<마애관음보살좌상>

창건주 천년화보살은 이곳에서 토굴을 짓고

6년 동안 기도를 시작했다는 곳이며,

마애불은 창건주가 열반 후 주지였던 원철스님이

꿈에 선몽을 받고 관세음보살이 어머님 상호로 나타나

현몽한 그 자리를 파보니 돌이 무수히 나와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애관음불은 반가부좌 자세로 보관을 쓰고 있고,

그 밑에 남순동자가 있고 그 위에 천녀상이 있고

관음보살을 칭송하는 시구가 암각화 되어 있다.

관음불 우측에는 관음불의 지물인 감로병이 보이고,

그 위에 버들가지가 부조되어 있다.

 

 

관음불의 보관에는 아미타불상이 조각되어 있고

복련과 같은 연꽃 문양의 두광(頭光)에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가사는 통견으로 가슴에는 영락이 있고,

승각기를 입고 법의는 양발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관음보살을 향해 합장하고 있는 남순동자상과

좌측 윗부분에 천녀상이 부조되어 있고

찬탄하는 시구가 함께 부조되어 있다.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은 말없이 말씀하시고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는 들음 없이 들으시네.

병상녹양삼제하(甁上綠楊三際夏) 화병 위의 푸른 버들 늘 여름이요

암전취죽시방춘(巖前翠竹十方春) 바위 앞에 남색 대나무는 봄을 알리네.

 

 

관음사의 이 마애불은 불기 2559년(서기 2015년) 점안식 거행했다고 한다.

 

 

마애관음불 바로 옆에 <산왕대신>이란 기도처가 조성되어 있다.

이 <산왕대신>이 산신각을 대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애불을 참배하고 관음사의 유일한 전각인 관음보전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관음보전에 봉안된 세분의 불상을 보니 다소 의아했다.

대개 관음전의 관음불은 협시를 두지 않지만,

협시를 두면 용왕과 남순동자를 두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6관음을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6관음을 다 모시지 못하고 3분만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3분의 관음상을 모신 대표적인 사찰을 보면

설악산 신흥사의 내불당과 명성산 자인사 관음전을 꼽을 수 있다.

 

 

관음사의 관음보전에는 우협시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옆에는 또 한 분의 불명의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일반적으로 무량수전에는 본존을 아미타불로 봉안하고

우협시로 지장보살을, 좌협시로 관음보살을 모시는 데

관음보전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은 봉안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면 관음전에 지장보살을 모신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주지 스님과 차 한잔을 하면서 관음전에

왜 두 분의 관음보살을 모셨는지 물었더니

좌협시는 약사여래라고 한다.

그러나 보살은 보관을 쓰지만 모든 여래는

보관을 쓰고 있지 않은 것이 상례이므로

이 불상을 약사여래로 보기는 합당치 않다.

또한 약사여래의 지물인 약함도 보이지 않는다.

 

좌협시보살

그런데 보관을 쓰고 있으니 보살은 분명한데 보관에는 보병이 조각되어 있다.

보관에 보병을 조각한 것은 대세지보살을 의미하는데

오른손에는 정병(淨甁:감로수병)을 들고 있다.

보관의 보병만 보면 대세지가 되고,

오른손에 든 정병을 든 것을 보면 이는 관음보살이 되는데

참 묘한 불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긴, 지물(持物)만으로 여래를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이 아니다.

용인 미평리약사여래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을 보면,

약사불인데도 감로병을 들고 있고,

안성 대농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은 미륵불이지만

감로병을 들고 있으니 절대적으로 정병(감로수병)이

관음보살의 지물만은 아니라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석불은 보관은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산신탱

 

신중탱이다. 예적금강은 보이지 않고 위태천을 중심으로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칠성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