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검단사(黔丹寺)
2021. 6. 13. 02:14ㆍ국내 명산과 사찰
파주 검단사(黔丹寺)는 파주 오두산(烏頭山) 기슭에 자리한
통일신라 시대 847년(신라 문성왕 9)
진감 혜소(眞鑑慧昭, 774-850)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 시대에는 인조와 인열왕후(仁烈王后)의 능인
장릉(長陵)의 원찰로 변모한 가람이다.
처음에는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지만,
영조 때인 1731년 장릉을 탄현면 갈현리로 옮길 때,
이 사찰도 현재의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으로 옮겨왔다.
검단사는 장릉에 제향을 지낼 때 절에서 두부를 만들어 한때
두구사(豆拘寺)라고도 했다. 근대에 들어와 1906년
주지인 김정호가 법당을 수선하였고, 일제강점기 때는
전등사(傳燈寺)의 말사가 되었다. 1986년 천오(天悟)가 주지로 부임하여
법화전을 중건하였고, 2005년 해송(海松)이
절을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검단사를 창건한 혜소는 같은 도반들 사이에
'흑두타(黑頭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얼굴이 검은 부처>라는 의미다.
그래서 검단사(黔丹寺)라는 사찰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혹은 사찰이 소재한 오두산(烏頭山)이라서 검단사라 했다고도 한다.
<오두산>은 까마귀 머리처럼 검은 산이라는 의미다.
검단사의 유물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4호인 목조관음보살좌상,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295호 아미타불탱화,
신중탱화,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72호 검단선사영정 등이 있다.
탱화는 19세기 말 작품이고,
검단선사영정은 조선 후기 때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단사 창건주로 알려진 진감혜소국사(眞鑑慧昭國師: 774 ~ 850)
진감선사는 통일신라말 선승으로
선사의 법휘는 혜소(慧昭)이며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생애를 보면 774년(혜공왕 10) 재가승려인 아버지와
어머니 고 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에 따르면
어머니 고씨가 잠깐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서역의 승려가 나타나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 하며 유리 항아리를 주었는데
이윽고 임신하였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고,
소리를 낮추고 말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804년 당에 가서
창주 신감대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얼굴이 검어 함께 공부하는 이들에게서
흑두타(黑頭陀)라고 불렀다고 한다.
810년 숭산 소림사에서 구족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종남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하여
상주 장백사에서 선(禪)을 설법하였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후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옥천사를 짓고
850년(문성왕 12) 여생을 마쳤다. 후에 정강왕이 최치원으로 하여금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치게 하고 진감(혜소의 시호) 국사비를 세우게 하였다.
그의 탑비는 대한불교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에
진감선사대공령비명(雙磎寺眞鑑禪師大空靈碑銘: 국보 제47호)으로 남아 있다,
(본방: 하동기행(2/5) 쌍계사 진감선사대공령탑비와 사산비명(四山碑銘) 참조)
또한 진감국사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최초로 도입
지리산 쌍계사에서 산문(山門)을 열고 많은 제자 양성하였고,
중국으로부터 차나무를 들여와
차 문화발전에 공헌한 신라말 선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법화전>
법화전의 편액은 인조대왕의 하사품인 어필(御筆)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한 목조관음보살좌상(문화재자료 제41호)과
아미타회상도(1854), 그리고 신중도(조선 후기)
검단조사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
파주 검단사 목조관음보살좌상(坡州 黔丹寺 木造觀音菩薩坐像)은
검단사 법화전에 봉안된 조선 시대의 불상으로,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44호 지정되어 있다,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비교적 작은 크기로 고개를 약간 숙인 정삼각형 꼴의 둔중한 모습이다.
살진 얼굴에 늘어진 귀, 짧은 목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서
두 손으로 정병을 감싸든 채 결가부좌하고 있다.
머리카락은 귀를 덮고 양어깨에 붙어 있는 느낌 이 들며,
둥근 어깨를 한 풍만한 신체에 법의를 걸치고 있다.
의습선은 왼쪽 어깨에 단계적으로 중첩된 직선을 보이고 있고
양쪽 팔의 안쪽에 접힌 자락은 비교적 부드러운 곡선이며,
손목에서 살짝 젖혀져서 뒤쪽으로 넘어간 자락은
2개의 계단식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 덮인 가사는 그 끝이 꽃 모양처럼 둥글게 조각되었고,
왼쪽 어깨를 덮은 자락은 뒤로 넘어가서 긴 삼각형 꼴로 드리워져 있다.
양쪽 다리의 주름은 결가부좌 한 발목 부분에서 부채꼴로 벌어졌는데,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었다.
이처럼 왼쪽 어깨에 꽃 모양 같은 가사표현이나
다리 사이의 곡선형 부채꼴 주름 모양은
18세기 초반에 제작된 불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다.
또한, 가슴에는 군의(裙衣)의 자락을 묶어서 접은 주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대각선으로 조각되었는데,
이러한 표현 역시 18세기 불보살상에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정병을 따로 조각해서 두 손에 끼웠는데,
이는 15세기 이후에 제작된 불화나 판화에서 보이는 주자형 정병이다.
비록 검단사 주불전에 봉안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임을 알려주는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얼굴과 의습선에 부드러운 감이 남아있고
대각선형 군의 표현을 볼 때 파주 검단사 법화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발원문이 조사되지 않았지만, 얼굴과 의습선에서
부드러운 감이 줄어들면서 도식화된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상태가 좋고, 신체비례와 대의 처리 등에서
시기적인 양식을 반영하여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함이 인정되어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파주 검단사 아미타불회도(坡州 黔丹寺 阿彌陀佛會圖)
검단사의 본당인 법화전 봉안된 이 불화는 2014년 8월 29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한
목조관음보살좌상(문화재자료 제41호)의 후불로 조성되어 있는 데
〈아미타불회도〉는 1854년에 조성되었으며,
제작에는 찬종(讚宗)과 해운일환(海雲一環)을 비롯해 7인의 화승이 참여하였다.
검단사 〈아미타불회도〉는 가로 172cm 세로 118cm로
가로 화면에 맞게 주존을 중심으로 권속들이 옆으로 넓게 배치되어 있다.
옆으로 배치된 권속 사이로 주목되는 표현은 여래가 앉아 있는 불단이다.
불단 역시 화면에 맞게 가로로 긴데,
불단 상판에는 나무결을 장식해 갑자기 넓어진 공간이 어색하지 않게 처리하였다.
이 불화의 주존인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왼손은 배 부분에 올려놓은 설법인을 하고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아미타불의 주변에는 6位의 보살과 6명의 제자,
그리고 사천왕 등이 배치되어 있다.
아미타불의 좌측에는 노비구는 가섭존자가, 우측에는 아난이 그려져 있다.
하단의 4보살 중 좌측 끝의 보살은 보관에 소불(小佛)이 있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이 분명하고,
그 위에 불자(拂子)와 금강저를 들고 있는 있는 천인은 제석천이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대범천과 제석천은 항상 대칭으로
아미타불탱화에 등장함으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사이의 두 보살은 또한
아미타탱화의 등장하는 문수와 보현보살이 아닌가 추측한다.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그 외 보살과 제자의 표현을 보면,
타원형의 얼굴에 허리가 긴 세장한 신체로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은 시기와 작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활동한 경기 화승들이
구사했던 화풍에 연원을 두고 있다. 색채는 짙은 홍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녹색, 청색, 백색 등을 이용해 색의 변화를 주었다.
또 채도가 높은 청색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코발트계의 색은 특히 19세기 후반 불화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아미타불회도>에서 보이는 가로축 중심의 화면,
주존을 중심으로 횡으로 배치되는 구도,
18세기 후반의 경기 화승의 화풍 계승,
과도하게 크게 묘사된 불단 등은 19세기 전반
경기도에서 제작된 후불도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검단사 조사진영(黔丹祖師眞影)
화기에 <검단사 조사>로 되어 있어
이 진영(眞影)이 진감해소 선사인지,
백제시대 검단조사인지 불분명하다.
검단조사는 고창 선운사의 창건 기록에 창건주로
백제 27대 위덕왕(577년) 때 고승으로 알려져 있는 고승이다.
검단사 조사의 이 진영은 봉선사에 소장되었다가
검단사로 이관된 것이라고 한다. 검단사 조사의 이 진영은
19세기 작품으로 2014냔 5월 9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량수전
최근에 조성된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과 대세지 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무량수전의 주련이 참 재미있다.
<무량수전 주련>
어렵구나 하늘의 별 따기요 쉽구나 세수하다 코잡기라
어찌하여 이런 차별 생겼노 먹구름 한 줌 오가는 탓일세
관음보살의 지물인 연꽃이 3송이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닫집의 천장은 쌍용으로 장엄되어 있다.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좌우에 시왕이 조성되어 있다. 한글로 된 주련이 이색적이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그 앞에 업경대 2기가 놓여있다.
나라연금강인데 형상이 해학스럽다.
밀적금강이다. 무서운 형상이라기는보다 해학적이다.
오두산 둘레길을 살래길이라고 부른다.
오두산을 오르면 엉댕이 방댕이가 살랑된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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