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무가애(心無罣礙)라

2020. 2. 19. 21:18경전과교리해설

심무가애(心無罣礙)


<심무가애(心無罣礙)>란 반야심경에서 나오는 말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말이다.

걸림이 없기에 모든 공포가 사라지고

구경에 열반에 이른다고 설한다.

(보타낙가산의 해수관음)

  

그런데 그 걸림이 무엇인가.

첫 번째 걸림은 可視的인 걸림이다.

可視的인 것은 우리 五感의 대상이 되는 그것들이다.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탐욕의 대상이 되고,

애욕의 대상이 되고, 소유욕의 대상이 된다.

가시적인 것들은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이다.

영원한 것들이 아니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탐욕과 소유욕이 반야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보타낙가산의 오백나한탑 중 관음도)

  

두 번째 걸림은 空間的인 걸림이다.

공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물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히말라야와 같은 거대한 산이든,

원자나 분자 그보다 적은 초미립자라도 일정한 공간을 차지한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에 대한 생각도 이를 하나의 공간 개념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에 연속성에 대한 공간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空間은 규정된 영역이 아니다. 경계가 없는 것이 空間이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삶과 죽음을 공간적인 경계로 설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걸림이 되는 것이다.

선사나 고승들이 生死一如라는 말도 바로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보타낙가산 해수관음상의 벽화 탱)  


세 번째는 걸림은 時空을 넘나드는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은 찰나찰나 변하지만, 한 생각이 일어나 소멸해야 다음 생각이 이어지는 것이다.

두 생각이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대를 머물 수 없다.

마음이란 또한 닫으면 바늘 하나 꽃을 곳이 없고

 열면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時空을 넘어 유희하는 思惟가 이 마음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이다.

思惟의 뿌리는 에고(ego)에서 비롯된다.

四大하고 五蘊이 주인이 없는데 그것이 모든 思惟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 마음을 내려놓아라.라고 선사들은 일컫는 것이다.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말은 곧 無心을 말하는 것이다.

 일은 마음이 무심해야 하고(於事無心), 마음에는 일이 없어야 한다(於心無事)라고

 선사들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 구경의 길을 가는 데, 열반과 해탈을 가로막는 걸림이 되기 때문이다.


(항주 영은사 목조 관음탱)  

 

네 번째 걸림은 無心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이다. 無心은 초월이 아니다.

 해탈도 열반도 아니다. 모든 것을 벗어났다는 해서

이를 의 구경이라 느끼는 그 마음이 걸림이 된다는 의미다.

 를 벗어나 의 경지 곧 의 경지라 해서 초월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달마대사가 無心라 말하지 말라. 無心一隔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無心에 안주하지 말고, 집착하지도 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잘못하면 도리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나,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말은 진실한 경지가 아니다.

 없는 데 무엇을 깨달을 것이며, 없는데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러므로 無心까지 벗어난 경지의 단계를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경에서 畢竟空의 경지라 일컫는 것이다.

유식의 大圓鏡智, 대승의 해탈의 경지요,

심경에서 구경 열반에 이르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라고 한 것이다.

 말은 달라도 같은 의미이다. 걸림을 벗어난 구경의 길은 涅槃이다.

온전한 깨달음의 세계다. 붓다의 세계다.

그래서 반야심경은 걸림을 벗어나는 길을 4번의 아제(揭帝)로 귀결된 것이다



(영은사의 목조 관음탱)


반야심경의 주문을 보자.

반복되는 아제가자라는 의미다. 벗어나자는 의미다.

벗어난다는 말은 곧 초월이요 곧 해탈이다. 그 해탈의 경지가 열반이 되는 것이다.

심경의 마지막 주문을 보자.


(보타낙가산의 양류관음도)  

 

첫 번째 揭帝(가떼)는 가자라는 의미다.

물질로부터, 육체로부터, 가시적인 有形의 세계로부터 떠나자는 의미다.

두 번째 揭帝(가떼)도 가자라는 의미다.

이 삶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이 무한 연속으로부터 떠나자 라는 의미다.

세 번째 바라아제(파라가떼) 는 더 높이 가자란 의미다.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마음으로부터, 사념으로부터, 에고로부터 더 높이 떠나자라는 의미다..

네 번째 바라승아제(파라삼가떼)는 우리 다 같이 더 높이 가자라는 의미다.

더 높이 가자는 그것마저 떠나자는 의미다. 붓다의 경지로 가자라는 의미다.

붓다의 경지란 무엇인가.

궁극적인 해탈의 경지요, 열반의 경지란 의미다.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모두가 가는, 모두가 함께 가는, 가야 할 길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