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4. 21:02ㆍ국내 명산과 사찰
창녕 화왕산 관룡사 제1부 석장승과 용선대
창녕 화왕산 관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해발 793m의 화왕산 서남에 위치하고 있다.
관룡사는 산내에 있는 용선대의 석조불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지만 그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사기 寺記〉에 의하면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한 기록이 보여 보통 이를 창건으로 삼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松坡)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서 화왕산(火旺山) 마루의 월영삼지(月影三池)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觀龍寺)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九龍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관룡사석장승(觀龍寺石─벅수)
관룡사 경내를 들어 가기전 개울가 옆에 2기의 석장승이 있다.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연대는 알 수 없다.
재질은 모두 화강석으로서, 남장승의 크기는 높이 224㎝, 너비 64㎝이고,
여장승은 높이 235㎝, 너비 52㎝이다.
왼쪽의 것이 남장승이며, 형태는 화강석을 거친다듬하여 상투 같은 둥근 머리와
툭 튀어나온 왕방울눈, 주먹코, 아래로 뚫린 콧구멍과 방방한 턱이 특징적이다.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 두개가 양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양각되어 있다.
여장승과는 달리 관모를 쓴 모습에 콧잔등에 굵은 주름이 두개 새겨져 있으며,
몸통에 명문은 새겨져 있지 않다.
서쪽의 여장승은 사다리꼴 기단석 위에 구멍을 파서 세운 것으로,
몸통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굵어져 안정감을 준다.
장승의 두께는 앞면 너비보다 뒷면 너비가 좁게 되었으며,
두상의 길이가 90㎝나 되어서 몸전체 길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관모는 없으며 맨머리 위에 상투모양이 조각되었으며,
코는 주먹코인데 콧구멍 두개가 아래를 향해서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 두개가 비스듬히 내려와 양각되어 있다.
역시 몸통에 명문이 없고, 기단 위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이곳 벅수, 즉 장승은 사찰의 경계, 사찰의 논밭, 사찰 경내에서의 사냥이나
어로의 금지, 호법(護法) 등을 표시하기 위하여 세웠거나,
또는 풍수지리학상 허한 곳을 막아주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창녕 화왕산 관룡사 경내를 오르는 길에 조성된 돌담. 옛적 일주문이 있던 자리인가?
천왕문 양쪽 벽에는 사천왕 탱화가 조성되어 있다.
광목천왕
증장천왕
지국천왕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화왕산 관룡사
범종각
범종각을 옆에 경내를 들어가는 돌계단이 조성되어 있고, 정면에 대웅전이 보인다.
경내는 제2부에서 다루기로 하고 먼저 용선대로 향한다. 용선대를 오르면서 내려다 본 관룡사 경내.
관룡사를 지나면 용선대가 멀리 보인다. 관룡사에서 용선대까지는 대략 500m 정도이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觀龍寺龍船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95호.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관룡사(觀龍寺) 뒷산 오른편 능선인 용선대(龍船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광배(光背)는 없어졌고, 대좌 하대(下臺)의 복련(覆蓮: 연꽃을 엎어 놓은 모습) 일부가 부서졌지만,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이다. 불상은 1.87m이며, 대좌는 1.57m이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에 관한 문헌 기록과 명문이 남아 있지 않아 조성 배경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용선대의 ‘용선’은 ‘반야용선(般若龍船)’에서 유래된 듯하다.
반야용선은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갈 때 타고 가던 배를 말하지만,
이 지명이 석조여래좌상의 성격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용선대라는
거대한 자연 암반을 지대석(支臺石: 받침석)으로 하여 그 위에 봉안되어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통견(通肩) 형식으로 법의(法衣)를 입고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한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오른쪽 발바닥 위에 놓여 있다.
이로 보아 수인(手印)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모델로 하였으나,
손 자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불상은 머리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하체도 상당히 볼륨감 있게 표현되어 안정감을 준다.
낮고 편평한 육계(肉髻: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 큼직큼직한 나발(螺髮: 소라 형태의 머리카락),
커다란 이목구비(耳目口鼻) 등 원만한 상호(相好: 얼굴)를 갖추고 있다.
큰 귀는 어깨까지 닿았으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법의(法衣: 불상의 옷) 주름은 형식화되고 간략화되어 있다.
대좌는 상대(上臺)와 중대, 하대를 갖추고 있는 팔각연화대좌(八角蓮華臺座)이다.
앙련(仰蓮: 연꽃이 활짝 핀 모습) 형식의 상대는 연잎 중앙에 화려한 꽃무늬가 장엄되어 있는
중판연화문(重瓣蓮華文: 연잎이 겹쳐진 모습의 연화문)으로서 화려하고 힘찬 모습이다.
중대는 비교적 높게 조성되었으며,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복련(覆蓮)의 하대는 방형(方形)의 받침 위에
복판연화문(複瓣蓮華文: 두 개의 연잎으로 이루어진 연화문)으로 장엄되어 있다.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유행했던 항마촉지인 불좌상을 모델로 하여 조성되었으나,
불상의 양식이나 수인(手印: 손 자세), 중대가 길어진 대좌 형식 등을 통하여 볼 때,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수도 경주(慶州)에서 유행하던
항마촉지인 불좌상을 모델로 하여 조성되었다.
그러나 편단우견(偏袒右肩: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모습으로 옷을 입는 것) 형식이 아닌
통견 형식으로 옷을 입고 있으며, 수인도 모호하게 표현되는 등
도상(圖像)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였던 듯하다.
비록 상호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 불상과 거의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비례와 법의의 주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석불 옆에 놓여진 이 석물은 석등의 부재로 보인다.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산 정상부에 조성되었다는 점과
항마촉지인 불좌상이라는 점에서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조성된
국보 제24호 석굴암(石窟庵) 석굴의 본존을 모델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산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면서 조성된 석굴암의 항마촉지인 불좌상의 형식이
9세기에 경상남도 창녕 지방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불상의 의의가 있다.
용선대에서 바라 본 화왕산의 봉우리들
@용선대 라는 말은 반야용선(般若龍船)에서 비롯된 말이다.
龍船은 그래서 般若龍船, 또는 般若船 이라고도 한다.
오구굿에서는 망자가 저승 갈 때 타고 가는 배를 상징하지만,
불교에서 반야선은 중생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반야(般若 : 일체의 사물과 도리를 밝게 통찰하는 더없이 완전한 지혜)를
차안(此岸)의 중생이 생사고해를 건너 피안(彼岸)의 정토에 이르기 위해 타고 가는 배에 비유한 것이다.
기록에 따라서 반야선은 미륵정토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나아가는 운송수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아미타신앙에서는 원선(願船), 아미타원선, 사십팔원선(四十八願船),
대비선(大悲船), 자항(慈航) 등으로도 표현된다.
아미타원선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한 아미타불의 사십팔 대원(大願)을
중생이 정토 왕생하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배에 비유한 것으로,
중생은 이 배를 타고 아미타불이나 그의 권속보살의 인도를 받아 서방정토로 간다.
그런데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서원과 자비 또한 반야의 표현이므로
원선이나 대비선, 자항 등은 반야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럼으로 용선대에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것이 정석일 텐데
무슨 이유에서 그런지 관룡사 용선대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통일신라시대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같은 부처로 보았기에 그렇게 따른 것인가?
~제2부 관룡사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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