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고달사지 쌍사자석등

2019. 10. 18. 20:54국내 명산과 사찰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석등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驪州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

사찰에서 법등을 밝히던 고려시대의 석등이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쌍사자석등은 19631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8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사적 제382

고달사지에 넘어져 있던 것을 한 주민이 수습하여 보관하다가,

19585월 서울시 종로구 종로4가 동원예식장 뒤뜰로 옮겼다.


(발견 당시의 쌍사자석등)


(발견 당시의 쌍사자 모습)



그 뒤 1959년 봄 당시 문교부의 주선으로 경복궁 경회루 옆에 옮겨졌고,

다시 현재의 장소(국립중앙박물관)로 이동되어 복원하였다.

처음 발견 당시는 옥개석과 상륜부를 잃어버리고 있었으나

2000년 경기도 기전매장문화연구원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옥개석이 출토되어

2001년 석등의 제 위치에 올려놓았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야외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물 제282호 고달사 쌍사자 석등)  

혜목산(惠穆山) 기슭의 고달사(高達寺)는 신라 경덕왕23(764)에 창건되었다.

이 절은 고려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禪院) 가운데 하나로 왕실의 보호를 받은 사찰이었다.

975년에 세워진 원종대사(元宗大師) 비문에 의하면

당시에는 고달원(高達院) 또는 고달선원(高達禪院)으로 불렸다고 한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달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초기까지 번창했으나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달사지는 현재 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달사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59년 경복궁으로 옮겨 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달사지 쌍사자석등의 높이는 2.43m이며

발견 당시에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까지만 남아있었으나,

 2000년에 경기도 기전매장문화연구원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출토되어 보완한 것이다.


 

방각형 지대석 위에 2매로 된 장방형 하대석이 놓였는데,

측면에는 각각 안상(眼象) 2좌씩이 장식되었을 뿐 연화의 조각은 없다.  

그 위의 중석은 복잡한 구조이지만 사자 두마리가 주가 되고 있다.

사자는 판석에 붙여서 조각하였는데,

좌우에서 앞발을 앞으로 내밀고 웅크리고 앉아 서로 마주보는 형상이고,

그 사이에 운문(雲文)을 양각하였는데 등 위로 구름이 솟아올라서

상층부는 사자의 등이 아닌 구름이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다시 그 위에는 두개로 된 간주(竿柱)가 놓였는데,

밑에는 운문이 조각된 얕은 돌이 놓이고, 위에는 중앙에 팔각형의 넓은 마디가 있는데,

부등변팔각형의 석재를 얹되 이 마디에서 위와 아래를 향하여

비스듬히 너비를 넓히는 특이한 형태를 만들었다.


  

상대석은 부등변팔각형으로 큼직큼직한 복엽(複葉)의 앙련(仰蓮)이 조각되고

 밑에는 2, 위에는 1단의 높은 굄이 마련되었다.




 화사석(火舍石 :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도 부등변팔각형으로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표현되었고, 화창(火窓)은 넓은 4면에만 뚫었다.

옥개석은 일부가 파손되어 있고 그 위의 노반과 보주는 멸실 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국보 제5호인 속리산 법주사의 쌍사자석등과 보물 제389호 회암사 쌍사자석등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쌍사자석등의 사자는 모두 두발을 들고 서 있는 상(立像)인데,

고달사지의 이 쌍사자석등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특징이다.

조각수법에서는 고려시대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으며, 건립연대는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 


보물 제389호 회암사 쌍사자석등 


<우리나라 주요 쌍사자석등>

1)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보 제5, 통일신라시대

2)증흥산성 쌍사자(광주국립박물관소장) 국보 제103호. 통일신라시대

3)합천 영안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제353호. 통일신라시대

4)양주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제389호. 고려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