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0. 16:08ㆍ삶 속의 이야기들
(남미륵사 금강역사)
언중유골(言中有骨)과 두 보살의 다툼
요즘 신심 깊다는 신도나 불자들을 말을 들어보면 천당이나 극락을 자랑하여 말하지만,
속뜻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 믿는 사람들이 많다.
힌두교나 밀교의 신들을 보면 그래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형상을 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의미인데 속마음은 감추고
비유나 은유로 넌지시 아랫사람들이나 참모들에게 그 뜻을 밝히는 것이다.
그 속뜻은 무엇을 기대하거나, 명령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야유나 험담, 질책이나 권모술수를 행하도록 유도암시하는 것도 있다.
다만 직접 대놓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또한, 책임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속 맘을 안에다 감추고
모호한 감추어진 화법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화순 쌍봉사 석가모니불)
불교 경전에도 보살이나 여래의 전생담을 보면 이런 예가 많다.
여래나 보살의 격을 중생의 수준으로 낮추어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험담이나 야유를 좋아하는 중생들의 기호에 맞추어 설하고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불도(佛道)에 귀의시키고, 신심(信心)을 다지기 위해
이런 언중유골의 비유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례로 꼽히는 것이 <육도집경(六度集經)>이나
<자타가(jataka: 본생담> 등에 나온 이야기들이다.
(관촉사 은진미륵)
옛적에 <다이기라>와 <나라>라고 하는 두 보살이 있었다.
이 두 보살은 세속(世俗)의 더러움에서 멀리 떨어져 깊은 산에 들어가 석실(石室)을 집으로 삼고,
베옷을 입고 풀 자리를 깔고 나무 열매를 먹고 물을 마시며 모든 물욕(物慾)을 버리고,
단지 수행(修行)에만 전념한 탓에 속계(俗界)의 유혹을 넘어
색계(色界)에 일어나는 사선정(四禪定)의 깨달음을 얻고,
오신통(五神通)의 힘을 얻어, 무엇이라도 다 볼 수가 있고,
어떠한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어떤 곳에라도 날아가서 자유로 출입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을 다 알고, 사람들의 과거세(過去世)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세까지 다 볼 수 있는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송광사 석가모니불)
두 보살은 제천(諸天)과 신선(神仙)의 존경을 받으면서,
이 심산에 머물기를 육십여 년이 지났지만,
항상 많은 사람이 물정(物情)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버리고 부처님의 도를 빌어 가피(加被)를 받을 것을 모르는 것을 가엾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은 다이기라 보살이 한밤중에 일어나 경(經)을 읽고 있었는데 피로가 와서 자리에 누웠다.
그때 먼저 잠들은 나라가 경을 읽으려고 일어났다가 좁은 석실 안이라서
먼저 자고 있는 다이기라의 머리를 그만 실수로 밟고 말았다.
잠이 들었던 다이가라는 화가 나서
『누구냐! 내 머리를 밟은 놈은. 나는 맹세코 말한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네 머리는 일곱 개로 갈라놓을 터이니 그런 줄 알아라.』
실수로 겸연쩍어했던 나라보살도 이 말에 화가 나서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생명이 없는 그릇들도 서로 부딪힐 때가 있는데,
하물며 손발을 움직이는 인간이 좁은 곳에 같이 있다 보면
오랜 세월 동안에는 이 정도의 일은 있을 법한 것인데 그런 심한 험담을 하다니….』
이 말을 들은 다이기라는 더 화가 났다,
『이제까지 네 맹세는 틀려본 적이 없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네 머리는 분명 일곱 개로 깨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 힘으로 해를 눌러 동쪽 하늘에서 한 발자국도 뜨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뱉은 말은 자기도 걷둘 수 없다는 의미다.
다이기라의 말대로 해는 아침이 되어도 동쪽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닷새 동안 온 세상은 온통 암흑으로 뒤덮여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소동을 벌리기 시작하자 나라 안의 인심(人心)은 극도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금산사 미륵삼존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국왕은 군신을 소집하여 대회의(大會義)를 열었다.
물론 학자와 도사(道士)들도 모두 소집을 받았다. 왕이 물었다.
『닷새 동안 해가 모습을 안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나라에 죄과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겠는가.』
국왕은 숙연(肅然)히 일동을 살펴보았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 덕이 높다고 칭송받는 도사 한 분이 일어나 말했다.
『국민의 존경 대상이 된 저 산중의 두 도사가
사소한 언쟁을 한 결과 해를 붙들고 내놓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군신과 만민을 데리시고 저 산에 올라가시어
사정을 말씀드려 두 분이 화해하도록 부탁을 하시면,
원래가 자비심이 깊은 보살들이시니 들어 주실 것입니다.』
국왕은 즉시 포고령을 내어, 여러 사람과 더불어 두 보살의 석실을 찾아
정중히 예를 올리고 두 보살의 공덕을 치하면서 자비를 빌었다.
『우리나라의 풍성함도 만민의 안녕(安寧)도, 하나같이 당신들 보살님들의 덕분이옵니다.
이제 두 분께서 언쟁 때문에 저희 국민이 어둠에 갇혀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만일에 허물을 타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탓하시고
만민에게는 관용을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제발 마음들을 푸시고
저희 나라 국민을 위하여 용서해 주시옵기를 빌겠습니다.』
그 소리에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나라가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다이기라만 마음을 풀면 해는 지금이라도 뜨게 하지요.』
나라의 말을 듣고 왕은 다이기라한테 가서 나라의 뜻을 전하고 말했다.
『진흙으로 나라의 머리를 만들게 해서 해를 뜨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다이기라도 좋다고 승낙했다.
그리하여 태양은 동쪽 하늘에서 붉게 빛을 내었다.
진흙으로 만든 나라의 머리는 해가 뜨자마자 바로 일곱 개로 깨어졌다.
두 사람 사이의 싸움은 풀리고 왕도 만민도 기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서 두 보살은 왕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어,
널리 자비의 흥화(興化)를 베풀었으므로, 이 나라는 더욱더 태평하게 되었다.
(법주사 미륵불)
이 두 보살의 싸움은 부처님을 모르는 왕이나 만민에게
그 가르침을 알리려는 방편(方便)이었음 알고 이 일이 있었던 다음부터는
이 나라는 깊이 부처님의 도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언급된 나라는 석존, 다이기라는 미륵보살의 전신이었다.
(수진자 와불)
현재의 보살 석가모니불과 미래불인 미륵불이 다투었다는 것도 참 특이한 사건이다.
미래는 언제나 현재를 밟고 간다는 의미일까?
(단양 대흥사 미륵불)
이야기는 <육도집경(六度集經)>제7권에 나온 이야기를 필자가 편역을 가했다.
<육도집경>은 부처님이 보살이었을 적의 이야기 즉 전생담을 모아 기록한 경전이다.
전체 91개의 전생담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라는
육도(바라밀)에 각각 배당하여 모았기 때문에 <육도집경>이라 한다.
원전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이 경전은 또한 육도무극경(六度無極桎),
잡도무극경(雜度撫極睾墮), 혹은 도무극경(度無極經) 등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일찍이 오나라의 강승회(康僧兮)가 8권으로 번역(251一280년)한 것으로써
여기서 도무극이란 말을 신역에서는 바라밀[度]로 번역한데서 육도집경이라고 한 것이다,
(북미륵암 마애불)
언중유골(言中有骨), 이는 고도화한 사술이다.
노자가 이르듯 그래서 진리란 바보들이 웃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다. 꾸밈이 없고, 감춤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없는 방귀가 더 구리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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