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3. 14:14ㆍ삶 속의 이야기들
귀향길과 풍우대상(風雨對狀)
땅거미가 진 호반의 벤치에서 삶의 의미를 반추하며,
밤을 새워 본 사람들이라면 실의(失意)라는 그 말의 참뜻을 가슴으로 느껴 알 것이다.
십여 년 전 어느 날인가 산다는 것이 공허하고, 우울하여 산정호수 벤치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땅거미 내려앉고 어둠을 타고 달려오는 자인사의 종소리.
우수에 젖은 마음에 서리를 더하는 듯한 그 기분. 어찌 그때의 기분을 말로 다 들어낼 수 있으랴.
아마도 이는 과거에 세 번씩이나 낙방하고 실의에 빠져 노쇠한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소주 고소성(姑蘇城) 한산사(寒山寺)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뱃전에서 잠 못 이루고 지었다는
저 유명한 풍교야박(楓橋夜泊)의 시인 장계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楓橋夜泊(풍교야박) / 밤에 배를 풍교에 대다
~ 장계(張繼)~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달은 지고 까마귀 울며 하늘엔 찬 서리 가득한데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강가의 단풍 고깃배 등불 마주 대하니 근심 속에 잠이 안 오네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쓸쓸한 한산사에서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깊은 밤 종소리 뱃전까지 들려오네!
<본방 한산사와 풍교야박 참조>
내일 모래면 설이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명절날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서민들은 마음은 기쁨보다는 명절이 도리어 근심 걱정거리가 아니 될 수 없다.
그나마 바리바리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형편이라면 몰라도
차가운 대리석과 성냥갑 같은 시멘트의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마음은
명절이 다까오면 기쁨보다는 고향을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에
근심·걱정이 더 짙어지는 것이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 아니던가.
그러나 삶은 사람들과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
멀리는 친구와 친지, 가까이는 바로 부모·형제들이 아닌가.
기계문명의 발달로 오늘날 만남은 스마트폰의 영상통화로 해결한다고 한다지만
어찌 얼굴을 맞대며 담소하는 그 기쁨에 비하랴.
긴 이별 속에 그 해후(邂逅)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옛시인 묵객들이 오랜 옛벗이 헤어졌던 형제를 만나
회포를 푸는 의미로 회자하는 풍우대상(風雨對牀)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바람 소리, 비소리를 들으며 침상에서 마주 대한다는 의미인데,
형제나 친구가 오래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회포를 푸는 즐거움을 비유하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의 출전은 위응부의 시에서 비롯된다.
나는 고을의 부절을 풀고 떠나고
너는 바깥일 때문에 남아 있었는데
어찌 알았으리 눈보라 치는 밤에
이렇게 다시 침상을 마주하고 잠들 줄
먼저 남지(南池)에서 술 마시던 이야기 하고
다시 서루(西樓)에서 지은 글 읊었네
앞으로 꿈속에서도 한 번 만나지 못할텐데
세월은 앉아서 흘러만 가는구나!
余解郡符去(여해군부거) 爾爲外事牽(이위외사견)
寧知風雪夜(영지풍설야) 復此對牀眠(부차대상면)
始話南池飮(시화남지음) 更詠西樓篇(갱영서루편)
無將一會夢(무자일회몽) 歲月坐推遷(세월좌추천)
~ 위응물(韋應物) 〈시전진원상(示全眞元常)〉~
위응물의 이 시 중 ‘어찌 알았으리 눈보라 치는 밤에
이렇게 다시 침상을 마주하고 잠들 줄’이란 구절에서 유래하여
‘풍우대상’은 형제나 친척들이 상봉하여 같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풍우대상’은 ‘대상풍우(對牀風雨)’ 또는 밤빗소리를 들으며
침상에 나란히 눕는다는 뜻의 ‘야우대상(夜雨對牀)’이나 ‘대상야우(對牀夜雨)’라고도 하는데,
당(唐)나라 때 시인들이 시에서 자주 인용한 구절이다.
「와서 함께 묵을 수는 없겠소,
비바람 소리 들으며 침상 마주하고 잠들어 보세
(能來同宿否, 風雨對牀眠)」(백거이(白居易)
「밤 깊어 혼은 꿈속으로 먼저 날아가 버리고,
비바람 치는 밤 침대를 마주하고 새벽 종소리 듣네
(夜深魂夢先飛去, 風雨對床聞曉鐘)」(소철(蘇轍)
#부절(符節)은 절월(節鉞)이라고도 하며, 고대 중국에서 중앙 정권이 관원에게 어떠한 권한을 수여할 때,
그 관원에게 천자의 군정(軍政) 직권을 대행(혹은 천자를 대신해 지방을 순수)하는 것을 윤허한다는 상징물로써,
그 형태나 양식은 어떤 권력을 대표하느냐에 따라서 제각기 달랐다.
절월은 주로 군사권에 따른 상징으로써 주어졌다.
귀향길 안전 운전하시고
단란한 명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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