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 23:58ㆍ삶 속의 이야기들
기해(己亥)년 황금돼지해의 새 아침에 부치는 글
기해(己亥)년 새해가 밝았다. 2019년 기해년을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 돼지의 해>라고 역술가들은 말합니다.
기해년(己亥年)은 육십 간지의 36번째 해로 '기(己)'는 오행에서 흙(土)을 상징하며
그 색깔은 <황(黃)>이며, 해(亥)는 십이지에서 돼지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황금의 색깔인 황색과 연결되어
2019년 기해년을 <황금 돼지의 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돼지 꿈을 꾸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속설처럼
돼지는 다산(多産)과 재물(財物)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 욕심만 차리는 욕심꾸러기를 비아냥할 때 <돼지 같은 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면 으레 신년 희망을 세우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이 돼지처럼 욕심이 지나치면 화(禍)를 초래하게 됩니다.
일상의 삶도 그렇고 불자로서 보살행을 하는 사람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도 중도(中道)를 말하지만, 일찍이 <논어>에서 공자도
「지나침은 모자람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의미인데 이는 『논어』 「자선편 15편에」 이런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사(師, 자장(子張))와 상(商, 자하(子夏))은 어느 쪽이 어집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그럼 사가 낫단 말씀입니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子貢問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논어(論語) 〈선진(先進) 15장〉》)
아마도 공자의 제자 사는 매사에 의욕이 넘쳐 정도를 지나치고,
상은 좀 소심해서 늘 기준에 미달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늘 기준에 미달하는 것도 문제지만, 넘치는 것도 역시 문제라는 것입니다.
새해 첫날에는 으레 보랏빛희망의 계획을 세우지만,
그러나 실행하기도, 성취하기도 힘든 것을 지나치게 밀고 나아가면 도리어 모자람만 못한 것이 됩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계획이나 욕망을 모두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이 말의 의미는 술술 일이 잘 풀려나갈 때라 할지라도
자만하지 말고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순리에 따라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처럼.
(서호 영은사/ 문수보살)
불전 설화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로지 문수보살을 친견하겠다고 홀로 수행하던 한 비구가 수년을 정진했지만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끝내 문수보살의 성지인 오대산으로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어느 산중 절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편지 한 통 건너 주면서
마을에 닿으면 그곳에 돼지우리가 있고,
그 돼지우리 안에 있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암퇘지가 있을 테니
그 돼지에게 전해주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돼지에게 편지를 전해주라는 부탁도 요상 했지만 가는 길이기도 하고,
왠지 흥미롭기도 해서 그 비구는 그러겠다고 수락했습니다.
그 마을을 지나다 보니 정말 돼지우리가 있고 암퇘지가 많은 새끼돼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우리 안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돼지는 누어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가 편지를 보자 벌떡 일어나 그 편지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벌렁 누어 네 다리를 하늘로 뻗은 채 죽어버렸습니다.
한편, 집안에서 이 광경의 시종을 지켜보던 주인은 깜짝 놀라 달려와
이상한 음식을 던져주어 멀쩡한 돼지를 죽였다고 그 비구를 윽박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비구는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드렸지만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멀쩡하던 돼지가 편지 한 장을 삼키고 바로 죽었으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끝내 돼지의 배를 갈라보기를 했습니다.
주인이 돼지의 배를 갈라보니 돼지의 위에서 나온 것은 한 통의 편지뿐이었습니다.
그 편지 내용에는 이런 사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久在塵勞中(구재진로중) 오래 진로(塵勞=번뇌) 가운데 있으면
昧却本來身(매각본래신) 본래의 청정신을 망각하기 쉬우니,
今朝收萬行(금조수만행) 오늘 아침 만행(萬行)을 거두고
速還靑山來(속환청산래) 어서 속히 청산으로 돌아오시오.
이 설화에 나오는 비구에게 편지를 부탁한 스님이 그토록 바라던 문수보살이었고,
돼지는 축생으로 변신하여 축생의 보살행을 한 보현보살이었던 것입니다.
고려시대 유명한 선승(禪僧)인 원감국사(圓鑑國師:1226~1292)란 분이 있습니다.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까지 지낸 그 분도
「순경(順境)을 만나면 비틀거리게 된다(逢些順境却顚忙)」 고 말했습니다.
일이 술술 잘 풀리면 자만하게 되고, 자만하면 습(習)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보살행도 지나치면 습(習)에 물이 들어 도리어 본성을 망각하게 된다는 의미를
문수보살은 보현보살에 보낸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미산 보현보살)
「일을 대할 때는 일에 대한 마음을 쓰지 않고,
마음을 쓸 때는 마음에 일이 없어야 한다(於事無心 於心無事)」 라는 경지가 아니더라도
새해는 살면서, 행하면서, 바라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매사 자만하지 말고,
잘 나갈 때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지 않도록 자성(自省)하고,
또 자성(自省)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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