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감국사 <고향>시와 남가일몽 이야기

2018. 7. 2. 20:32선시 만행 한시 화두




원감국사 <고향>시와 남가일몽 이야기

 

~故鄕/圓鑑國師~

 

審雨堂前天地闊(심우당전천지활)

遊仙枕上歲年長(유선침상세연장)

縱然客路猶堪樂(종연객로유감락)

爭似催裝返故鄕(쟁사최장반고향)

 

~고향(故鄕)/원감국사(圓鑑國師)~

 

심우당(審雨堂) 그 앞에 천지는 넓고

유선침(遊仙枕) 베고서 꾸는 길고도 긴 꿈

나그넷길 아무리 즐겁다 해도

어찌 고향에 돌아감만 하랴

 

<용어풀이>

@원제(原題)示人으로 이 말은 사람에게 보인다는 뜻.

@審雨堂은 남가일몽의 주인공인 순우분의 집 이름

@遊仙枕(유선침)天寶遺事(천보유사)에 의하면 구자국에서 마노색의 베개를 받쳤는데,

이것을 베고 누우면 십주(十州), 삼도(三島)와 오호(五湖)에 노니는 꿈을 꾸게 되므로,

 현종(玄宗)이 이것을 遊仙枕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縱然(종연): 비록.

@爭似(쟁사): 어찌

@催裝(최장): 행장을 재촉함

@원감국사(圓鑑國師)는 본방 <원감국사와 우서>참조

 



남가일몽(南柯一夢)과 유선침(遊仙枕)의 고사가 황당하다 해도

 그것이 제시하고 있는 진실마저 부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무시(無始)이래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허구의 세계를 방랑하고 있는 나그네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망의 마음에 그것이 즐겁게 느껴진다 해도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감만 못하다고 한 것이다.

이 고향이 우리의 본연의 모습인 불성(佛性), 진여(眞如)를 가리킴은 말할 것도 없다.

~출처: 高麗高僧漢詩選/李元燮編著~



@남가일몽(南柯一夢) 이야기

 

()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술을 좋아하고 작은 예절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어느 생일날, 홰나무 아래서 술자리를 차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대취해 쓰러지자 친구들이 그를 집에 들여다 행랑에 눕혀 놓았다.

그런데 보라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오더니 괴안국(槐安國) 왕의 명을 받들어 모시러 왔다고 말했다.

순우분은 사자들을 따라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홰나무 아래의 큰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속에 들어가니 또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십 리를 가자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번화한 성읍이 나타났는데,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는 금색 현판이 걸려 있었고, 승상이 나와 영접을 했다.

순우분은 왕궁에 들어가 왕을 알현하고 그 자리에서

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으며, 남가군(南柯郡) 태수로 임명되었다.

 

순우분은 남가군에 부임하여 30여 년 동안 다스리며

위로는 왕의 총애를 받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52녀를 두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단라국(檀羅國)이 쳐들어왔다.

순우분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적을 맞아 싸웠지만 연전연패하고 말았고,

공주도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는 낙담하여 관직을 사직하고 서울로 왔는데,

그의 명성을 기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세력이 날로 커지자

괴안국 왕은 불안을 느끼고 순우분에게 말했다.

그대는 집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으니 잠시 고향에 다녀오는 것이 어떤가?

자손들이 여기에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3년 후에 그대를 맞이해 오겠네.”

순우분이 왕에게 물었다.

 “저희 집은 여기인데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러자 왕이 얼굴색을 바꾸어 말했다.

자네는 원래 인간 세계의 사람으로 집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네.”

그리고 두 명의 보라색 옷을 입은 사자를 시켜 순우분을 배웅케했다.

 

순우분은 동굴 밖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기가 행랑에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일어나 보니 하인은 정원을 쓸고 있었고,

친구들은 옆에서 발을 씻고 있었다. 순우분이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모두 기이하게 여겨 홰나무 아래를 파 보니 커다란 개미굴이 하나 있었는데,

개미들이 가득 모여 있었고, 커다란 개미 두 마리가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의 서울이며, 커다란 개미 두 마리는 국왕 부부였다.

또 하나의 구멍이 남쪽 가지 쪽으로 뚫려 있어 파 들어가니,

남쪽 가지 사십 척쯤 거리에 개미 떼가 또 있었다.

여기가 순우분이 다스리던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구멍을 원래대로 고쳐 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가 보니 밤에 내린 비로 개미굴은 허물어지고 개미도 없어졌다.

 

그는 남가의 헛됨을 느끼고 인생의 인내를 깨닫고

도문(道門)에 귀의하여 주색을 끊었다.

3년 후 정축년에 47세의 나이로 집에서 생을 마쳤는데,

그해가 바로 괴안국 왕이 약속한 3년의 기한이 되는 해였다

.(生感南柯之浮虛, 悟人生之忍. 遂棲心道門, 節棄酒色.

後三年, 歲在丁丑, 亦終於家. 時年四十七, 將符宿契之限矣.)

 

이 이야기는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전기소설(傳奇小說)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나온다. ‘남가일몽괴안지몽(槐安之夢)’,

일침남가(一枕南柯)’, ‘일침괴안(一枕槐安)’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