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6. 15:28ㆍ국내 명산과 사찰
천년의 불향기 영주 봉황산 부석사(2/2)
부석사는 경사지를 따라 여러 단의 석단(石壇) 위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대석단이라 칭하는 데 범종각을 지나면 진입축이 꺾이면서 높은 축대 위에
안양루(安養樓)와 무량수전이 서 있다. 안양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무량수전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량수전의 누하진입(樓下進入)방식은
공간의 닫힘과 열림에 의해 호기심을 유도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량수전 옆은 3층석탑이 그 뒤로 3 전각이 들어 서 있다.
3층석탐 아래 전각이 무량수전이다.
단하각
단하각(丹霞閣)은 정면 1칸, 측면 1칸짜리 맞배집으로
안에는 손에 파란 쥐를 잡고 있는 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단하(丹霞)란 말은 중국 낙동(洛東) 혜림사(慧林寺)의 목불을 태웠다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에서 연유한 것인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행본으로 발간된 《부석사》(대원사 간행.1995 초간)에서는
“단하각에 대해 ‘단하(丹霞)’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木佛)을 쪼개 땠다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를 모신 것”이라며 “선종과 연관이 있는 전각이다.
그러기에 도량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선방 근처에 지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하였다.
일설에는 봉황산의 봉황이 알을 쥐들이 훔쳐갈까 봐 지었다는 설도 있고,
봉황산이 영험하다 하여 무당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 무당을 쫓아내니
대신 쥐들이 들끓어 단하각을 세우니 쥐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이에 비롯된다.
3층석탑 옆 좌측 돌계단으로 된 오솔길을 올라가면 조사당이 있고
그 옆에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꽃을 피웠다는 선비화가 있고
18나한을 모신 응진당과 석조비로자나불과 석조 석가여래좌상을 모신 자인당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동북쪽 산기슭에 있는 고려 시대의 목조 건물로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1916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에 따르면 1377년(우왕 3)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조사당중창기〉에는 1490년(성종 21)에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전반적으로 규모가 작고 세부표현이 간결한 모습이다.
정면 가운데에는 살문을, 그 좌우 옆 칸에는 붙박이 살창을 달았다.
옆면과 뒷면은 모두 벽으로 막혀 있다. 기둥은 배흘림이 약화되었고
그 위에는 주두를 얹기 전에 헛첨차를 끼워 공포를 받치고 있다.
부석사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고려 시대의 벽화는 국보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 면 길이 약 205cm, 너비 약 75cm. 보살 2구와 사천왕 등 모두 6폭으로
화면의 손상이 심한 편이며, 현재 새로 지은 보호각에 진열되어 있다.
원래는 조사당 안쪽 입구에서부터 사천왕상, 보살상의 순으로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성보박물관으로 이관 되어 있다.
선비화는 의상이 사용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살아난 것이라 하는데,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의상이 죽을 때
“내가 여기를 떠난 뒤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자인당 북지리석조여래(비로좌나불)좌상과 석조석가여래좌상
자인당에는 3기의 석불이 안치되어 있다. 이 석불들은 원래 부석사 동쪽에 위치 했던
동방사지(東方寺址)에서 1957년에 옮겨 온 것이다.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었지만 3기의 이 석불을 이곳에 이안하면서
당호를 '자인당(慈忍堂)'이라고 고쳤다. 이는 부처님을 자인(慈忍)대사라고 하는데서 따온 것이라 한다.
자인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은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이다.
@북지리석조여래좌상
석조석가여래좌싱 좌우에 안치된 2기의 석조비로자나불상의 공식명칭은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이다.
보물 제2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왼쪽 불상 높이 99.5cm, 대좌 높이 105cm,
오른쪽 불상 높이 103cm, 대좌 높이 102cm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부분적으로 파손이 심한 편이지만 대좌와 광배를 갖춘 점이 눈에 띈다.
왼쪽 불상은 8각의 연꽃대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두 손은 부러졌으나 두 팔이 가슴 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어깨는 비교적 넓게 표현되었으나 신체의 굴곡은 없는 편이다.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평행한 계단식 옷 주름이 촘촘하게 표현되었다.
오른쪽 불상은 기본 형태에 있어 왼쪽 불상과 거의 유사하나,
보다 안정감이 있으며 신체의 양감이 풍부한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 불교사상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조성된 석불을 수인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법의는 우견편단과 통견의 2종류가 모두 공존하고 있는데,
전자는 주로 항마촉지인계의 불상에서, 후자는 비로사나불에서 착용하고 있다.
법의에는 잔잔한 평행계단식의 주름이 대부분의 불상에서 보이고 있다.
아울러 양 무릎의 사이에는 부채꼴의 주름이 있다.
둘째, 목에는 모두 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셋째. 머리에는 모두 육계가 표현되어 있는데 나발(螺髮)이 압도적으로 많이 표현되었다.
넷째, 자세는 모든 불상이 길상좌(吉祥坐)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측에 안치된 비로자나불
@석조석가여래좌상
부석사 자인당에 안치된 석조석가여래좌상(榮州 浮石寺 石造釋迦如來坐像)은
통일신라의 불상으로 2010년 2월 2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 87㎝, 무릎 너비 75㎝, 대좌 111×127×128㎝ 로.
자인당에 봉안된 3기의 석조불상 중 가운데 위치 하고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은 2기의 석조 비로자나불과는 얼굴의 인상이나 대의 처리 등이 다르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광배가 없고 불신과 대좌는 완전한 상태이다.
불상의 신체비례는 불신보다 불두가 크고 허리길이가 짧지만,
어깨와 무릎 폭이 넓어 앉은 자세가 안정감이 있다. 나발로 된 머리에는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근 편으로, 아래로 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있다.
수인은 왼손을 복부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뜨리고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불신에는 통견으로 대의를 걸치고, 대의 안에 대각선으로 입은 내의가 있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내의의 옷단은 꽃무늬(花文) 장식이 있다.
옷 주름은 신체와 자세에 따라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앉은 무릎 사이에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부채꼴 옷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 기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앙련(仰蓮)으로 표현된 상대는
연꽃잎에 장식을 더해 화려함을 더하고, 팔각의 중대에는 여래, 보살, 천인 등을 조각하였다.
특히 뒷면에는 반가좌의 석장을 든 지장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하대는 복련(伏蓮)으로 표현하였는데, 상대와 중대와 달리 장식성을 배제하면서 꽃잎 끝을 살짝 솟게 처리하였다.
팔각형의 기단석은 각 면에는 안상(眼象)으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 보살상과 천인, 사자 등을 조각하였다.
불상의 상호와 법의 표현, 대좌의 장식 등을 고려해 볼 때
경북 예천 청룡사의 석불 등과 유사하여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석사 자인당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한 석불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통일신라 석굴암 본존의 항마촉지인 계열을 따르는 중요한 석불로,
내의와 꽃무늬 장식 등은 통일신라 후반의 지방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괴산 각연사 비로전의 석조비로자나불)
부석사 자인당에 안치된 복지리 석조여래좌상 2기(보물 제220-1/2)는
석조비로자나불로 중앙에 안치된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제1636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조성된 석조비로좌나불로는
괴산 각연사 비로전의 석조비로좌나불조상(보물제433호)이 있는데 신광에 부조된 여래가 동일하다,
부석사의 비로좌나불과 각연사비로자나불은 모두 9불이 부조되어 있다.
석조석가불로는 부석사의 석가불은 통견으로 광배가 없는데
부석사의 본사인 의성 고운사 약사전의 석조석가여래좌상(보불제246)에 는 광배가 뚜렷하고 우견편단이다.
(의성 고운사 약사전의 석조석가모니불)
@응진전
정면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1976년에 보수했다.
응진전은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1976년에 보수하였다.
이 건물의 공포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적인 익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는 내부에 석고로 만든 석가 삼존불과 십육나한 상이 안치되어 있다
단청을 보니 옛 건물은 아니고 최근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각의 창살문
삼성각에 반가사유상을 한 여래를 모신 것이 특이하다.
범종각이다. 불전사물이 모두 여기에 있다.
종두가 힘이 넘친다.
옛전에 없던 관음전을 새로 조성한 모양이다.
관음전은 아직 내부공사 마무리가되지 않은 모양이다.
관음전에서 내려다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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