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3대철불 3) 충주 백운암 철재여래좌상

2018. 4. 8. 11:58국내 명산과 사찰




(충주3대철불 3)  충주 백운암(白雲菴) 철재여래좌상(鐵材如來坐像)

 

충주 3대 철불좌상의 마지막 투어로 빌미산 백운암을 들렸다.

앞서 포스팅 한 단호사(丹湖寺)와 대원사(大圓寺)는 충주 시내에 있지만

유독 백운암(白雲菴)은 시내와 떨어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빌미산 자락에 있다.

백운암(白雲庵)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에 소속되어 있다.

조선 후기 왕실의 무녀인 진령군(眞靈君) 여대감(女大監)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백운암전경)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고종 19(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 황후가 충주지방으로 피신을 왔을 때 윤씨 성을 가진 한 무당이

곧 환궁하게 될 것을 예언했는데 무당 윤씨의 예언대로 본궁에 환도하게 되자

명성 황후는 윤씨를 서울로 불러 칭송을 하며 <진령군> 작호와 함께 여대감의 벼슬을 내리게 되었다.

이때 명성 황후가 윤씨에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고향으로 내려온 진령군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이 나타나 내가 살 집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꿈에 나타난 부처님은 억정사(億政寺) 절터에 방치된 철불이었다고 한다.

진령군은 전날 명성황후와의 약속을 상기하고, 즉시 상경하여

명성 황후에게 절을 짓겠다고 도움을 요청하자

명성 황후가 내린 내탕금을 지원받아 창건한 절이 지금의 백운암이라고 한다.


 

1886년 진령군이 명성황후가 내린 내탕금으로

 인법당(因法堂)을 지은 이후 법당과 요사를 함께 사용하다가,

1977년 법당과 요사를 분리하고 법당은 대웅전으로 편액 하였다.

당시 주존불로 안치된 불상이 쇠로 된 철불좌상이라 전면에 금칠하였다고 한다.

1991년에는 삼성각을 짓고 요사를 수리하여 현재의 가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99년 주지 진송(眞松)이 국비를 지원받아 대웅전을 재건하였고,

2002년 축대 보수는 물론 도로 공사를 통해 비포장길이었던 사찰의 진입로를 보수하였다.


(좌측전각은 삼성각, 우측이 대웅전으로 철불을 봉안하고 있다.)


백운암(白雲庵)의 대웅전에 본존불로 봉안된 철재여래좌상은 현재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단호사 철불좌상 및 대원사 철불좌상과 함께 충주의 뛰어난 3대 철불좌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철불상 조성할 당시 개금불사(황금색으로 표면을 칠한 것)된 철불상은

20061월 전면보수로 개금과 녹을 제거한 것이다.



또한, 철불상은 충주시 대원사와 단호사에 있는 철불상과는

그 형체나 조각 수법을 전혀 달리하고 있다.

단호사와 대원사의 철재여래좌상은 아미타불이지만, 백운암의 철재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이다.

백운암 철불상의 모양을 살펴보면 나발의 머리엔 큼직한 육계가 있고

상호는 원만하여 위엄과 자비가 넘친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法衣)

가슴속으로부터 무릎에 이르기까지 평행 원호를 그리면서 흘렀고

양 무릎을 자연스럽게 덮고 있으며, 두 손을 자연스럽게 양쪽 무릎에 놓았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이란 불상이나 승려가 가사를 입은 모습에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는 방법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방법이 있는데,

앞에 있는 것을 통견(通肩)이라고 하고 뒤에 것을 우견편단(右肩偏袒)이라 부른다.

편단(偏袒)이란 말 자체가 한쪽 팔을 드러낸다는 뜻이며,

이 형식에는 비구가 존자(尊者)를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석씨요람(釋氏要覽)?에서는 ()에 이르기를 일체 공양은 모두 편단이다.

이는 집작(執作)에 편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편단우견이 일하는 데에도 편리하다고 주장했다.


 

백운암의 이 철재여래좌상은 고려 시대 12세기경의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백운암의 이 철불좌상의 크기는 높이 87cm, 어깨 폭 43cm, 무릎 폭 66cm이다.

이 암자에는 또한 반자가 있으니 <바라>라고 불리는 징같이 생긴 종의 일종이다.

지름 43cm, 두께 폭 10cm인데 장식으로는 5개의 연과를 가진 자방이 있고

그 주변에 12판의 연화문을 돌렸으며 그 밖으로 3줄의 돌기선을 그었다.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되어 백운암 대웅전에 봉안된 철재여래좌상은

나말여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충주 3대 철불좌상 중에서 가장 연대가 앞선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원래 이 불상은 인근 대규모 사찰이었던 억정사지(億政寺址)에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억정사(億政寺)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절로서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341(충혜왕 복위 2)대지(大智) 국사 찬영(粲英)이 이 절을 유람하던 중

출가를 결심하고 서울 삼각산의 중흥사(重興寺)로 가서 출가하였다.

찬영은 또 1389(공양왕 1) 이 절에 머물렀는데, 1390년 공양왕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아

이단자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공양왕이 처벌을 허락하지 않았다.

찬영은 이해 6월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억정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절터만 남아 있는데 절터에는 1393(태조 2)에 세운 억정사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

보물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위키백과~

 

충주는 철의 산지로 이 철불과 함께 대원사 소장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제98)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512)이 전하며,

이들을 일컬어 충주지방의 3대 철불이라고 한다.

여러 조각을 나누어 주조하여 이어 붙인 흔적이 표면에서 확인된다.

현재의 철불좌상은 200510부터 20061월까지 수리·보수를 시행하여

개금(改金)과 녹을 걷어내고, 결손 된 부분을 보수한 것이라고 한다.




백과사전에 의한 철불의 내용 및 특징을 살펴보면, 

나발(螺髮)로 촘촘히 표현된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으며,

 중앙에는 나발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작은 중앙계주가 부착되어 있다.

특히 이 상은 갸름한 얼굴, 물결치듯 치켜올린 날카로운 눈초리,

큼직한 콧방울을 가진 코, 두꺼운 입술로 인하여 실재감이 강한 얼굴이다.

다소 긴 목에는 삼도가 뚜렷이 표현되었으며, 부드럽게 곡을 준 어깨는 당당하다.

 편단우견의 대의는 신체에 착 감기듯 착용하여 가슴근육과 신체의 볼륨이 잘 드러난다.

왼쪽 어깨에는 대의를 접어 높낮이가 다른 삼각형의 띠 주름을 표현하였으며,

 비스듬히 흘러내린 주름은 다소 섬약하지만, 리듬과 탄력이 살아 있고,

부분적으로 번파식(飜波式) 주름이 확인된다.






  

수인(手印)을 보면,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였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바닥을 위쪽으로 하고

정면을 향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전형적인 항마촉지인의 수인은 아니다.)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는 무릎은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오른쪽 발만 노출되어 있다.

오른쪽 무릎은 탄력 있는 요철 주름으로, 왼쪽 무릎은 사선 주름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는데,

불신에 표현된 밀도 높은 주름과 달리 여백을 강조하였다.

무릎 아래로는 형식화된 부채꼴 주름이 넓게 자리 잡았다.

 




이 불상은 양식적으로 나말여초(羅末麗初: 9~11세기)로 추정되는 상들과 비교된다.

우선 당당한 신체에 비해 작은 머리, 길어진 불신의 비례, 폭넓은 무릎에서 오는 안정감,

근육이 발달한 가슴, 편단우견의 착의법과 왼쪽 어깨에 형성된 삼각형의 띠 주름,

강약과 변화가 있는 탄력 있는 주름, 무릎 아래로 펼쳐진 형식화된 부채꼴 주름 등은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제58)이나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567),

전 적조사지 철조여래좌상, 경기도 포천 출토 철조여래좌상,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 등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다만 이 상은 모든 면에서 10세기 초로 추정되는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유사하지만,

 다소 길어진 신체비례와 현실적인 얼굴 표정이 보인다.

따라서 이 상은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의 양식을 계승하고

부분적으로 지역적인 특색을 가미하여 제작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제작 시기는 장곡사 불상보다는 다소 늦은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상으로 추정된다.



(평가와 의의)

고려 전반기는 이른바 같은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불들이

여러 지역에서 제작되어 지역색이 강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백운암 철불 역시 충주 대원사 철조여래좌상 및 단호사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주 유파를 형성하고 있는 불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불상은 단호사 철불이나 대원사 철불로 이행되기 전 단계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이른바 충주철불의 시원 양식이라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3구의 충주철불 중에서 예술적·조형적으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삼성각)


삼성각은 독성, 치성광여래, 산신을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