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8. 12:58ㆍ삶 속의 이야기들
<일렁이는 사유1> 도봉산 오봉 가는 길에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마음은 해마다 달라진다.
5~60대가 다르고, 70대가 다르다. 이삼 년 전만 하드더라도
지리산 천왕봉이나 속리산을 밟았는데 이제 산은 커녕
걷는 것조차 한 걸음 한 걸음 헤아리며 걸어야 할 정도가 되었으니
하루 하루 산다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육신이 짊어진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삶에 대한 애착보다 삶의 의미 때문일 게다.
그래서 한동안 일체 걸음마를 쉬었더니 더 걷기가 힘들어졌다.
힘이 드니 자연히 걷는 것이 싫어졌다.
허리조차 굽어져 등을 대고 바로 누워 자기가 힘들어 옆으로 누워서 자야 하니
다리가 댕겨서 틈나는 대로 안마기로 마사지로 풀어주어야 하는 지금의 내 몸이다.
그래도 걸어온 길보다야 짧지만 걸어가야 할 길이 아직 남은 나이가 아닌가.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틈나는 대로 불암산 둘레길을 찬찬히 걸어 보았다.
첫날보다 이튿날이, 그리고 그다음 날은 그래도 조금 걸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에서 20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늘려나가니 한 시간 정도는 걸을 수가 있었다.
옛같으면 삿갓봉까지도 여유롭게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인데,
고작 둘레길을 걷는데 그만큼 시간도 길어지고 힘도 더 들었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내친김에 오기를 부려 일요일에 도봉산 오봉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옛같으면 반나절 코스인데 이제는 그렇게 긴 코스를 걷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시도해 보았다.
우이암까지 가는데도 걷다가 쉬다가 반복하면서 갔다.
우이암에 이르니 벌써 몸이 지쳤다, 몸이 지치니 마음이 간사해져 그만 하산하는 좋겠다고 유혹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힘든 일이 닥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일신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오욕(五欲)을 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오봉으로 향하는 길이 그렇게 멀어 보이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는 생전 처음이다.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속여보기로 했다.
사람의 마음은 한 생각이 들면 다음 생각이 들어 올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걸음 땔 데마다 <법성게>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며 걸었다.
글자를 새기는 그 순간만큼은 지친 마음이 조금씩 덜해졌다.
<법성게>가 끝나면 <반야심경>으로 시작하고,
반야심경이 끝나면 <신심명>의 글귀로 반복했다. 4~5번 반복하니 오봉에 닿았다.
우리의 의식은 컴퓨터의 자판기를 치는 것과 같다.
자판기로 「오봉」이란 글자를 친다면 먼저 <오>자를 치고 다음에 <봉>을 쳐야 한다.
<오> 자 역시 <ㅇ>를 치고 난 다음에 <ㅗ>를 쳐야 한다.
걸리는 시간이 0.00001초라 할지라도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 또한 그렇다. 한 생각(境界)이 들면 다음 생각이 들어오지 못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두 경계가 동시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의식이다.
의식을 완전히 벗어나 총체적으로 느낄 수있다면 이는 중생(衆生)의 경계가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초탈(超脫)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반야(般若)>의 경계요, 부처의 경계다.
며칠 전 어느 유명배우가 자살했다고 한다. 요즘 성화처럼 타오르는 미투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기계문명의 발달로 물질적인 생활은 편해졌지만 인간의 삶의 의미는 삭막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자실 이라는 것은 귀중한 생명을 버리는 일이다.
돈과 권력, 인기, 명예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생명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경전의 말을 빌리자면 수억 겁(劫)의 공덕을 쌓아야 얻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그 사람의 행위는 미워해도 사람까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죄는 미워도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 범죄학의 교훈이다.
내려오는 길 잠시 휴식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문득 이런 표어가 보인다.
「당신은 오늘도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의미 있는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의식을 전환해 보면 어떨까?
육신의 주인은 이 마음이다. 그 마음의 주인은 바로 의식이 아닌가?
한 경계에서 다른 경계를 옮겨가 본다는 것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의식을 잠시 전환해 보는 것이다.
도봉산 오봉을 오르내리면서 오늘 하루 지친 몸을 마음으로 속여보았다.
법성게, 반야심경, 신심명을 한글자 한글자를 새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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