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寡婦)들의 반란/백상계(白孀契)와 청상계(靑孀契) 이야기

2018. 2. 25. 14:32삶 속의 이야기들

 

 

 

 

 과부(寡婦)들의 반란/백상계(白孀契)와 청상계(靑孀契) 이야기

 

요즘 매스컴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투> 열풍이 태풍처럼 몰아지고 있다.

옛적에는 정치가나 종교계에 몸담은 사람들이 주로 이슈가 되었는데

 요즘은 일반 기업가나 유명인사는 물론 학계, 방송계, 예술계 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매스컴의 보도에 등장하는 그 가해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것이다.

 

원숭이들의 성희롱은 털을 만져 주고 벼룩을 잡아 주는 것이라 한다.

이는 일종의 원숭이들의 구애(求愛) 행위인데 야생 원숭이 관찰 보고에 의하면

이런 수작 부리는 것은 수컷이 아닌 암컷이며 도망 다니는 것은 수컷이라고 한다,

동물도 그러한데 성희롱이 꼭 남성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여성 우월주의에 대한 성문화와 관련된 별난 옛 풍습을 살펴보자.

 

실론의 원주민은 남녀가 어울려 놀면서 여자가 맘에든 남자가 있으면 접근하여,

엉덩이를 쳐 구애하는 풍습이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여자가

능동적으로 남성을 성희롱한 것이 아닌가.

실론(Ceylon)은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인데 지금의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마르스와 미네르바의 결투)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여인 천하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아마조네스(Amazonas)라는 여인국 이야기가 있다.

 아마조네스가슴이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인데 이 집단은 활을 쏘는 데 거치적거린다고

오른쪽 가슴을 불로 지져 맨가슴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잘라내고 전투에 임하는

() 전사족(戰士族)으로 알려져 있다. 왕과 신하, 전사 등 모두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이 여인왕국은

종족 보존을 위해 이웃 부족을 침입한 뒤 남자들을 겁탈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내애를 낳으면 죽이거나 버리고 딸만을 길렀는데,

활과 창을 잘 다루도록 여자 아기들은 어린 적부터 오른쪽 유방을 제거했다고 그리스 신화는 전한다.

여인국은 말 그대로 완전 여인 우월주의의 올림픽 금메달 대표국가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공인된 남성 학대죄에, 성범죄 폭력에 살인, 그리고 유아 살인죄가 아닌가.

 

 

@중국에도 별난 이야기가 있다.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고도 리지앙이란 지역에 루구호(瀘沽湖)라는 호수가 있다.

이 호수 주변에는 살았던 모계사회 전통을 지키는 모수오족(摩浚族)의 이런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많은 한국관광객이 호기심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의 55대 소수민족에도 속하지 못한 15,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며

이곳은 여자가 가장(家長)이기 때문에 모든 재산권과 양육권을 가지고 있으며,

따로 결혼이라는 제도 없이 여자가 맘에 드는 남자를 골라 잠자리만 같이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하룻밤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성생활은 있어도 가정이나 애정이라는 정해진 규정이나 규범이 없으므로

여자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남자는 옛날 궁중의 후궁들이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듯

여인들의 눈길 주기를 바람뿐이었다고 한다. 여인의 눈길을 받지 못하면

평생 딱지를 못 떼고 노총각으로 살아야 한다. 이곳은 여인들은 황제인 셈이다.

시세 말로 하자면 완전 자유부인이다. 그래서 모수오족 여자에게는 남편이라는 단어가 없고

아이들에게는 아버지 대신 삼촌이라는 단어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짝짓기한 파트너가 두루두루 많았던 모양입니다.

옛날 어느 아랍인이 거느린 첩의 소생이 너무 많아

이름을 다 붙이지 못하고 1, 23호로 이름을 짓듯이... 

 

 

(아마존의 여인조각상)

그런데 오늘날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발발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지위가 여인국만큼 높아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성들의 성()에 대한 윤리의식이 퇴화가 아니라 아예 몰락되었다는 이야기일까.

사실 성()에 관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쪽이 가해자나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냐는 하는 문제는 획일적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때로는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성()의 풍습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물밑으로 은폐되어 암묵(暗默)적으로 용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구약성서에는 족장들에게는 여러 명의 첩을 두는 것이 허용되었고,

<진시황 본기>에 의하면 함양에 270개의 궁전을 짓고 6국에서 뽑아 올린 미녀 10,000명을 후궁으로 두고

 22명의 자식을 둔 진시황도 있지만,

반대로 옛적 인도의 남부지역 토다스족(todas)들은 일처다부제(一妻夫多夫制) 사회였으므로

아내를 양보하지 않고 죽은 남편은 죽어서 고통스러운 재앙을 당한다는 미신 때문에

아내가 다른 외간남자와 성관계를 반대하는 남편은 여자에 대한 비윤리적인 처사로 비난받았다고 한다.

여성의 권한이 문화적인 면에서 암묵적으로 그만큼 큰 사회였음을 의미한다.

 

(전쟁의 여신 아테네)  

여기에서 더 발전한 것은 솔로몬제도(solomon群島)의 주민들의 풍습인데

그들의 관습은 자신의 부인을 다른 섬의 부인과 일정 기간 교환하여 생활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1760년경 서유럽 국가에서는 부부를 서로 바꾸어 노는 풍습이 유행했는데

처음에는 하룻밤 정도었으나 점차 1~2주로 발전하고,

심지어 swinging 또는mate swapping이라 하여 아예 부부를 교환하기도 했다고 한다.

스와핑이라는 말은 원래 쓰지 않은 물건을 물물교환한다는 의미였는데

60년대 들어와서 부부 교환이라는 성 타락으로 둔갑하였다.

이것을 남녀의 평등(?)이라고 부르짖는다면 참 묘()한 평등일 수밖에 없다.

 

 

(아마존의 여인)

 

우리나라 성문화역사도 꽤나 흥미롭다. 輕合易離(경합이리)이라 했던가.

가볍게 만나서 쉽게 헤어지는 것이 옛적 우리네 사대부의 성문화다.

신라 시 향가인 <서동요>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여성이 남성을 유혹했던 일은 비일비재하고

이 풍습은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여성들의 자유로운 성 관습이 유행했다고 했다.

왕실은 일부다처(一夫多妻)제를, 일반 평민은 일부일처(一夫一妻)제가 원칙이었지만

연애는 자유로웠다고 하며. 여성의 재가도 자유로웠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원나라 축첩제도가 널리 퍼졌는데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낼 때 수행한 서긍이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첨가하여 기록한 것이 고려도경(高麗圖經)인데

이 책 23권에 보면 여름철에 개울가에서 남녀가 자유롭게 옷을 벗고

함께 목욕하였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개방되어 있었다고 한다.

 

(김홍도의 춘화도) 

조선 시대는 성리학을 국풍으로 숭상하고 이를 강력히 실천하려는 추세에 따라

여자 삼종(三從)의 도()가 강조되어 여성의 재가(再嫁)

윤리적으로 짐승과 다름없다고까지 비난받았다.

극기야 1477(성종 8) 7월 사족과부(士族寡婦)의 재혼을 금지한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였다.

고려 시대까지는 계급을 막론하고 과부의 재혼이 자유로웠으며 연애도 죄악시되지 않았는데

조선에 들어와서는 관리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회제도로 굳어져 있었다.

 

청상과부는 수절해도 30대 과부는 수절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이런 엄격한 여성억압 사회에서도 성에 굶주린 과부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바로 백상계(白孀契)와 청상계(靑孀契).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네 옛 풍습 중에는 서리라는 것이 있었다.

오이나, 감자, 옥수수, 수박 등을 훔치는 풀서리, 닭이나, 오리 등을 훔치는 살서리가 있었는데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도둑질이 되겠지만 당시에는 경미하여

재미 삼아, 미담으로 묵계적으로 인정되어온 우리네 농촌의 옛풍습이었다.

거기에 덧붙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과부재가가 금지되지 이에 암묵(暗默)적으로 공인된 <서리>

바로 백상계(白孀契) 청상계(靑孀契)로 불리는 과부들의 서리인 것이다.

 

조선 후기 재야선비 송남잡식(松男雜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선의 개가금지(改嫁禁止)의 관습에 묶인 한양의 늙은 과부들이 곗날 홀로 사는 홀아비를 보쌈하거나

심지어 한양의 운종가(雲從街: 지금의 종로거리)를 지나는 서생(庶生)을 보쌈하여

벽장에 숨겨두었다가 곗날 당첨된 과부가 그 벽장 안으로 들어가는 행운을 누렸다고 한다.

로또 당첨보다 더한 이런 행운을 누린 나이 많은 과부들의 이런 모임을 白孀契(백상계)라 하는데

뒷날 사대부의 젊은 과부들에까지 이에 뒤질세라 유행하여 靑孀契(청상계)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는 한마디로 과부 개가금지법에 대한 조선 시대 과부들의 반란인 셈이다.

 

(혜원의 춘화도) 

중국 최초의 한역 경전이라고 불리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유교경(遺敎經)><위산경책(潙山警策)>과 더불어 불조삼경(佛祖三經)이라 불리는 경전이다.

그 경전의 제23장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처자와 가정에 얽매인 것은 감옥에 갇힌 것보다 더한 것이다.

감옥은 풀려나올 기한이라도 있지만, 처자에게서는 벗어날 생각조차 없다.

색에 대한 정과 사랑을 어찌 뿌리치고 도망쳐 나올 수 있을랴.

비록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갈 위험이 있더라고 그곳에 마음을 두어 즐거이 엎드리니

진흙탕에 스스로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부(凡夫)라 한다.

이 문을 뚫고 나와 흙탕을 벗어나면 아라한(阿羅漢)이 된다.

 

남녀의 성()문제는 시시비비(是是非非)의 대상인가, 아닌가.

승찬스님의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하리라는 심신명의 글귀가 알쏭달쏭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