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국(息國)의 도화부인 이야기

2018. 2. 18. 23:40한담(閑談)



식국(息國)의 도화부인 이야기

 

기원전 1110년 지중해까지 진출한 앗시리아인들은 여자의 동의를 얻어 키스를 하더라도

남자의 아래 입술을 잘라고, 동의를 하더라도 두 남녀를 간통죄로 처벌했으며,

기원전 18년 로마법에서는 간통한 남녀를 목격한 시아버지나, 남편에게는 살인을 허용했고,

이를 묵인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간통금지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매스컴은 하루도 빠지지 않는 성범죄 관련 뉴스와

이에 질세라 잇따른 <미투> 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성범죄라는 말은 옛적에는 간통이니 불륜이라는 말이 2005년 간통죄가 폐지됨으로 인하여

이 용어들로 대체되어 줄기차게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성범죄라 하면 당연히 여인이 피해자로 인식되는 것이 상례인데

 범죄의 유형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을 따르면

 모든 범죄의 뒤에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

사실 범죄의 구성요소는 아니지만, 여자가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지조와 정조를 지켜 초지일관(初志一貫)한 여인도 있지만,

그보다도 가정은 물론 한 국가를 말아먹은 여인이 어디 한 둘인가.

(릴리트)  

기독교의 성경만 보드라도 아담을 유혹하여 무화과를 따 먹게 한 것도 이브라는 여자가 아닌가.

기독교의 성경은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를 만들었다고 하는 데

유대교의 정경에 따르면 아담의 첫 부인은 <릴리트(Lilith>로 하나님이 붉은 흙으로 빚은 여자라 한다.

유대 학자들이 제시한 말에 따르면 성경 창세기 127절에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하였으니

이는 동시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이야가 되는데 같은 내용은 담은 창세기 제2221절과 22절에는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의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따로 만드시고..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라고 되었으니

이는 전술한 내용과 상반되는 이야기로,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그 후에 이브를 창조한 것이 된다.

여기에도 아담의 이름은 나오긴 하지만 이브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형상을 빌어 아담의 갈비뼈에서 창조한 여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양귀비동상)

  

진위에 대한 시비(是非)의 논란은 학자들에 맡기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유대교의 신화에 따르면 릴리트라는 여자는

아담의 첫 부인이면서 음탕하고 사악한 여인이며

여성 상위(上位)시대를 주창한 최초의 여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은 체위(體位)를 말하는 것이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자라면 이 말의 의미를 주해 없이도 잘 아실 것이고...

릴리트는 히브리어로 <밤의 괴물>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악마의 신으로 알려진 데바신이 바로 이 릴리트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로 보아 기독교의 신화도 여인에 관한 한 지고청순(至高淸純)한 것만은 아닌 것 같고..

 

중국의 역사도 피장파장이다. 영웅호걸은 愛江山 更愛美人이라고 하여 드러내 놓고 놀았으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웅호걸, 제왕을 갖고 논 것은 여인이 아니던가.

()나라를 말아 먹은 달기(妲己)를 비롯하여 당()나라 현종을 몰락시킨 양귀비 하며,

가기(歌妓)로 예쁘고 총명하여 한실의 재상 왕윤의 수양딸로 들어가

공공연하게 동거하다가 삼국지의 이름을 드날린 명장 여포를 몰락시킨 초선 등등.

영웅호걸의 호색을 이야기하자면 그것도 유부녀(有夫女)에 관심을 쏟은 호걸은 단연 조조가 아닐까.

65세에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무려 25명의 첩을 두었으니,

그것도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만 하더라도 15명이나 되고,

15명 중 7~8명은 유부녀였다고 하니 이만하면 신 삼국지도 만들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거기에 비하여 육신의 정절은 지키지 못했지만,

여인의 도리를 굳게 지킨 신라의 도화랑이야기도 있지만

중국춘추전국시대의 역사에 나오는 석부인도 있어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서시)

기원전 684년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는 강대국으로 천하 통일을 꿈꾸고 있을 때다.

()나라 문왕(文王)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식() 나라와 채() 나라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때 식후(息侯)와 채 애후(蔡 哀侯)의 부인들은 진()나라 진후(陳侯)의 여식들이었다.

식 나라에 시집와 있는 식부인 규씨는 진 성공의 둘째 딸이었고, 채부인은 진 성공의 맏딸이었다.

그중 차녀인 식부인 규씨는 아주 아름다웠고 자색이 복숭아꽃 같았다.

어느 날 식부인 규씨는 자기 친정인 진()나라에 가다가 언니가 출가한 채나라를 경유했다.

채 애후는 자기 부인보다 식부인 규씨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화려한 잔치를 벌여 식부인 규씨를 대접했다. 채 애후는 너무 기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만 점점 음담패설로 은근히 유혹하게 이른다. 이에 크게 노한 식부인 규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채 나라를 떠나 남편인 식국으로 돌아와 자기 남편인 식후에게 이 사실을 말하였고,

식후는 화가 났지만, 국력이 채 나라보다 약해서 초나라로 가서

초 문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채 나라를 쳐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두 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던 초문왕은 식국의 청을 받아드려 채나라를 정복해 버렸다.

(초선) 

그런데 승전 축하연에서 강제로 불려 나온 식부인 규씨를 보자

초 문왕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아예 식국을 멸망시키고

식후(息候)를 멀리 유배시켜 놓고는 규부인에게 시집오라고 강요했다.

식부인은 단호히 거절했지만, 만약 자살이라도 하면 식국의 국민 모두를 죽여버리겠다는

초 문왕의 엄포에 밀려 결국 수락하게 되어 두 아들까지 낳게 되었다.

그러나 두 아들을 낳기 전에도, 낳은 후에도 규부인은 초 문왕과는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다시 수년이 지나 인접한 황나라군을 이기고 승리해서 돌아오는데,

초 문왕은 그날 밤 꿈에 죽은 식후가 나와 산발한 머리로 외친다.

내 너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를 죽게 했느냐,

왜 남의 부인을 뺐고 내 나라를 멸망시켰느냐, 내 이미 너의 죄를 상제(上帝)께 아뢰었다.”

라고 말하고는 다친 뺨을 때렸다.

 초 문왕은 비명을 지르며 터진 상처의 피고름이 너무 아파 그날 밤으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장자 웅간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도오이다.

(달기) 

인과응보(因果應報)인가.

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가는 것과 같고.

시퍼런 칼날 위에 묻은 꿀을 핱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이를 알면서도 애욕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래서 일찍이 부처님이 이 중생을 일러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 말씀 하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