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7. 07:03ㆍ대승찬
(주가각)
보지공화상의 대승찬
(제1구~20구)
보지공화상 대승찬
<대승찬>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금릉(金陵)의 보지공(寶誌公; 418-514) 화상이 황제에게 지어 바친 글이다.
보지공화상은 당시 고구려에까지 그 이름이 잘 알려질 정도로 명성이 높은 고승으로
보지공 화상이 지은 이 <대승찬>은 짧은 시구 속에 불교의 진수를 잘 표현한 노래로서,
일숙각 선사의 <증도가>와 3조 승찬의 <신심명>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3대 선시(禪詩)중 하나에 속한다.
지공화상에 대한 일화로 달마대사가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를 뵙고 문답한 후
양무제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자 휑하니 북위 소림사로 떠나버리자
무제가 측근에 있던, 당시 기인으로도 알려진 고승 한분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묻자
「저 분은 관음보살의 화신입니다.」 하고 알려준 분이 바로 지공화상이라고 한다.
지공화상은 육조 시대의 스님으로서
보공(寶公), 보지(寶誌). 보지공(寶誌公), 지공(誌公)이라 불리며
성은 주(朱)씨 섬서성 한중부(漢中府)에서 태어나 어려서 출가하여
도림사(道林寺)의 승검(僧儉)에게서 선을 배웠다.
거처와 음식이 일정하지 않고 머리를 길러서 다니며 비단 도포를 입고
석장(錫杖)을 짚고 다니는 기인(奇人)으로 신통한 일을 많이 나타내고
그가 예언을 하면 맞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천감(天監)13년 겨울화림원(華林園) 불당(佛堂)에서 97세로 입적하다.
(주가각)
<禪要 跋>
『복주 고령사 신찬스님은 “경을 읽는다고 하여 묵은 종이만을 뚫어지게 본다”라고 하였고,
윤편은 “책을 읽는다고 해도 술찌끼 같은 내용을 맛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도는 말과 글자로써 구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의 실체는 소리와 모양이 없으니,
말과 글자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그 내용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 비록 중생의 근기에 따라
교화하는 법을 자상히 했더라도 십이부법을 말씀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달마스님이 서역에서 오시어 불립문자를 주장했더라도
법을 전할 때에 얼굴을 맞대고 입으로 전했으니, 이 또한 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도는 말과 글자에 있지 않더라도 실로 말과 글자를 여의지도 않습니다.
특히 가장 정미로운 뜻은 말 밖에 갖추어져 있어 쉽게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의 공부하는 이들이 자주 말 떨어지는 곳을 집착하여 그 정미로운 뜻을 알지 못합니다.
부질없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지 못하니,
마침내 말과 글자를 방해물로 여겨서 고령사 신찬스님이나 윤편이 격렬하게
‘묵은 종이와 술찌끼’라고 비방하는 결과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말과 글자야말로 바로 마음의 빛을 드러내어 오묘한 도를 그려내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처음부터 도를 장애하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고봉화상의 많은 설법 가운데서 도 닦는 비법을 추려 직옹 홍군이 『선요』라 이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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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각)
1.
大道常在目前(대도상재목전) 대도는 항상 눈앞에 있어,
雖在目前難覩(수재목전난도)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렵다.
2.
若欲悟道眞體(약욕오도진체)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자 하면,
莫除聲色言語(막제성색언어) 소리, 색, 언어를 제거하지 말라.
3.
言語卽是大道(언어즉시대도) 언어가 바로 대도이니,
不假斷除煩惱(불가단제번뇌) 번뇌를 끊어 제거할 필요가 없다.
4.
煩惱本來空寂(번뇌본래공적)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지만,
妄情遞相纏繞(망정체상전요) 망령된 생각이 번갈아 서로 얽힌다.
5.
一切如影如響(일체여영여향) 모든 것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니,
不知何惡何好(부지하오하호)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지 알 수가 없다.
6.
有心取相爲實(유심취상위실) 마음을 가지고 모양을 취하여 진실로 여기면,
定知見性不了(정지견성불료) 끝내 견성(見性)하지 못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7.
若欲作業求佛(약욕작업구불) 업(業)을 지어 부처를 구하려 한다면,
業是生死大兆(업시생사대조) 업이 바로 생사(生死)의 큰 조짐이다.
8.
生死業常隨身(생사업당수신) 생사의 업이 늘 몸을 따르니,
黑闇獄中未曉(흑암옥중미효) 깜깜하게 어두운 감옥 속에서 아직 깨닫지 못한다.
9.
悟理本來無異(오리본래무이) 이치를 깨달으면 본래가 다름 없으니,
覺後誰晩誰早(각후수만수조) 깨달은 뒤에 누가 늦고 누가 빠르겠는가?
10.
法界量同太虛(법계량동태허) 법계(法界)의 크기는 허공과 같거늘,
衆生智心自小(중생지심자소) 중생의 지혜로운 마음이 스스로 작다.
11.
但能不起吾我(단능불기오아) 단지 ‘나다’ ‘나다’ 하는 마음 안 일으킬 수 있으면,
涅槃法食常飽(열반법식상포) 열반의 진리 음식에 항상 배가 부르리.
12
.妄身臨鏡照影(망신임경조영) 허망한 몸 거울에 영상으로 비추어지나,
影與妄身不殊(영여망신불수) 영상과 허망한 몸 다르지 않네.
13.
但欲去影留身(단욕거영유신) 영상은 버리고 몸만 남기려 한다면,
不知身本同虛(부지신본동허) 몸이 본래 허공(虛空)과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4.
身本與影不異(신본여영불이) 몸은 본래 영상과 다르지 않으니,
不得一有一無(부득일유일무) 하나는 있게 하고 하나는 없게 할 수가 없다.
15.
若欲存一捨一(약욕존일사일) 만약 하나는 두고 하나는 버리려 한다면,
永與眞理相疎(영여진리상소) 영원히 진리와는 서로 멀어진다.
16.
更若愛聖憎凡(갱약애성증범) 또한 성인(聖人)을 좋아 하고 범부를 싫어 한다면,
生死海裏沈浮(생사해리침부) 생사(生死)의 바다 속에서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리라.
17.
煩惱因心有故(번뇌인심유고) 번뇌는 마음에 말미암아 있기 때문에,
無心煩惱何居(무심번뇌하거) 마음이 없다면 번뇌가 어디 있겠는가?
18.
不勞分別取相(불로분별취상) 애써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
自然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 저절로 도를 얻음이 잠깐 사이이다.
19.
夢時夢中造作(몽시몽중조작) 꿈꿀 때에는 꿈속에서 조작하지만,
覺時覺境都無(각시각경도무) 깨어난 때에는 깨어난 경계가 전혀 없다.
20.
翻思覺時與夢(번사각시여몽) 깨어난 때와 꿈꿀 때를 뒤집어 생각해 보니,
顚倒二見不殊(전도이견불수) 뒤바뀐 두 견해가 다르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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