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6. 12:30ㆍ국내 명산과 사찰
단풍나들이 내장산 내장사(1/2)
참 간만에 내장사를 찾았다. 내장사를 처음 방문한 때가 2008년이니 거의 십년의 세월이 지난 셈이다.
내장사 주변은 당시에도 단풍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지
주변 물가도 숙박요금도 단풍요금이라고 해서 정해진 요금의 따불로 바가지를 쓴 기억 때문에
내장산을 다시 찾지 않았다가 이번 백양사를 들리면서 들러보았다.
처음 계획은 당일코스로 백양사만 보고 올라오려고 했는데
당일코스로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토요일 오후에 백양사로 향했다가
숙박할 곳을 구하지 못해 정읍으로 방향을 돌려 숙박을 하는 바람에 내장사를 들리게 된 것이다.
정읍에서 내장사는 10여분 거리라 아침 일찍 내장사를 가볍게 들리고
바로 백양사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이라 여겨 때문이다.
아침 6시, 내장사에 닿았다. 이 시간대면 주차장도 한가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미 임시 주차장까지 풀이었다.
빈 자리 하나 구해 간신히 주차를 하고 내장사로 향했다. 주차요금도 장난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철을 노리는 장사속은 변함이 없다. 내장사는 예전과 달리
입구에서 경내까지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단풍도 이제 한 물 간 것인지 화려한 색감도 떨어지고
벌써 옷을 버린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것도 많았다.
예전에 없던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어 시간도 절약할 겸 호기심도 있어 케이블카를 탔다.
<사찰내역>
@내장사는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내장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6년(무왕 37)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하여 영은사(靈隱寺)라 하였으며,
이 때의 가람규모는 50여 동이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1098년(숙종 3)에는 행안(幸安)이 전각과 당우를 새로 건립하고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8년(세조 14) 정혜루를 지었다.
1539년(중종 34)에는 내장산의 승도탁란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나자
중종은 내장사와 영은사가 도둑의 소굴이라 하여 절을 소각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장사와 영은사는 독립된 2개의 사찰이었다.
1557년(명종 12)에 희묵(希默)은 영은사의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으나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다.
1639년(인조 17)에는 영관(靈觀)이 법당 등을 중수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1779년(정조 3)에는 영운(映雲)이 대웅전과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
1923년에는 학명(鶴鳴)이 절을 벽련암(碧蓮庵)의 위치로 옮겨 짓고 벽련사라 하였으며,
옛 절터에는 영은암을 두었다. 1938년에는 매곡(梅谷)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1951년 1월 12일에 불탄 뒤 중건을 보지 못하다가 1957년에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하였고,
1958년에는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0∼1962년, 1974∼1977년에 중건하였고,
1992년 요사인 향적원(香積院)과 종각을 지었으며, 1997년에 해운당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ㆍ극락전ㆍ관음전ㆍ명부전ㆍ선원(禪院)ㆍ정혜루(定慧樓)ㆍ
사천왕문(四天王門)ㆍ일주문(一柱門)ㆍ요사채ㆍ종각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인 내장사 동종과 부도 등이 있다.
이 중 내장사 동종은 장흥 보림사(寶林寺)에 있던 것을 1890년(고종 27)에 영담(映曇)이 옮겨 온 것으로,
윤광형(尹光衡)과 조한보(趙漢寶)가 시주하여 1768년에 주조하였다는 명문이 있다.
높이 80㎝, 구경 50㎝의 중종이며,
용머리의 정교한 문양과 맑은 음향으로 조선시대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3년에 무기 제작을 위해 강제 징발되었다가 다시 찾았다고 한다.
부속 암자로는 벽련암ㆍ원적암(圓寂庵)ㆍ불출암(佛出庵)ㆍ정재암(淨齋庵)ㆍ
영은암(靈隱庵)ㆍ월조암(月照庵)ㆍ삼청암(三淸庵)ㆍ금선암(金仙庵)ㆍ은선암(隱仙庵)ㆍ
천진암(天眞庵)ㆍ남산암(南山庵)ㆍ용굴암(龍窟庵) 등이 있었으나
현재 원적암과 영은암만이 남아 있다. 절 주위에는 빼어난 경치의 명승지가 많으며,
내장산 안에 있는 산성은 임진왜란 때 희묵이 제자 희천(希天)에게 쌓게 한 것이다.
내장사 명부전(內藏寺冥府殿)
흔히 지장전이라고도 하는 내장사 명부전은 꽤 큰 건물임을 직시하게 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명부전은 지장전이라고도 하는데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현판은 탄허스님이 쓰신 것이며, 주련은 여섯 기둥에 붙어있다.
위대하신 지장보살 위신력은, 수만 겁을 설명한들 끝이 없음이여,
한순간 보고 듣고 엎드려 예배하면, 인천에 무량한 이익을 주시네,
지옥중생을 다 건지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원을 세우신 지장보살님이시여! 라고
지장보살님의 애뜻한 불심을 읽을 수가 있다.
내장사 대웅전(內藏寺大雄殿)
대웅(大雄)은 커다란 영웅이란 뜻으로 석가모니를 일컫는 말로 법화경에서 따온 말이라고 하는데
내장사 대웅전을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본래 증산교의 유파인 신흥 민족종교 ‘보천교(普天敎)’의 정문에 해당하는
‘보화문’(정읍시 입암면)을 해체한 후 복원한 것이다.
보화문은 원래 2층 형태였지만 내장사로 옮겨 와 대웅전으로 복원되면서 단층으로 축소됐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목조건물이다. 보천교(普天敎)의 정문인 2층 형태의 보화문 건물을 옮긴 것으로,
옮겨 지으면서 2층은 생략되고 단층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안에는 석가불좌상을 비롯해서 영산후불탱, 나한탱, 신중탱, 그리고 금고(金鼓) 및 동종이 있는데,
1768년(영조 44)에 조성된 동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963년 이후에 봉안된 것이다.
이 대웅보전은 불행히도 2012년 10월 31일 오전 2시경 발생한 불의의 화재로 2시간 여만에 건물이 전소되고
지금의 대웅보전은 2015년 4월에 준공 된 것이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 아미타불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후불탱화와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아미타와 약사여래를 협시로 모셨다.
신중탱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보존으로 하는 전각이다.
이 전각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관음전의 현판은 작가미상이다. 아마도 판독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련에는 백의관음은 설함 없음을 설하고, 남순동자는 듣지 않음을 들었도다.
병 위의 푸른 수양버들은 삼하(여름)를 지났고, 바위 앞 취죽은 시방에 봄이로구나. 하고
끝나는 관음전 좌측 끝인 네번째 주련에 새겨진
암전취죽시방춘(巖前翠竹十方春) 이 정말 멋스럽게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내장사 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소재지 전북 정읍시 내장동 588. 총 높이 80㎝,
몸체 길이 60㎝, 입 지름 50㎝로, 소형이나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입 주변에는 한 개의 덩굴무늬 띠를 둘렀으며,
어깨 부위에는 덩굴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가 잇대어 배열되어 있다.
어깨 아래로는 2줄로 만든 작은 원 안에 범자를 도들 새김 하였으며,
24개의 원을 배열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몸체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유곽을 4개두고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유곽을 만든 띠는 덩굴무늬로 채웠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을 양각하였다.
몸체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장식한 듯 한 문양이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하였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하였다.
내장사 극락전(內藏寺極樂殿)
내장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겹처마 팔작 지붕 건물로,
법당안에는 11면(面) 42수(手) 관음입상을 중심으로 관음후불탱, 칠성탱, 산신탱이 있으며
전부 근래에 조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주련에 보면 ‘내게 아미타불을 묻지 마라,
일념으로 돌이키면, 물은 푸르고 산은 텅 빈 가운데 있네,
맑은 바람에 달 떨어진 가을이구나.’ 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내장사 3층석탑(內藏寺三層石塔)
아직은 만든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은 삼층석탑이 대웅전 앞 멀리 떨어져 산세를 맞이하며 서있다.
내장사는 1979년에 인도로 부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본래 경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1997년에 조성된 것으로
1932년 영국의 고고학 발굴 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부처님 진신사리 32과 가운데
인도의 지나라타나 스님의 주선으로 모셔와 이 3층 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사찰 홈에 5층 석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탑은 구 삼층석탑을 모방하여 새조 조성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내장사 정혜루(內藏寺定慧樓)
정혜루는 정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이층누각 건물이다.
정부의 '국립공원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해운당을 헐어내고
극락전과 관음전을 건립하면서 사천왕문을 밖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정혜루를 세웠다.
정혜루는 1466년(조선 세조 12)에 지어진 건물이나, 현재의 건물은 197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정혜루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定은 禪定이니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함이요,
慧는 바른 지혜를 일으켜서 理(본체) 事(現家)을 밝게 관조함을 말하는 것이다.
사물을 두어 우주의 눈을 뜨게 하고 울리어 만물의 귀를 열고자 함이다.」
내장사 천왕문(內藏寺天王門)
천왕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좌우에는 사천왕이 가람을 수호하고 있다.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
좌로부터 북방수호신 다문천왕. 동방수호신 지극천왕
좌로부터 남방수호신 증장천왕, 서방수호신 광목천왕
~제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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