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3. 20:59ㆍ국내 명산과 사찰
바다향기 불(佛)향기따라 여수 금오산 향일암
추석 다음날이다. 추석이후 남은 휴가기간 동안의 일기예보를 점검해보니
맑은 날이 없고 비소식 뿐이라 다소 실망스럽다.
그래도 몇 년 만에 처음 맞은 긴 휴가인데 그냥 넘길 수가 없어
여수 향일암과 순천 선암사나 둘러볼 심산으로 일정을 잡았다.
어제가 추석이니 시골 내려갔을 사람은 다 내려갔을테니
작년 구정 때처럼 지방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한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착오였다.
적어도 정오쯤은 여수에 도달할 예정으로 새벽에 길을 떠났는데 무려 12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여수를 지나 향일암 근처에 도착하니 이미 밤 10시가 넘어 상가는 물론 식당들은 모두 철시한 상태였다.
저녁식사는 포기하고 숙소나 찾아보려고 지나왔던 여수로 되돌아 나오다가
문이 열린 식당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여 저녁은 해결했지만 더 큰 문제는 숙소였다.
식당주인에게 숙박할 곳을 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니 고개를 설래설래 흔든다.
추석연휴인데다가 사람들이 많아 여수에서 향일암 부근은
지정요금의 따따불을 주어도 방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찜질방이라도 찾아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지만 그마저 추석연휴라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난감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는데 차라리 광양이나 순천쪽으로 나가보면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고 귀뜸해 준다.
한 가닥 희망으로 카 네비로 숙박할 곳을 찾아보았다.
모텔, 여관 등등 이곳저곳을 전화로 확인했지만 모두 방이 없다고 한다.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다행히 순천지역에 예약된 방 하나가 취소되어 가능하다는 확인을 받고
늦은 밤에 순천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나의 여행습벽은 예약없이 다녔는데도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난감했다.
명절휴일이나 주말여행은 예약없이 움직이면
고생바가지라는 어느 여행자의 말이 정말로 실감나는 하루였다.
@향일암을 둘러보고 나서 식사를 할 요량으로 아침 일찍 순천을 떠나 향일암으로 향했다.
옛적보다 향일암 입구는 상가들이 더 많이 늘어서 있고,
오전 8시가 체 안되었는데도 주차할 곳이 없이 혼잡스러웠다.
상가주변 사람들 왈, 명절이나 토, 일요일은 늘 그렇다고 한다. 향일암은 명소이긴 명소인가 보다.
다행히 향일암 오르는 언덕 아래 입구에 식당전용주차장을 발견하고
식사를 하는 조건으로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비는 일기예보대로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큰 비는 아니여서 그런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가을비속에 나들이다. 이제 향일암으로 오른다.
등용문이다. 옛적에는 없었던 문이다. 바다가 인접해서 세운 모양이다.
@향일암(向日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644년(선덕여왕 13)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圓通庵)이라 하였으며,
958년(광종 9)에 윤필(輪弼)이 중창한 뒤 금오암(金鰲庵)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본거지로 사용되었으며,
1849년(헌종 13) 무렵에 현 위치로 자리를 옮기고 책륙암(冊六庵)이라 하였다가
근대에 이르러 경봉(鏡峰)스님이 절 뒷산에 있는 바위가
거북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영구암(靈龜庵)이라 하였다.
향일암(向日庵)으로 개칭한 것은 최근이며, 이곳에서는 일출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25년 최칠룡(崔七龍) 주지가 산신각, 취성루(就成樓) 등을 지었고,
1961년에는 박영주(朴永柱) 주지가 법당과 여러 전각을 중수하였다.
1970년 박천수(朴千壽) 주지가 취성루를 개수하였고,
1984년에 종견(宗見)이 칠성각과 종각을 중창하였다.
이어서 1986년에 대웅전을, 1987년에 삼성각을,
1990년에 용왕전(현 관음전)을, 1991년에 관음전(천수관음전)을 중건하였지만
불행히도 2009년 12월 화재로 대웅전과, 종무소, 종각 등 3채가 전소되었다.
(거북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_
현존하는 당우로는 2009년 12에 화재로 소실된 뒤 새로 지은 대웅전, 종각을 비롯해서
관음전, 천수관음전, 삼성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일암은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 기도도량으로 꼽히며 일출의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향일암의 위치는 거북이 바다 쪽으로 팔을 휘저으며 들어가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향일암은 금오산(金鰲山)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있다.
향일암이라는 명칭은 금오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울창한 동백이
남해의 일출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향일암은 암자 곳곳에 석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속리산의 관음암에도 석문이 있지만 그 보다는 몇 갑절 크다.
거대한 돌들이 입구가 되기도 하고, 기둥 역할을 한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잘 활용하여 그 아름다움을 살린 절이다.
해안가 수직 절벽위에 건립된 향일암은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과 잘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향일암 사찰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단 옆 바위 위에 <불이문>이란 돌기둥을 세웠다.
천연의 석벽이 시칠의 장엄함을 더한다.
향일암의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이다.
향일암의 대웅전은 원통보전이다. 2009년 12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원통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관음불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봉안했다.
범종각
관음전 가는 길
향일암의 해수관음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바위.
향일암은 관음기도처라고 한다. 그런데 경전에는 관음보살과 거북이의 연관관계는 경전에는 볼 수 없다.
바다와 인접한 곳의 사찰에는 이런 거북이 상을 많이 볼 수 있는 데 이는
추측컨대 거북이를 조성한 것은 바다와 인접하고 있고
또 거북이가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영물이기 때문에 조성한 모양이다.
미타석굴로 유명한 울주군의 송운사에도 거북상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수각인듯, 전각은 없고 용왕을 봉안했다.
향일암은 관음기도처라 그런지 관음전 외에 여기에또 천수관음전이 조성되어 있다.
삼성각이다, 법당 안에는 치성광여래와 나반존자(독성)와 산신을 봉안했다.
치성광 여래의 지물은 대개 법륜인데 보주를 들고 있다.
독성
산신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원통보전과 담장에 조성된 돌거북이들
반야문
반야문은 닫혀서 안을 볼 수가 없다. 귀가 길 삼성각을 내려오면서 담은 전경이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전경
등용문 중앙에 조성된 여의주 사람마다 큰 형상이다.
일주문 돌기둥에 쌍용을 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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