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9. 19:40ㆍ국내 명산과 사찰
(부여기행2) 부여 만수산 무량사
@무량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사찰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신라 헌강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신라 문성왕 때 창건했다고도 전해진다.
범일국사가 창건했다면 847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이후 무량사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때 홍산현에 속하였던 적이 있으므로 홍산 무량사라고도 불린다.
신라 말기의 고승 무염(無染)이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하였으며,
조선 세조 때 세상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던 김시습(金時習)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하였고,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震默)이 아미타불을 점안하고 나무 열매로 술을 빚어서 마시면서
도도한 시심(詩心)을 펼쳤던 사찰이다. 고려 초기에 크게 개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 때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무량사극락전(極樂殿)을 비롯하여 산신각(山神閣)·요사채 등이 있다.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에는 동양최대의 소조상인 아미타여래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33호로 지정된 무량사석등과 보물 제185호로 지정된 무량사오층석탑,
절 문 앞에 있는 거대한 당간지주(幢竿支柱), 김시습의 부도 등이 있다.
또한, 김시습이 1493년(성종 24) 이곳에서 죽자 승려들이 그의 영각(影閣)을 절 곁에 짓고 초상을 봉안하였는데
그 뒤 읍의 선비들이 김시습의 풍모와 절개를 사모하여 학궁(學宮) 곁에 사당을 짓고 청일사(淸逸祠)라 이름하고
그 초상을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서는 조선시대 상당수의 경판이 간행되었다.
1498년(연산군 4)『법계성풍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風水陸勝會修齋儀軌)』를,
1522년(중종 17)『몽산화상육도보설(夢山和尙六道普說)』을,
1470년에서 1494년 사이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源經)』을 간행하였다.
무량사 일주문. 천년고찰을 암시하는 퇴락한 단청에 만수산 무량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 뒤편에는 <광명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까지는 꽤 거리가 된다.
쉬어가는 정자, 쉼터의 정자가 우산형이라 이채롭게 여겨진다.
<천왕문>
일주문에서 한참 걸어오면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모신 사천왕의 지물(持物)은 다른 사찰과 다를바 없지만 머리에 쓴 보관이 색다르고,
특히 일반 사찰의 사천왕상은 얼굴색이 황색인데 반하여
여기 무량사의 다문천왕은 짙은 녹색을 한 것이 이색적이다.
녹색불상은 남방불교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좌로부터 북방을 수호하는 다문천왕, 동방을 수호하는 지극천왕
남방을 수호하는 증장천왕, 서방을 수호하는 광목천왕
천왕문에서 바라 본 사찰전경
극락전 앞은 오층탑 그 앞은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무량사극락전
무량사 극락전은 장곡사의 상대웅전, 개심사의 대웅전과 더불어 조선시대 대표 사찰건축물중 하나로 꼽힌다.
무량사 극락전은 현재 보물 제356호호 지정되어 있다.
밖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나 내부는 위아래층이 구분되지 않고 통층으로 되어 있다.
극락전의 천장문양(조선 중기)이 이채롭다.
1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2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되어 있다.
특히 2층의 각 기둥 사이에는 원래 빛이 들어오는 광창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나무로 막아놓았다.
아래층의 정면에는 가운데 칸부터 4짝·2짝·1짝의 살문을 달았으며
좌우 옆면의 앞쪽 1칸과 뒷면 가운데 칸에도 각각 문짝을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의 평방 위에 짜얹은 다포식으로, 아래층은 내외3출목인 데 반해
위층은 내외4출목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내부의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주위 4곳에 1칸 너비의 바깥둘레 칸을 설정하고
그 안에 3×2칸의 평면을 구획한 후 높은기둥[高柱]을 둘러 세웠다.
그 가운데에 불단을 만들고 불단 위에 소조아미타삼존불상을 안치했다.
천장은 종보[宗樑] 위에 우물천장을 만들고 그 아래의 대들보로부터 옆기둥에 걸쳐 충량을 설치했는데
그 끝을 용머리로 장식했다. 이 극락전은 공포 맨 위에 있는 쇠서의 형태가 초화형으로 장식되어 있는 점이나
내부의 살미첨차가 모두 연결되어 운궁 모양을 하고 있는 점 등에서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무량사극락전(無量寺極樂殿)소조아미타불삼존불상(塑造阿彌陀佛三尊佛像)
1633년 작. 높이 본존불상 540cm, 협시보살상 480cm.
중앙의 아미타불은 나발로 표현된 머리 위에 반타원형의 중앙계주와 원통형의 정상계주로 각각 장식되어 있다.
얼굴은 네모난 편으로 눈·코·입 등이 조그맣게 표현되었고
좁은 어깨는 움츠리고 있어 전체적으로 위축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아미타불
통견의 법의는 U자형의 옷주름이 좌우대칭으로 힘없이 늘어져 도식화되어 있으며
가슴 위로는 군의를 묶은 띠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다리에 올려놓았는데 각각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은 각기 머리에 화불과 정병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가슴에는 3줄로 늘어진 목걸이 장식을 하고 있다.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통견의 법의에 아미타구품인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 삼존불상은 본존인 아미타불의 복장품에서 나온 발원문에 의해
1633년(인조 11)에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세부표현에서도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흙으로 빚은 소조불상으로는 동양최대규모라고 일컬어진다.
@극락전후불탱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3호. 삼베 바탕에 채색. 아미타여래탱의 크기는 세로 680㎝,
가로 407㎝. 관음보살탱·대세지보살탱의 크기는 각 세로 585㎝, 가로 295㎝.
부여군 만수산 무량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었던 아미타후불탱화이다.
화기(畵記)는 없으나 1747년(영조 23) 화승 회밀(澮密) 등의 화원 집단이 주도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무량사 극락전 후불탱과 삼장탱(三藏幀)이 화풍이 같아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삼장탱은 도밀(道密)·일운(一運) 등 7명의 화원이 1747년에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아미타후불탱화와 삼장탱은 현재 박락이 심해 다른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극락전의 신중탱. 예적금강이 가운데 위쪽에 있고 그 아래 동진보살이 보인다.
<극낙전 주련>
極樂堂前滿月容 극락당전만월용
玉毫金色照虛空 옥호금색조허공
若人一念稱名號 약인일념칭명호
頃刻圓成無量功 경각원성무량공
四十八願度衆生 사십팔원도중생
九品含靈登彼岸 구품함령등피안
극락당 앞에 둥근 달과 같은 모습
옥빛 백호와 금색(의 몸)이 허공을 비추네.
만약 누가 일념으로 그 이름(아미타불)을 부른다면
깜박할 사이에 깨달아 무량한 공을 이루리라.
48가지 큰 서원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며
9품의 모든 영혼을 피안으로 이끄시네.
극락전 앞에는 괘불석주가 있다. 형태로 보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닌 것같다.
향적당
@명부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여 만수산 무량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과 그 권속 등 21구는
1633년(인조 11)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을 완성한 후 어느 시점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명부전의 존상들이 봉안된 무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사지(寺誌)에 전하고 있지만,
5층석탑과 석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중창되어 법등이 이어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중심 불전인 극락전과 그 안에 봉안된
소조아미타삼존불좌상이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명부전도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부전주련>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恒河沙劫難說盡(항하사겁난설진)
見聞瞻禮一念覺(견문첨례일념각)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지장보살 위대하신 신통함은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려워라
보도듣고 우러러 예배의 일념으로 깨달았네
사람과 하늘에 이익되는 길 헤아릴수 없구나
우화궁
<우화궁주련>
事業一爐香火足 (사업일로향화족)
生涯三尺短筇贏 (생애삼척단공영)
鍾聲半雜風聲冷 (종성반잡풍성랭)
夜色全分月色明 (야색전분월색명)
하는 일 향로에 향 사를 일 하나로 족하고,
생애에 남는 일 세척의 짧은 대지팡이로 뿐이다.
종소리는 바람결에 묻혀 시원하고
밤빛은 달빛과 더불어 밝구나.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靜邀山月歸禪室 (정요산월귀선실)
閑剪江雲袍納衣 (한전강운포납의)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자리이니 산을 베게 삼고
달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이니 바다를 술단지 삼아
크게 취하여 문득 일어나 춤을 추자니
긴 소매에 곤륜산이 걸리적거리는구나!
산에 걸린 달을 조용히 맞이하여 선방에 돌아와
강가의 구름을 잘라 납의에 솜을 누비노라.
<매월당 김시습>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 청간(淸簡) 법호는 설잠(雪岑) 으로 불린다. 서울 출생이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천재시인으로,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선비 출신이면서 승려가 되어 기행을 벌인 기인 등으로 불린다.
또 최초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작가이기도 하며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창한 성리학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태어난 지 8개월부터 배우지 않고도 글을 알았다고 한다.
이웃에 먼 할아버지뻘 되는 최치운이라는 학자가 그의 재주를 보고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시습’의 뜻은 바로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따온 것으로,
재주만 믿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을 계속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최치운은 이조참판을 지낸 명신(名臣)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은 청렴한 벼슬아치였다.
@그는 다섯 살에 이웃에 사는 수찬 이계전의 문하에서 《중용》과 《대학》을 배웠다.
보통 10대에 배우는 사서 중 두 가지를 다섯 살에 배운 셈이다.
이계전은 고려의 학자 이색의 손자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의 아버지이다.
소문을 들은 정승 허조가 그의 집으로 찾아와 그를 시험했다.
허조가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 자를 넣어 시를 지어보거라.」 라고 하자 즉석에서 김시습은 .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老木開花心不老)」라고 답하여
그를 놀라게 한 이야기 등 김시습과 관련된 많은 기담이 전해온다.
원통전
<원통전주련>
一葉紅蓮在海中(일엽홍련재해중) 한송이 붉은 연꽃 바다 속에 있는데
碧波深處現神通(벽파심처현신통) 파도물결 깊은 곳에 신통력 나타나네
昨夜寶陀觀自在(작야보타관자재) 어제 밤 보타산에 관세음보살님은
今日降赴道場中(금일강부도량중) 오늘은 이 도량에 강림하시네
영산전
<영산전주련>
千尺絲綸直下垂(천척사륜직하수)
一波纔動萬波隨(일파재동만파수)
夜靜水寒魚不食(야정수한어불식)
滿船空載月明歸(만선공재월명귀)
천길 낛시줄 곧게 아래로 두리우니
한 파도가 움직이매 만 파도가 따라 따른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 고기가 물지 않는데
빈 배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간다.
@영산전의 이 주련은 <금강경 오가해권하(제31 知見不生分)>
「所言法相者 如來說非法相 是名法相」에 대한 冶父의 頌句에서 나오는 말이다.
좌측 숲 아래에는 삼성각 우측은 청문당
<삼성각>
雲山昔日如來囑(운산석일여래촉)
位鎭江山度衆生(위진강산도중생)
萬里白雲靑嶂裏(만리백운청장리)
雲車鶴駕任閒情(운차학가임한정)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위촉으로
이강산의 중생제도 위해 위엄을 떨치셨네
만리뻗은 흰구름과 푸른 산봉우리 속에서
구름수레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극락전 후방모습
오층탑
석등
좌측은 태조암, 우측은 도솔암 가는 길이다. 더운 날씨라 도솔암만 들려 보았다.
도솔암은 폐가 수준이다. 입구는 물론 마당은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산신각도 풀만 무성했다.
도솔암에 수행자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태조암은 포기하고 돌아나오는 길 숲속의 별난 나무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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