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기행(7/7) 지리산제1문(智異山第一門) 과 오도재

2016. 7. 5. 21:32국내 명산과 사찰

함양기행(7/7)  지리산제1(智異山第一門) 과 오도재

지리산 제일문은 경남과 전남북에 걸친 영산 지리산의 초입관문으로 오도령 정상에 있다.

오도령(悟道嶺)은 해발 773m로 오도재라는 이름으로 회자한다.

한자어 령()은 우리말로 고개, , , , 터로 번역된다.

오도재 정상에 위치한 지리산 제1문은 예로부터 이곳에는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방장 제1문이 2개 있었으나

나무로 된 문은 6.25때 불타고 없어졌으며 돌로 만든 문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2005년 초에 오도재 옆 금대산에서 돌로 만든 방장 제1문의 표지석과

바위에 새겨진 방장 제1문에 관한 칠언시를 찾아냄으로써 지리산 제1문의 역사성이 증명되었으며,

함양군에서는 2006111일 지리산 제1문을 오도재 정상에 준공하였다.

함양읍에서 오도재 정상에 세워진 이 성곽의 길이는 38.7km, 높이 8m. 7.7m 면적은 81,

성곽위에는 팔작지붕으로 된 누각이 함께 건축되었다.






@가루지기전의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든 오도재는

옛적에는 전라도 광양, 경남 하동지역의 소금과 해산물을 운송하는 중요한 관문이었으며,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피신은거 하실 때 중요한 망루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오도재는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가장 단거리 코스였기에 2004년 도로가 개통하였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처럼 함양에서 오도재를 오르는 이 길은 도로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재를 넘어 뱀같이 구불구불하게 난 길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오도재 정상 바로 아래 지리산 주능선(노고단~천왕봉)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드넓은 지리산 조망공원을 조성하여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대자연의 어머니라 불리는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지리산 관광객 유치에 일익을 담담하게 된 것이다.

불행히도 이번 여행의 귀경길에 들린 오도재는

짙은 운무 속에 가려 그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운무가 없는 날이였다면 이런 경관이었을 것이다. 위 사진은 폄한 것이다.













아래 시는 위의 시를 다시 판각해 놓은 것이다. 글쓴이 원응스님은 서암정사 창건주이시다.





<지리산 천왕성모 마고할미>

지리산 천왕성모라 불리는 마고할미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성모사(聖母祠)라는 사당에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마고(麻姑)마고할미’, ‘마고선녀

또는 지모신(地母神)’이라고도 부르는 할머니로 혹은 마고할망 이라고도 한다.

주로 무속신앙에서 받들어지며, 전설에 나오는 신선 할머니이다.

새의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천왕성모는 조선 성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 사관, 시인이었던

김일손(金馹孫, 1464~ 1498)이 지은 <속두류록>에 의하면

14894월에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며 가족의 안녕을 빌며 고사를 지냈는데

천왕봉 정상에 한칸 정도의 돌담벽이 있고 담안의 너와집에 성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옛 천왕성모는 많은 수난 끝에 지금은 지리산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천왕성모에 관해서는 본방 지리산 법계사 참조)






산봉우리는 모두 운무에 가려져 있다.




마치 금강경을 읽은 기분이 드는 시다.






오도령수호신위(悟道嶺守護神位) 山神碑

이 비는 옛날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준령 오도재에 있었다는 성황당 자리에

 20031130일에 길손의 안녕을 위해 세워졌다.










()산신각복원비 전문

가락국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은 서기 532년 신라가 침공하자 선량한 백성을 전쟁의 재물로 삼을 수 없다하여

나라를 신라에 양국(讓國)하고 9만 대군을 거느리고 함양의 제한역(蹄閑驛) 아래 와서 머물렀다.

그리고 오도재 너머 촉동에 대궐터를 잡아 역사(役事)를 시작했으나

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칠선계곡으로 들어가 추성(楸城)을 쌓고 피난하였다.

그때 9만 대군이 머물렀던 곳을 대군지(大軍地)라 하며 구만동(九萬洞)이란 마을이 형성되었고,

활개미라는 곳은 활을 쏘며 무술을 연마했던 곳이다. 촉동에는 빈 대궐 터가 있고

추성에는 석성(石城)과 대궐터, 파수대, 뒤주터 등 옛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오도재는 마천, 하동, 구례로 통하는 고갯길이였는데

구형왕후인 계화부인(桂花婦人)이 올라와 제단(祭壇)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로부터 성황당이 생기고 지나가는 길손이 기도하고 주민과 무당들이 지리산의 천왕신(天王神)을 모시고

제를 지내던 곳인데 퇴락하여 이를 복원하고 비를 세운다.

2006110일 함양군 함양문화원 산신각복원추진 위원회




점점 운무가 더 짙어져 산 아래는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