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6. 23:15ㆍ국내 명산과 사찰
치악산 상원사와 꿩의 보은설화
옛날에 과거시험을 치루기 위해 한양으로 길을 떠난 한 나그네가 있었다.
몇날 며칠을 걸어서 원주에 있는 적악산(赤岳山)에 이르러 재를 넘게 되었다.
깊은 산 험한 재라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려고 벼랑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별안간 어디선가 산짐승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그네는 애처롭게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바로 길옆 바위 밑에서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장끼(숫꿩)를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비명소리는 바로 조금 떨어진 그 곳에서 구원을 청하듯 애타게 울부짖는 까투리(암꿩)의 울음소리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젊은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활과 화살을 빼들고 시위를 당겼다.
화살을 맞은 큰 구렁이는 죽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꿩은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공중으로 달아났다.
암꿩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허공을 한 바퀴 돌고는 함께 날아갔다.
오늘 좋은 일을 했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살생한 것을 생각하니 어딘가 마음이 꺼림칙했다.
재를 넘어가는데 어느새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몸도 피곤하였지만 깊고 험한 어두운 산속길이라
혹 산짐승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행여 인가(人家)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깊은 산속이라 인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때 수풀사이로 한조각 불빛이 가물가물 보였다.
‘옳거니 저기 인가가 있는 모양이구나. 사정이야기를 하면 하룻밤은 묵어갈 수 있겠지.’
나그네는 서둘러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따라 찾아갔다.
그 집 앞에 다다르니 다른 인가는 보이지 않고 외딴집 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몸은 피로하여 대문간에서 가쁜 숨을 내 쉬며 주인을 불렀다.
“주인장 계시오? 주인장 계시오.”
한참만에야 인기척이 나며 소복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 등불을 들고 나왔다.
“과거보러 가는 길손인데 산 속에서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습니다. 오늘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소복을 입은 그 여인은 슬픈 표정으로
“손님의 사정은 딱하지만, 오늘은 제 남편이 갑짜기 돌아가셔서
상중이라 청을 들어 줄수가 없군요. ” 하고 거절했다.
몸은 지치고 날은 저물어 달리 쉬어갈 곳도 없는 처지라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나그네는 주인 여자에게 거듭거듭 간청을 드렸다.
마침내 그 여인은 마지못해 허락하듯 “정히 그러시다면 따라 오시지요.” 하고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여인의 뒤를 따라 들어간 곳은 사랑채에 있는 방이었다.
“누추하지만 여기서 쉬십시오.” 하고는 젊은이를 힐긋 쳐다보고 나가는 여인의 눈빛을 보자
웬지 섬뜩한 감이 스쳤지만 오늘 하룻밤인데 하고 바로 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험한 산길을 걸어 온 터에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먹을 것을 청하려고 방문을 나서려고 할 때,
이를 알았는지 그 여인이 밥상을 차려 들고 들어왔다.
허기진 젊은이는 밥상을 받기 무섭게 걸신들린 듯 밥그릇을 비웠다.
상을 물리자 가물가물 졸음에 빠져 나그네는 그냥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꿈인지 생시인지 나그네는 차가운 것이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큰 구렁이 한마리가 가닥의 혀를 날름거리고 금방이라 삼킬듯 몸을 칭칭감고 있지 않은가.
조금 전에 밥상을 차려주었던 그 여인의 말소리가 귀전에 들렸다.
“당신은 오늘, 오던 길에서 산에서 죽인 구렁이가 바로 내 남편이오.
오늘밤 나는 내 남편의 원수를 갚아야 하게소.”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리에 듣자 소스라치게 놀린 나그네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애처롭게 우는 꿩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동정심으로 한 행동이 당신에게 죽을죄를 지었군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꿩을 죽이려고 달려던 당신 남편을 죽였다고 나에게 복수를 한다면
그 또한 내가 저질은 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결코 악의적인 행동으로 한 것이 아니니 용서해 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사나이로 태어나 청운의 큰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니 제발 용서하시고 살려 주십시오.”
하고 숨을 헐떡이며 애원하고 또 애원하였다.
여인도 듣고 보니 마음이 움직였는지
「내 남편과 나도 전생에는 사람이었는데 너무 탐욕이 많아 벌을 받고 구렁이가 되었소.
하지만 저 위 빈 절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종이 하나 달려 있는데,
오늘밤 날이 새기 전에 종소리가 세 번만 울린다면 당신을 살려 주겠소. 」 라고 제안하였다.
잠시 위기를 모면했지만 참담했다.
‘어느 누가 이 한 밤중에 빈 절에 달린 종을 울려줄 것이며, 그것도 여태껏 소리 안 나는 종을.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인과응보(因果應報)라더니 이것인가.
낮에 느겼던 그 꺼림직한 생각이 현실이 되었구나.
나그네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딱 감았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삼경이 지났지만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그때,
“뗑!”하고 종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는 귀를 의심하고 눈을 번쩍 떴다.
“뗑---”
이번에는 좀 약했지만 분명히 종소리였다.
그리고 다시 “뗑- ”
틀림없는 종소리였다.
세 번의 종소리가 나자 구렁이는
“하늘이 당신을 살린 모양이구려. 이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하고는
칭칭 감았던 나그네의 몸을 스르르 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날이 훤히 밝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젯밤 일을 생각하며 나그네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어젯밤 여인의 사랑채가 아니라 빈 절간 앞 벼랑의 바위 밑이었다.
젊은이는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종소리가 났던 빈 절의 종각을 찾아 올라가 보았다.
허물어진 종각에는 종이 하나 달려있었고 그 밑에는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이를 본 나그네는 가슴에 울컥했다.
“어제 살려준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남편과 자식까지 온 가족이 함께 머리로 종을 쳐서 소리를 냈었구나!
아무리 말 못하는 날짐승이지만 보은(報恩)을 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데
만인지상의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보러가는 내가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그 죽음에 보은을 하지 않으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나그네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죽은 꿩들을 정성스럽게 묻어주고,
과거 길을 포기한 채 빈 절을 고쳐 거기서 죽은 꿩을 위해 왕생극락을 염원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 절이 지금의 치악산 상원사(上院寺)요,
적악산(赤岳山)으로 부르던 산 이름을 꿩치(雉)자를 넣어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바꿔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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