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갓바위

2015. 11. 28. 18:26국내 명산과 사찰

팔공산 갓바위

전국에 갓바위 부처는 많지만 단연 팔공산 갓바위가 제일 유명하다.

팔공산은 몰라도 이 갓바위부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불교의 기도도량으로서

또 관광명소로서도 잘 알려진 곳이다. 팔공산의 갓바위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대구쪽에서 관음사를 경유하는 코스와 경산 선본사를 경유하는 코스인데

그 중에서 경산에서 선본사 쪽으로 오르는 코스가 제일 짧다.

이번 팔공산기행은 갓바위를 비롯하여 팔공산 주변의 몇몇 이름난 사찰을 둘러 볼 요량으로

오르는 길이 짧은 선본사 쪽을 택했다.

 

 

이른 아침 첫휴게소이며 마지막으로 들린 와촌휴게소. 멀리 팔공산이 바로 보이는 휴게소다.

갓바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팔공산은 해발 1,193m로 태백산맥의 보현산(普賢山, 1,124m)에서 서남쪽으로 연결된 산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東峰)과 서봉(西峰)이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으로 솟아 있다.

팔공산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환상(環狀)의 산지는 이른바 팔공산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구분지의 북부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

 

산맥은 남동쪽의 초례봉(醮禮峰, 648m)에서 시작하여 환성산(環城山, 811m)·

인봉(印峰, 887m)·팔공산을 거쳐 북서부의 가산(架山, 902m)에 이른다.

인봉에서 가산까지는 팔공산맥의 주형으로 길이가 약 20이다

 

 

 

팔공산은 신라 때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 중악(中岳), 부악(父岳), 공산(公山), ·동수산(桐藪山)으로 불렸던 산이다.

삼국사기제사지(祭祀志)에 의하면 선덕여왕 때에 사직단(社稷壇)을 세우고 경내(境內)의 삼산,

오악 이하의 명산 대천에 대()()()로 나누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중악(中岳)에 비겨 중사(中祠)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신라시대의 오악은 동악은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 남악은 지리산, 북악은 태백산이며

그 중앙에 팔공산을 중악(中嶽)으로 삼고 오악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 해온 산이다.

 

 

팔공산이라 불리는 것은 후삼국시대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에

고려 태조가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하였다.

그 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신숭겸과 김락(金樂)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팔공산은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이 웅자하며, 부근에 사적이 많아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공산에는 동화사(桐華寺은해사(銀海寺송림사(松林寺) 파계사 등 유명 고찰이 많은 산이다.

 

 

 

 

갓바위 오르는 길 목에 애자모보살상을 조그마한 동굴 속에 조성해 놓았다.

 

 

 

 선본사의 대웅전은 산 아래 본사인 선본사에 두지 않고 이곳 갓바위 오르는 길목에 조성해놓았다.

대웅전 앞 이 탑은 신라후기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갓바위 바로밑에 유리광전이 있다.

 @유리광전(琉璃光殿)의 유리광(琉璃光)은 동방(東方) 십항하사(十恒河沙)의 세계에 있는 부처를 말하며

약사여래(藥師如來)를 일컫는 말이다. 협시불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갓바위부처가 약사여래이기 때문에 유리광전을 조성한 모양이다. 잠시 전각 안을 들어가 보았다.

 

 

 

 

 

 

 

 

 

 

 

 

 

 

갓바위(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번지에 위치한 불교 석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되며, '갓바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산시 대한리에 위치한 조계종 직영의 선본사가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

 

 

 팔공산의 갓바위부처는 원광의 제자 의현(義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638(선덕여왕 7)에 이 여래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지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전설을 지고 있어

영험한 부처로 알려진 갓바위 부처를 참배하기 위하여 불자들의 발길이 사계절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음력 그믐날부터 새달 초이레까지는 하루 2,000명의 신도들이 참배한다고 한다.

 

 

 

자연석을 갓 모양으로 머리에 이고 있는 이 불상은

오랫동안 대구광역시 직인동의 태고종 사찰 관암사(冠巖寺)와 권리권을 둘러싸고 법정 시비를 벌인 결과

19711월에 법원으로부터 권리권을 확정 받아 지금까지 선본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갓바위부처해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자비로운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다소 올라간 어깨는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투박하지만 정교한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 놓았는데,

오른손 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한 손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았다.

그러나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항아리를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서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부처의 대좌는 연화문을 새기있는데 갓바위부처도 군위의 석불상과 같이

연화대좌 대신 대좌를 덮은 옷주름이 내려 앉은 형상이 특색이다.

이런 형태는 인도의 고대 불상에서 흔희 볼 수 있는데

이로 보아  통일신라의 불국사보다 이전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불상의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의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과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8세기의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불상의 위치는 대구광역시와 경산시의 경계선에서 1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고

대구시내버스 401번의 행선 표시판에 "갓바위"(시설지구 주차장을 의미한다)로 되어 있어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경산시에 속한다.

 

 

 

갓바위에서 바라 본 팔공산 전경

 

 

 

이 사찰은 용주사(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