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선본사(禪本寺)

2015. 12. 2. 21:04국내 명산과 사찰

 

 

 

팔공산 선본사(禪本寺)

팔공산 선본사는 천년고찰임에도 불구하고 팔공산 갓바위에 묻혀 갓바위를

참배하지 않은 일반인은 물론 불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선본사의 창건주는 신라 소지왕 13(491)에 극달화상이란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극달화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선본암중수기문(禪本重修記文)이라는 자료인데 그기에 극달화상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지만

 현존 여부가 파악되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사료에 의하면 창건주로 등장하고 있는 극달화상이라는 이름이

선본사와 인접해 있는 팔공산 동화사 관련 일부 문헌에 나타난다. 1931년 김정래가 지은

조선불교선교양종제일수사찰대본산경북달성군공산면동화사적비(朝鮮佛敎禪敎兩宗第一首寺刹大本山慶北達城郡公山面桐華寺蹟碑)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화사는) 생각컨대 극달존숙께서 부악(팔공산의 옛이름)의 남쪽 기슭에 창건하고 유가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때는 신라 소지왕 15(493)의 계유년이었다.

 

 

 

 

선본사는 그후 조선 인조 19(1614)에 수청 스님이 사찰을 중창하였고,

영조 41(1766)에 기성화상이 사찰을 중건했다.

순조 2(1802)에 조성된 신중탱화는 제작년도가 확실한 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불화가 선본사에서 조성된 후 갓바위 아래 지금의 전각으로 옮겨져 봉안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19세기 초반의 가람 구조가 지금과 유사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선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 491(소지왕 13)에 극달(極達)이 창건하였으며,

1641(인조 19)에 수청(秀廳)이 중창하였다고 하며 그 뒤 1766(영조 41)기성(箕城)이 다시 중건하였고,

1820(순조 20)에 운암(雲巖)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1877(고종 14) 낙허(樂虛)와 월인(月印)이 각각 중수하였고,

1957년에도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1985년 극락전을 중창하고 산신각·선방을 지었으며,

1990년에는 칠성각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팔공산 갓바위로 알려진 보물 제431호인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을 비롯하여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15호인 3층 석탑과 석등대석(石燈臺石) 등이 있다.

 

갓바위 부처라 불리는 이 석조불상은 정식명칭으로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이며

보합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보는 데 이견이 없다.

갓바위 부처는 원광의 제자 의현(義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638(선덕여왕 7)에 조성한 것으로 자연석을 갓 모양으로 머리에 이고 있다.

이 석조불상은 오랫동안 대구광역시 직인동의 태고종 사찰 관암사(冠巖寺)와 권리권을 둘러싸고

법정 시비를 벌인 결과 19711월에 권리권을 확정 받아 지금까지 조계종 직영사찰인 선본사가 관리하고 있다.

 

 

 

 

 약사여래좌상과 선본사 사이의 산릉선 상에 삼층석탑이 하나 있는데 이는 신라 후기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선본사 안에는 요사채 옆에 연화대석 및 석등대석이 있는데, 이들 또한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