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기행(6/6)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보는 다산초당

2015. 10. 13. 21:17국내 명산과 사찰

강진기행(6/6)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보는 다산초당

 

강진기행 마지막코스, 해는 이미 기울었지만 백련사에서 발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라 해서 들려보았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다산초당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공사 중이라 마을을 돌아가야 하는 불운을 만났다.

해 저문 시간에 비포장도로다. 설상가상으로 경운기 정도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산길이다.

행여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나면 빗겨갈 수도 없는 외길.

그러나 간사한 마음이 이 먼 길을 내려와 그냥 스쳐갈 수 있겠느냐고 꼰득거린다.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는 양평을 비롯하여 여러 곳을 둘러 본 적이 있어 날도 저물고 해서 포기할까 망설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길을 들어서니 다행히도 도중에 마주 치는 차는 없었다.

초당 오르는 입구에 닿으니 작은 매점 앞에 주차공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여기서부터 다산초당까지는 20분 거리다. 오르는 입구 매점 앞에 아담한 작은 한옥 들어서 있어 잠시 눈길을 돌려본다.

 

 

 

 

 

 

 

 

 

 

 

 

 

 

 

 

 

 

돌계단을 오르면 좌측에 보이는 것이 서암이고 정면에 보이는 것이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

@사적 제107(1963121)로 지정된 이 다산초당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 선생의 유배지다.

정약용선생은 다산을 비롯하여, 여유당(與猶堂) 등의 여러 호를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 이름으로는 요한(Johan)이라 하였다.

 

 

 

다산초당은 정약용(丁若鏞)선생이 순조1(180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 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이곳에서 11년 동안 머물면서 목민심서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 권에 달하는

많은 저서를 남긴 곳이다. 이를 총정리한 책이 여유당전서.

이 안에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어 학술적 연구자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서암

 

서암의 편액은 다리각으로 되어있다.

 

 

 

 

 

 

 

 

약천

 

 

 

세월 속에 묻힌 이 초당은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옛 초당을 복건 하여

이 해 사적 제107정다산유적지(丁茶山遺蹟)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정면 5, 측면 2칸으로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 1971,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다산초당(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 약천(藥泉),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연지석가산

 

 

 

 

 

 

 

 

 

 

 

 

 

 

 

 

 

 

 

 

 

 

 

 

 

 

 

 

 

 

 

 

 

 

 

 

아래사진은 매점 아래에 있는 어느 마을사람들 소유인 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