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기행(3/6) 월출산 정기를 품은 천년고찰 무위사

2015. 10. 5. 21:11국내 명산과 사찰

 

 

 

강진기행(3/6) 월출산 정기를 품은 천년고찰 무위사

 

@무위사(無爲寺)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절로

강진읍에서 북서쪽으로 16km 쯤에 자리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이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617)에 원효대사가

이곳 월출산 남쪽 기슭에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고,

875(헌강왕1)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고 개칭한 뒤, 많은 승려들이 주석하였다.

905(효공왕9) 선각(禪覺)3창하였다.

1407(태종7)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 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다.

1430(세종 12) 극락전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도 남아 있다.

1555(명종 10) 태감(太甘)선사가 4창하면서 무위사(無爲寺)라 하였다.

 

 

일주문 

 

이때의 당우는 본절이 23, 암자가 35개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찰이었으나,

 그 뒤 화재 등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당우는 최근까지만 해도 극락전, 명부전과 요사채 뿐이었으나

1678(숙종 4)에 극락전 앞에 괘불대를 조성하였고,

1739(영조 15)에는 해초(海超), 극잠(克岑) 등이 전각을 보수하였다.

 

 

 

 

1975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과 해탈문(解脫門), 봉향각(奉香閣),

천불전(千佛殿), 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였으며,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중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 뒤의 가로 4m, 세로 7m 크기의 후불탱화만이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한 노거사(老居士)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49일째 되는 날, 주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마지막으로 후불탱화의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새는 인기척을 느끼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후불탱화의 관음보살상에는 눈동자가 없다.

 

 

천왕문

 

이 밖에도 선각대사변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는 보물 제50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옆에는 석탑형식을 취한 보기 드문 부도가 있는데,

선각대사변광영탑(先覺大師遍光靈塔)으로 명명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미륵전 안에는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있다.

 

 

 

 

 

 

 

 

천왕문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전각이 보제루다.

 

 

@보제루(普濟樓)

절에 따라 만세루(萬歲樓구광루(九光樓)라고도 하나,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찰 중심 불전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모든 법요식(法要式)은 이곳에서 행하고 있다.

 

그것은 사찰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 등이 대중을 모두 수용할 정도로 넓지 못하다는 데도 원인이 있지만,

중심 불전을 마주 올려다볼 수 있는 누각에서 법요를 베푸는 옛 방식의 하나로서,

근세에 이르기까지는 이 누각에서 예불하고 설법회를 개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 초기 가람 형태에서 금당(金堂)의 뒤편에 배치되었던 강당(講堂)의 기능을 이 누각이 금당의 앞쪽에서 대신하게 된 것이다.

 

 

고대의 가람배치와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법회의식 등이 이 건물을 중심으로 진행됨에 따라,

공간 배치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절에서는 이 누각에서 법요를 개최하지 않고

각 법당에서 개최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침저녁의 예불까지를 이 누각에서 개최하는 사찰로는

부산의 동래 범어사(梵魚寺)가 있으며,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보물 제662호인 화암사우화루(花巖寺雨花樓)가 있다.

 

이 누각이 있는 절은 대부분 불이문(不二門)이 없으며 불이문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이 누각 옆에는 법회 등을 알리는 의식 용구를 보관하는 종각(鐘閣)이 있다.

무위사는 그래서 일주문만을 두고 불이문이나 해탈문을 따로 두지 않은 모양이다.

 

보제루를 벗어나면 바로 극락보전이 마당 앞에 보인다.

 

 

 

 

 

 

극락보전의 벽에는 벽화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보존각으로 옮겨 놓은 모양이다.

 

 

 

 

 

 

 

 

 

 

 

 

 

 

 

 

 

나한전

 

 

 

 

 

 

 

천불전

 

 

 

 

 

 

 

산신각. 편액의 글꼴이 회화적이다.

 

 

 

미륵전. 석불이 모셔져 있다.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수암마을에 방치된 것을 어느 독지가에 의해 무위사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여늬 미륵불과는 그 형상이 사뭇 다르다. 마치 순박한 시골의 여인상을 풍기는 듯하다.

제작연대는 고려말기로 추정되며 아랫부분이 마모파손되어 있다. 불상 크기는 218cm.

 

 

 

국보제13호 지정된 극락보전. 무위사의 중심 금당이며 극락보전 앞에는 괘불대와 배례석이 남아 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음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2001년 8월 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12호로 지정되었다.

 

아미타삼존불과 후불탱화

 

 

 

@배례석

사찰에는 주로 큰 법당 앞에 석등과 그 석등 앞에 직사각형의 돌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석등은 부처님의 진리를 밝히는 의미에서 세우고 석등 앞의 돌을 흔히 배례석이라 부른다.

배례석은 대부분 야외의 법당 정면이나 석등 바로 앞에 놓이는 것이 보통이나

사리신앙(탑신앙)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탑 앞에도 배례석을 두었다.

 

배례석의 형태는 직사각형인 것이 대부분이나

간혹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도 있으며 대부분 법당과 평행으로 놓여있다.

배럐석의 윗면에는 화려한 연꽃으로 장식된 것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도 있다 정면과 측면에는

상의 다리 즉 상각(床脚)을 의미하는 안상(眼象)무늬로 새겨져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안상은 석탑, 승탑,석등, 석비. 당간지주 등 여러 석조물에 나타나는 문양이다.

배례석(拜禮石)의 정확한 용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불교의 행사에 사용되는 일종의 판석으로 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놓는 판돌로

그 앞에서 자리를 펴고 배례한 것으로 생각된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의 석등 앞에 있는 배례석은

본래 향로를 올려놓는 봉로대(奉爐臺)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무위사의 이 배례석도 예불을 위햔 향로를 얹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때에 따라서 음식을 올려 공양하기 위함이 틀림없을 것 으로 추정된다.

 

 

 

@괘불대

불교 그림(불교회화)는 사찰의 건물을 장엄하기 위한 장엄용(莊嚴用)과 일반대중에게

불교교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교화용(敎化用), 예배를 드리기 위한 예배용(禮拜用)으로 그려진다.

그 중 예배용 불화는 벽에 그려진 벽화(壁畵), 벽에 거는 탱화(幀畵), 불교경전에 그려진 경전화(經典畵),

의식용 대형불화인 괘불(掛佛) 등이 있다

사찰에서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천도재(遷度齋) 등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는

 금당이나 법당의 장소가 협소하여 사찰 내 대웅전 앞이나 또는 넓은 야외에서 법회를 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법회를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야외에 만들어진 법회자리'라는 말이다.

 

흔히 여러 사람이 몹시 떠들썩하고 소란스럽게 법석을 떠는 것을 '야단법석'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아외에서 법회를 열다보면 불전 안에서 하는 법회보다

소란스럽기 때문에 생겨난 말인 것이다.

 

야단법석을 할 때는 법회 행사장 뒷편에 불화를 걸어 놓는 데 이 그림을 괘불이라 하며

괘불은 보통 10미터 이상의 대형 걸개그림이다.

괘불은 평상시 말아서 불단(佛壇) 뒤의 궤()에 보관하어 있다가 특별한 행사가 있을 경우

불전 앞마당에 괘불대를 설치하고 괘불이운(掛佛移運) 행사를 거쳐서 괘불대에 걸고 야외법회를 진행한다.

그러므로 괘불은 평소에는 보기 힘들고, 특별한 행사일 경우에만 볼 수 있는 의식용불화(儀式用佛畵)이다.

 

이 괘불은 주로 법당 앞 마당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긴 막대를 양쪽에 세우고

막대의 꼭대기에 장대를 가로질러 묶은 뒤 거기에 괘불를 매어단다.

괘불을 내걸기 위해 법당 앞에 세운 돌기둥을 괘불석주, 또는 괘불지주라 하고,

괘불을 높이 걸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대를 괘불대라 한다.

무위사의 극락전 앞의 이 괘불대는 1678(숙종 4)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 무위사 벽화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국보로 지정된 건축물이다. 내부의 벽화는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중 아미타삼존불과 수월 관음도는 극락보전에 있고 나머지 벽화는 보존각에 진열되어 왔다.

아미타삼존불은 4각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를 하고,

관음과 지장보살이 협시한 불화로서 매우 희귀한 걸작 예술품으로 알려져 있다.

수월관음도는 아미타삼존도가 그려진 벽의 뒷면에 그려진 불화로서

넓적한 얼굴, 굵은 목, 넓은 어깨 등 건장한 남성적 요소가 여실하다.

무위사가 보존각에 보관해온 극락보전(국보 제13)의 벽화 29,

상량보 1점을 포함한 30점의 벽화는 2006년 개관된 무위사 내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보존각의 문이 잠겨져 있어 관람하지 못하고 극락보전의 후불탱화로 위안을 삼고 이동했다.

 

명부전

 

 

 

 

 

 

 

 

 

 

 

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