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기행) 진천 농다리

2015. 7. 10. 21:40명승지

(진천기행) 진천 농다리

@중부 고속도로를 가다보면 진천부근에 인공호수가 하나 산위에 보인다.

이 인공호수 위에는 농암정이란 정자가 있고 그 밑에 미호천이라는 강을 가로질러 놓인 돌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 다리가 유명한 진천 농다리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위치한 이 농다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1976.12.21.) 로 지정되어 있는 다리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로 대표되는 진천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혀산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얽힌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명소 중 하나인 서호를 자랑하는 항주에도 이런 말이 있다.

살아서는 항주에 살고 죽어서는 북망에 간다는 의미로

생재소항(生在蘇杭) 장재북망(葬在北邙)이란 말이 있다.

북망산은 주나라에서부터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황재들의 무덤이 많다는 낙양성에 있는 산이름이다.

 

 

 

 

 

@진천의 농다리에 대한 기록은 1825년 발간된 상산지(常山誌)

조선말기 중요지리지의 하나인 조선환여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이 농다리는 물고기비늘처럼 쌓아 올리고 동양의 별자리 수 28을 응용하여 28칸의 교각을 세웠는데

그 형상이 멀리서 조망하면 마치 지네가 물을 건너가는 듯한 모습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농다리는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쌓아서 만들어진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라고 한다.

 28칸의 교각으로 축조된 이 다리는

지방유형문화재 28호로서 길이는 93.6m, 3.6m, 교각 1.2m 정도이며,

교각 사이의 내폭은 80cm 내외이다.

석회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다리는 고려 초엽시대의 권신, 임장군이 놓았다는 돌다리로 규모도 크고 축조술도 특이하다.

정자, 산책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된 수변데크 등이 조성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으며,

신비로운 다리모양과 주변풍경이 잘 어우러져 드라마 촬영지로도 등장한다.<출처: 문화재청>

 

 

 

 

 

[농다리에 관한 전설] 1화 용바위전설과 얽힌 설화

@고려 고종 때의 장군 임연(林衍)[?~1270]이 농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씨족들 간에 전해 오고 있다.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어느 몹시 추운 겨울 날 세금천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 하자

여보시오!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일로 내를 건너려 하오?”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은 .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임연은 추운 겨울에 내를 건너려는 여인의 효성이 지극하고, 또 그 정경이 딱해

 그러면 잠깐 기다리시오.”라고 말한 뒤 즉시 용마를 타고 달려왔다.

임연은 용마로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아 부인이 무사히 건너도록 하였는데,

이후 이 다리를 농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하며,

또한 바끈이 끊어져 용마에 실었던 돌이 떨어진 것을 그대로 두었는데

그 돌이 지금의 용바위라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설을 보면 나라 안에 큰 변고가 일어날 때에는 농다리가 며칠을 두고 운다고 하는데,

한일 합방 당시와 한국전쟁 시에도 농다리가 며칠 동안 울어

 마을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나라 안에 큰 변고가 있을 때 다리가 며칠을 두고 운다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 민중적 이데올로기인 정감록(鄭鑑錄)신앙과 연관이 있다.

농다리 전설에서는 다리가 울었다고만 나와 있으나,

다른 이야기에서는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다리의 돌이 떨어진다는 내용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농다리는 축조 당시 28칸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24칸만 남아 있다.

농다리 관련하여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

군사적 목적으로 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2화 임연 오누이 힘내기 설화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가 오기로 했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갔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온 것에 화가 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래도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자 떠내려갔다고 한다.

 

 

 

 

 

 

 

 

 

 

 

 

 

 

 

 

 

 

 

 

 

 

 

 

 

 

 

 

 

 

 

 

 

 

 

 

 

 

 

 

 

 

 

 

 

 

 

 

 

 

 

 

 

 

 

 

 

 

 

 

 

 

 

 

 

 

 

 

 

 

 

 

 

 

 

 

 

 

 

 

 

 

 

 

 

 

 

 

진천의 농다리 위에 이 인공폭포는 높이 80m, 24m로  2009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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