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기행 보련산 보탑사(2/2)

2015. 7. 4. 21:38국내 명산과 사찰

진천기행 보련산 보탑사(2/2)

 

 

 

 

 

 

 

 

 

 

 

 

 

 

 

 

선행당

 

 

 

 

 

 

 

 

 

 

 

영산전

영산전은 영산회상(靈山會上)이란 말에서 유래된 전각이다.

영산은 부처님이 성도후 법화경을 설하신 곳이다.

삼처전심(三處傳心)의 화두의 하나인 염화미소(拈花微笑)가 생긴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이 어느 날 설법을 하는데 하늘에서 4가지 꽃이 뿌려지자 부처님이 한 송이 꽃을 들고 대중에 보이자

모두 말이 없는데 오직 마하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이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涅槃)묘심(妙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고 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 거염화(擧拈花)로 줄여서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협시불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두는 것이 상례이다.

보탑사는 협시불 대신 5백나한상으로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백비

진천연곡리석비는 보물 제404(1964. 9. 3)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3.6m (전장) 높이 2.2m, 가로 0.8m, 세로 0.6m 로 조성된 석조 (화강암)물이다

 

 

 

거북받침(龜趺)위에 비몸(碑身)을 세우고 비머리를 얹은 일반형 석비로

비문이 없어 일명 백비(白碑)라고 불려 더욱 유명한 비석이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은 얼굴면이 손상되어 말머리같이 되었으며 앞 발톱이 파손되었다.

등 무늬(龜甲紋)는 정교하게 조각되어 단아한 느낌을 주고

비몸을 받치는 받침부분의 연꽃무늬는 잎이 작으면서도 양감이 있어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머리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려고 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거북모양 받침돌의 머리 형태와 비의 규모에 비해 얇은 몸, 옆으로 긴 네모꼴의 비머리형태 등

고려 초기 특징을 지니고 있다. 건립 연대나 양식상 월광사 원랑선사비와 비교 되는 작품이다.

~ 자료출처: 문화유적 대장~

 

 

연곡리의 이 백비를 세운 사유를 알수 없어 궁금했다. 알려진 백비로는  청백리 아곡 박수량(莪谷 朴守良)의 백비다.

그의 백비사유는 이렇다. <아곡 박수량 1491(성종)에 장성에서 태어나 24세에 급제하여 예조, 공조, 호조, 형조참판, 한성부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선비로 1554(명종) 때에 세상을 떠났다. 박수량은 38년 동안 정2품 벼슬까지 했는데 그의 집은 오두막이었고 고향으로 내려올 장례비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의 비()"박수량의 청렴은 모두 아는 것이다" 라며 명종 임금이 비를 하사하며 아무것도 새기지 못하게 하였다. 다만 박수량의 청렴을 기리는 비를 백비(白碑) 라고 한다.>라고 한다.

잡다한 설명을 다는 것이 도리혀 청렴한 선비의 격을 낮춘다는 의미에서 백비를 세운 이유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