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기행)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

2015. 6. 13. 15:33국내 명산과 사찰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해동용궁사는 한국에 이런 사찰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함께 잘 어우러진 풍광이 뛰어난 사찰이다.

내가 둘러 본 중국 숭산의 소림사처럼 유서 깊은 절도 아니요,

철관음으로 유명한 관음의 도량 복건성 하남의 남보타사와 같은 국보급의 보물이 없어도,

보현보살의 성지 아미산과 같이 화려하고 웅장한 그런 거대한 불상은 없어도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하나만은 결코 어느 중국사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국내 삼대 해조관음 도량으로 불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비교해 보아도

그 풍광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해동용궁사의 홈피에 의하면

이 절은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스님이 분황사(芬皇寺)에 주석하실 때 어느 해인가 나라는 가뭄에 고난을 겪고 있었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동해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우순풍조(雨順風調)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 한다고 계시하였다.

 

 

 

 

스님은 용왕의 계시대로 절터를 물색하던 중 이곳에 다달아 지세를 보니 앞은 광활한 바다요,

뒤는 푸른 산이라 이곳은 아침에 불공(佛供) 드리면 저녁에 복을 받는다는

背山臨水朝成暮福地(배산임수 조성모복지)였다.

스님은 이곳을 절을 세우시니 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되고 백성이 편안을 찾았다고 한다.

스님은 이 산의 이름을 봉래산(蓬萊山))이라 하고 절을 보문사(普門寺)라 명명했다.

 

 

 

 

봉래산의 유래는 신선이 강림한다는 동해바다 가운데 있다는 전설을 지닌 신비의 산이고,

보문사(普門寺)의 보문의 의미는 화엄경에 따르면

一門 가운데 일체법을 섭입(攝入)하는 것을 보문(普門)이라 한다고 했고,

佛菩薩(불보살) 신통의 힘이 無量門(무량문)을 개통하여 여러 가지 몸을 시현하여

일체중생을 원통(圓通)하는 것을 또한 보문(普門)이라 한다고 한 것에 유래한다.

그러므로 보문사는 관음보살의 보문을 시현하는 대일(大日)여래의 보문삼매라를 의미하는 것이며,

관음보살의 광대무변한 원력과 대비심을 상징하는 의미로 보문사라 한 것이라 생각된다.

 

 

@보문사는 그후 임진왜란으로 전소한 것을 1930년대에 통도사의 운강(雲綱)화상이 중창을 한 후

여러 스님을 거치다가 1974년 정암(晸庵)스님이 이곳에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하고자 원을 세우고 100일 기도를 드리는 중

회향(廻向) 하는 날 밤 오색 빛을 발하며 관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현몽하고 나서

옛 보문사(普門寺)를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해동용궁사는 일주문에 해당하는 연화문의 기둥의 용문양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용의 조형물이 많다.

 

 

 

 

해조관음 도량이라도 대개는 바다에 연해 있지만 해안에 근접하게 조성된 것이 아닌 것에 비하여

해동용궁사는 바로 바다에 근접한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수상법당이라고도 불리어 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강 뚝섬에 있는 수상법당처럼 흔히 강이나 바다 근해에 가교(架橋)을 만들어

물 위에 세운 이런 절을 일러 수상법당(水上法堂)이라고 하는 데

해동용궁사는 해안에 근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엄밀히 말해서 그런 사찰은 아니다.

 

 

 

 

@)해조관음(海潮觀音)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근본도량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남쪽 해안의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이며,

중국은 주산열도(舟山列島) 보타도(補陀島)의 조음동(潮音洞)이 관음성지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관음도량은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고

기도도량에 얽힌 설화와 영험설화들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으로는 남해 보리암,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서해 강화 보문사 모두 바다에 면해 있다.

특히 바다에 연해 있는 관음불을 내륙에 위치한 관음과 차별지어 따로 해조관음(海潮觀音)이라 부른다.

 

 

 

 

@해조관음이라 불리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해조음(海潮音)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해조음(海潮音)은 바다의 소리란 의미인데 이는 부처님의 음성을 큰 바다의 소리에 비유한 것이다.

불광대사전에 의하면 해조(海潮)는 생각이 없으나 그 때를 어기지 않음과 같이

부처님의 대비(大悲)하신 음성이 그 때에 따르고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는 하심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또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에는 부처님의 음성은 해조음과 같다고 하였다.

 

 

 

능엄경(楞嚴經)2에도 부처님이 자비심을 일으켜 아난과 모든 대중을 가엾게 여겨

해조음(海潮音)을 발하시어 같이 모인 모든 선남자에게 두루 일러 말씀하시었다라고 하였다.

장수(長水)의 의소(義疏)천고(天鼓)는 아무 생각이 없으나 사람을 따라서 소리를 내고,

해조(海潮)는 무념(無念)하나 그 때를 잃지 않는다.

이는 무연자비(無緣慈悲)를 나타내어 그 근기(根機)에 따라 설하신 것이요,

()을 기다린 뒤에 설()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럼으로 바다에 연하여 바라보고 있는 관음보살을 해조관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런 연유에 기인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학업성취보살이라고 하는데... 글쎄 경전에 이런 부처가 있는지 모르겠다.

 

 

갓바위부처인데 아직 공사중인가 보다.

 

 

@관세음보살의 소고(小考)

@관세음보살은 관세음(觀世音), 광세음(光世音),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관음(觀音)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의 이름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shvara)로 불리던

인도 불교의 남신(男神) 개념에서 출발했다.

인도의 아바로키테슈바라가 중국에서 관세음(觀世音)이 된 것이다.

아바로키테슈바라란 그 말의 자원을 <아래로(ava)><굽어보다(lokita)>,

그리고 힌두교의 시바(shivah) 신앙에서 절대자이자 통치자로 받들고 있는 신,

이슈바라(Ishvara)가 결합된 것으로 그 의미는 <세상을 굽어보는 절대자>란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 관음사상이 들어 온 것은 삼국시대에 인도로 법을 구하러 간 중국 구법승으로 부터 전수받아 전래되었다.

그런데 인도 불교의 개념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불교의 관음보살이 민속신앙과 결합하여

자손을 점지해주는 모성신으로 추앙받는 낭낭이란 여신과 동일시 되고

도교의 관음사상과도 결합하게 되었다.

민속신인 낭낭여신은 두 여신으로 분리되는데 벽하원군(碧霞元君) 즉 천선성모(天仙聖母)

내지 천후성모(天后聖母)등과 함께 민속신앙으로 받들어지는 여신이다.

중국을 여행하다가 보면 사찰에서 흔희 볼 수있는 송자관음(送子觀音), 백자관음(白子觀音),

백의대사(白衣大師) 등의 이름은 바로 민속신앙과 결합되어진 관음보살의 이명인 것이다.

 

 

(포대화상. 중국에서는 포대화상을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여기고 모시는 사찰이 많다.)

 

도교에서는 관음보살님을 노자의 제자로 여기며 남자이며 여래불로 대체되어

자항진인, 자항대사, 관음대사, 관세음보살, 원통자재천존 등으로 불리고 있는 데

이는 불교의 관음사상이 중국에서는 민속종교와 도교(道敎)의 관음사상과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자대비하여 중생이 그 이름을 외우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한다고 한다눈 관세음보살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따르면 이 보살은 극락정토에서 아미타불의 협시(脇侍)로서 부처의 교화를 돕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觀世音)은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는 뜻이고,

관자재(觀自在)라 함은 지혜로 관조(觀照)함으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는다는 뜻이다.

또한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時無畏者),

자비를 위주로 하는 뜻으로 대비성자(大悲聖者),

세상을 구제함으로 구세대사(구세대사)라고도 한다.

 

 

 

 

이 보살이 세상을 교화함에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체로 나타난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며 수능엄경에서는 32응신(應身),

법화경에서는 삼십삼신(三十三身)응신(應身)이 있다고 한다.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나타내며,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한 것을 뜻하고

그 봉우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

 

 

 

그 형상을 달리 함에 따라 육관음(六觀音: , 千手, 馬頭, 十一面, 準提, 如意輪) 등으로 나누는데

그 중 성관음(聖觀音)이 본신이고, 기타의 것은 보문시현의 변화신(變化身)이다.

통상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천수관음(千手觀音), 십일면관음, 32관음은 모두 변화신이다.

이 중에서 천수관음을 불상을 만들 때는 조형상 어려움이 따라 천개의 손을 42개로 만드는데 이를 42관음이라고 한다.

관음의 정토(淨土)를 보타락가(補陀落迦: potalata)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절강성 주산도(舟山島)를 보타락가라 한다.

 

 

 

@이러한 관음주처(觀音住處) 신앙은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기초하고 있다.

선재동자(善財童子)28번째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데, 그가 곧 관음이다.

관음보살은 남방 해상의 광명산(光明山), 곧 보타낙가산에서 상주설법하고 있었는데,

선재동자가 묻는 보살도(菩薩道)에 대해, 일체 중생들이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서원을 세워

대비법문광명행(大悲法門光明行)을 성취했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관음의 주처에 관해서는 경전집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육십화엄(六十華嚴)에서는 광명산으로, 팔십화엄(八十華嚴)에서는 보타낙가산으로 되어 있는데,

팔십화엄은 의상의 열반(서기 702)에 가까운 699년에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646년에 쓰여진 현장(玄奘)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포달낙가산(布達 洛伽山) 산꼭대기에 천궁(天宮)이 있어서 관자재보살이 왕래하며

뵙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타나 위유(慰喩)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타낙가산은 소백화산(小白花山)으로도 불린다.

삼국유사에서는 서역의 보타낙가산은 백의대사(白衣大士), 곧 관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서는 <소백화>라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 낙산사의 관음이나 여기 해동용궁사에서 보듯이 관음은 감로병을 들고 있는 데

이 감로병에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 감로수는 불사(不死)를 뜻한다.

영원히 죽음이 없는 불사의 물로써 중생의 열뇌(熱惱)를 깨끗이 씻어주고

사악한 기운을 서기(瑞氣)로 바꾼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관음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처는 아미타불이다. 관음은 아미타불을 본사(本師)로 삼고 항상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원통전의 후불탱화로서

주로 아미타삼존탱화를 모시게 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장소를 보아 여긴 분명 해조관음을 모셔야 더 운치가 낫을텐데 지장보살을 모셔놓았다. 방생을 위한 목적이었나?.

 

 

 

 

 

 

 

 

 

 

 

 

 

 

대웅보전의 부처님들,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모시고 있다.

우측 보살이 보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인 모양이다. 그러면 당연히 좌측보살은 아미타불이 된다.

이렇게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두분을 협시불로 둘 경우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부른다.

사찰에 따라서 연등불인 갈라보살과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을 협시불로 두기도 하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모시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는 것이 상례다.

 

 

 

 

 

 

 

 

 

 

 

@ 관음사상을 살펴보면

관음신앙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등 동양에 전래되었다.

관음사상의 주존인 관세음보살은 대승불교가 흥기하던 기원 전 1세기 경

인도불교사에 나타난 많은 보살들 중 한분으로 관음 특유의 신앙적 특징과 체계를 갖고,

기원 후 7-8세기 이후의 인도대승불교사의 시말(始末)에 걸쳐 큰 자취를 남기고 있다.

 

 

 

 

법현(法顯)A.D. 399년에 중국을 출발하여 인도에 갔는데,

그의 저서 불국기에 의하면(399-414), 대승교도들이 관음 등을 신앙했던 그리고

불법이 융성했던 당대의 서천축 마두라(摩頭羅, Mathurā)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관음을 신앙했던 사실들을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성하였다.

많은 보살상과 영험설화를 그 증거로 들 수 있으며, 특히 삼국유사에 보이는 관음신앙에 대한 기록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밖에도 의상대사가 동해안 관음굴에서

백화도량발원문 白華道場發願文을 짓고 기도정진한 결과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서

낙산사(洛山寺)를 세웠다는 등 고승들과 얽힌 설화들을 통해서도 관음신앙의 성행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요원(了圓)에 의하여 법화영험전 法華靈驗傳이 편찬되었는데,

이는 당시에도 관음신앙이 매우 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좋은 예가 된다.

 

@우리 나라의 관음신앙은 주로 화엄경·법화경·아미타경·능엄경 楞嚴經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관세음보살을 원통교주(圓通敎主)라 칭하고 33응신(應身)이라 표현하는 것은

법화경이 아닌 능엄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