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지본유(得之本有) 실지본무(失之本無) 제1부

2015. 6. 15. 21:03선시 만행 한시 화두

 

 

(홍련암)

 

득지본유(得之本有) 실지본무(失之本無) 제1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의상대사는 소리 소문없이

 

동해의 관음굴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백화도량발원문(白華道場發願文) 짓고 관음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져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보살이 이르는 대로 관음도량을 지으니 이 절이 유명한 양양 낙산사다.

 

 

 

(의상대)

 

황족이니 재벌이니 하며 태생적 족벌, 학벌, 지역주의를 내세우며

 

호사스러운 귀족불교에 젖어 있는 보수주의자를 타파하기 위해

 

거지들과 영세민구호자들과 함께 진보혁신을 외치며

통불교(通佛敎)의 깃발을 휘날리며

 

()을 치며 자작시에 작곡까지 한 창작 팝송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서라벌 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원효대사도 이 소식을 들었다.

 

SNS를 보았는 지, 비록 실패했지만 당나라로 유학을 함께 갈려던 라이벌 친구였으니

 

E-mail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서라벌 거리에서 이 소식을 알게 된

원효대사가 은근히 샘이 났던지

 

자기도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자랑하고픈 생각이 꿀떡 같았다.

 

그러나 요즈음처럼 총알택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가용이 있어 서라벌에서 양양까지 당일코스로 다녀올 형편도 아니다.

 

그렇다고 명색이 납승(衲僧)인데 말을 타고 가기도 해서 십일자에만 의지하여

 

관음보살 친견을 내심 기대하면서 양양으로 길을 떠났다.

 

 

 

 

양양에 거의 다다를 쭘해서 원효는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흰 옷 입은 한 여자를 만났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싶어 쉬어 갈겸, 젊은 혈기에 농기도 발하여

그 여인에게 벼를 달라고 수작을 걸었다.

 

여인은 잔잔히 미소를 머금고 벼가 아직 열매가 익지 않았다고 거절했다.

 

다 익은 벼를 어찌 덜 익었다고 했을까?

눈 밝은 이는 속뜻을 알겠지.

 

일단 이 이야기는 건너뛰고,,

 

 

 

 

 

또 가다가 어느 다리 밑에 이르렀는데, 속옷을 빨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목이 마른 원효가 여인에게 먹을 물을 청하자

여인은 물을 떠서 주었는데 물색을 보니 핏빛이다.

 

시세말로 강아지 다음으로 순위가 정해진 것이

요즘 집안에 있는 남정네들인데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생판 못 보던 낯선 사내가

 

그것도 백번 양보해서 율브린너(Yul Brynner) 사촌 정도라도 되면 몰라도

 

그것도 아니면서 희롱을 걸었으니 그럴 법도 했으리라.

 

 

 

(낙산사 관음)

 

시원한 포카리나 아쿠아생수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핏빛나는 물을 보고

 

원효대사는 건네 준 물을 버리고 물 한 바가지 조차 인색한 여인이구나하고

혼자 말로 투덜거리며

 

개울로 내려가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런데 소나무에 앉았던 파랑새 한 마리가

 

 제호(醍醐)를 싫다고 하는 화상, 제호를 싫다고 하는 화상이라 하면서

 조롱섞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제호란 요즈음 거리 상점에서나 노란색 까온을 입고

카트를 끌고 있는 아줌마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쿠르와 같은 것이다.

당시로 보면 최고의 건강식품이었겠지만... )

 

아마도 속뜻은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라는 사구게(四句偈) 같은데

 

어려운 말 제쳐두고 쉽게 말해 밥상 채려주었는데도

먹질 못하구나 하는 의미 일겠다.

 

 

 

 

 

무심한 원효대사

아니, 새가 사람 말을 다해? 브롱크스 동물원에 유학하여 특별과외수업이라도 받았나?하고

 

돌아보는 데 어느새 여자와 새는 사라지고 짚신 한 짝만 댕그란 히 남아 있었다.

 

거 참 요상한 일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떨처 버리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낙산사에 도착하여 관음상 앞에 이르니

관음상 밑에 냇가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짚신 한 짝이 있지 않은가.

 

달마의 짚세기도 아닌데... 번개같이 스치는 한 생각.

 

조금 전에 만났던 그 여자가 바로 관음의 진신임을 깨달았다.

 

아뿔싸,” 했지만 이미 고무신 거꾸로 신고 떠난 상태.

 

설상가상으로 관음굴로 들어가서 진신을 친견하려 하였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터벅터벅 서라벌로 돌아왔다고 한다. 서라벌에서 양양으로 그 먼 거리를

 

오직 관음보살을 친견하겠다는 일념으로 고생고생 하면서 왔다가 허탕치고

 

빈 손으로 돌아가는 원효대사. 역술가들의 회자하는 말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수고로우나 공이 없도다.” 라고 할까.

 

 

 

 

(보리암의 관음)

 

그 뒤 원효는 이를 설욕(?)하고자 수행을 더 정진하면서

새로운 관음처를 물색하던 중

 

남해를 면()한 현재의 금산(錦山)

관세음보살의 수월도량(水月道場)인 동시에

 

화엄경보광전회(普光殿會)의 관음회상(觀音會上)임을 확신하고

 

환희심을 가지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그 기도가 지극(至極)정성(精誠)이라

 

마침내 관음보살진신을 친견하였다.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원효대사는 683년에

이곳에 절 하나를 짓으니 그 절이 보광사다.

 

이 절이 바로 한국의 3대 관음도량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금의 금산 보리암(菩提庵)이다.

 

보리암의 옛 이름이 바로 보광사인 것이다.

 

 

 

 

벼 주기를 거절하고, 또 속옷을 빨던 그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진작 알았더라면 무엇을 얻고, 몰라서 잃었다면 무엇을 잃었을까?

 

 

 

처음 알아보고 나중에 못 알아보는 것과,

 

처음 못 알아보고 나중에 알았다면 그것이 무엇이 다를까?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戒)가 오직 마음뿐인 것을

 

 

 

심경(心經) ()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불법(佛法)의 진리를 깨닫고 설파한

 

해동불교의 원조라 칭송받는 원효대사가

 

득지본유(得之本有) 실지본무(失之本無)

 

요걸 알았을까? 몰랐을까?

 

눈 밝은 이 어디 없소? 한 소식(消息) 전해 주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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