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31. 22:10ㆍ국내 명산과 사찰
천안기행 천안삼거리공원과 흥타령
천안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이 천안 호도과자, 요즘은 독립기념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세대라면 단연 천안삼거리의 흥타령이 아닐까.
천안은 예로부터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충정을 오가는 삼도의 요충지로서 충청남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市)다.
삼국시대에는 동.서 도솔(東西兜率)의 땅이었으나 930년(고려 태조13)에 천안부로 개명하여 도독(都督)을 두었다.
「고려사」 권56 지(志) 권제 10의 나오는 전설에 의하면 술사(術師) 예방(藝方)이
고려태조에게 상계하여 천안은 삼국의 중심지로 오룡(五龍)이 구슬을 타투는 형세라
여기에 대관(大官)을 둔다면 백제(후백제)가 스스로 와서 항복할 것입니다 하여
태조가 산(王子山)에 올라 두루 관찰하고 비로소 부(府)를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천안은 각원사, 성불사라는 사찰은 물론
태조산, 왕자산등, 태조 왕건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이 눈이 띈다.
이 비는 능수버들과 용이 승천하는 기상을 상징하는 비라고 한다.
능수버들은 한국이 원산지라고 하며, 중국과 만주 등지에도 분포한다.
삼촌류(三春柳), 수사(垂絲), 정류(檉柳)라고도 부르며, 버드나무 꽃을 버들개지, 버들강아지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버드나무로 간주되는 능수버들은 천안 삼거리와 인연이 되어
능수버들 하면 흥타령에서 보듯이 천안의 상징물처럼 떠올리게 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용동의 천안 삼거리 공원을 중심으로
천안 시내의 길가 곳곳 가로수로 가꾸고 있었다는 데
지금은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가로수로 심은 능수버들이
정화작업으로 거의 잘려나가고 삼거리공원에서만 볼 수 있다는데
불행이도 철이 철이만큼 휘늘어진 능수버들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인생은 나그네길~ 」로 시작된 우리에게 한때 잘 알려진 하숙생이란 곡은 알만한 사람을 다 알고 있는 곡이다.
이 비(碑)는 천안삼거리를 배경으로 이 곡의 가사를 쓴 천안의 근교인 입장출신
방송작가 김석야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한때 뭇 사람들의 관심을 그렇게도 끌었던 곡이었는데
벌써 흘러간 아련한 추억 속의 옛노래로 기억되었으니...
노래도 인생살이도 떨어진 꽃잎 강물 따라 흘러가는 듯 하는구나
일제침략은 우리에게 많은 슬픈역사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참옥한 사건은 바로 천안참변이다.
천안의 참변(慘變)은 3.1운동 때 일본군이 천안의 시민군을 학살한 사건이다.
1919년 음력 3월 1일 천안 아내시장(지금의 병천시장: 並川市長)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군중 속에 일본군대가 난입, 기수(旗手)를 죽이고,
이를 항의하는 주모자 김구응(金球應)을 사살, 머리와 사지(四肢)를 난자하였으며,
이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그의 노모 채씨(蔡氏)까지 총검으로 찔러 즉사케 했다.
이에 군중은 흥분하여 일본군대와 충돌하고 다시 유중권(柳重權:유관순의 아버지),
이여사(李女史: 유관순의 어머니), 김상헌, 조인원, 유중오 등 다수 10여명이 참살 당하였으며,
유관순(柳寬順)은 이때 체포되어 뒤에 서울에서 옥사했다.
천안삼거리 흥타령
1)천안삼거리 흥 능수와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흥 휘늘어졌구나 흥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2)세월이 가기는 흥 흐르는 물같고 흥
사람이 늙기는 흥 바람결같구나 흥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3)배안의 동이는 흥 물을 부르고 흥
비봉산 가랑잎 흥 물에 어리네 흥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4)발그레한 저녁노을 흥 물든 저곳에
넘어가는 낙일이 물에 비치네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천안삼거리는 이 노래는 가난으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외면한 체
흥청망청 풍류만 즐겼던 당시 관철사 조성하에 대한 원망과 한을 담은 노래라고 한다.
또 전하는 이야기로는 전라도 고부 땅에서 과거를 보러 온 박현수 라는 선비가
삼거리주막에서 묵게 되었는데 적막한 밤에 한 가닥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와
그 소리를 따라 갔더니 아리따운 능소라는 여인이 가야금을 타고 있었다고 한다.
첫 눈에 반한 박현수는 그 능소와 혼인을 맺고 밀월을 보내다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 후 소식이 끊어졌다.
능소는 그가 낭군이 이별할 때 나무 막대기 하나를 주면서 이를 심어서 싹이 나고 잎이 나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약 없이 수절하며 기다렸다.
그가 떠날 때 정표로 남긴 나무막대에서 싹이 나고 잎은 드리웠지만 박현수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에 급제한 박현수는 이곳을 들리다가 옛날 자기의 여인이였던
능소가 수절을 하면서 지금까지 자기를 기다린 것을 알고는 다시 재회했다고 한다.
학수고대한 님을 만나 재회한 여인 능소는 기쁘고 흥겨워서 가야금을 타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이 천안삼거리라고 한다.
마치 이도령과 성춘향의 로맨스와 닯은 전설같은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각색되기도 해서 회자하지만
그 막대기가 바로 버들이라 천안삼거리에서 버들나무가 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능수는 이조초엽 경상도 함양에 주경야독하던 무관공신 유봉서의 딸로
왜구 침략시 나라의 명을 받고 출두 중 임지부임이 급박하여
부득이 7살 된 딸을 데리고 가지 못하고 천안삼거리 주막에 머물면서
그 딸을 주막에 맡기면서 이 나무를 심어서
잎이 나고 잎이 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 노래가 천안삼거리라고 불리는 것은 가사의 첫머리에서 나오는 천안삼거리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는 흥타령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노래 속에 「흥~ 흥~」하는 콧노래조의 소리가 나오는 것에 연유한다고 한다.
삼거리는 충청도민요라기 보다는 경기민요에 속하는 굿거리장단이라고 일컬어지며,
일설에는 흥타령의 발생지가 함경도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이는 광무대(光武坮) 시절 날리던 명창 명기가 여러 있었는데
흥타령은 보배와 진주라는 명창이 서울에 와서 부르기 시작한 뒤로부터 전해지게 된 민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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