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7. 07:03ㆍ국내 명산과 사찰
구례 화엄사(華嚴寺)
화엄사는 신라 경덕왕 13년(754)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된 화엄종 사찰로 도선국사의 도참설에 의해 중창하였고, 조선시대 <벽암각성>의 중창이후 선(禪)·교(敎) 양종 총림 대도량의 역할을 하였다는 명산 지리산에 세워진 한국 최대(最大) 최고(最古)의 사찰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으로도·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불자(佛者)가 아니더라도 철따라 풍기는 그 풍광에 취해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명소(名所)이며 고찰(古刹)인 화엄사다.
그러나 이번 구례기행은 당일 일정이라 사성암과 수락폭포만 보고 올라오려고 했지만 구례섬진강 벚꽃에 취해
내친 김에 욕심이 나 몇 곳을 더 둘러보아야 했기에 화엄사는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 되고 말았다.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이라, 나의 여행이란 언제나 돌출변수가 많은 것이 습(習)이라면 습(習)이라 할까.
삶이란 순연(順緣)하며 살아야 한다는 불타(佛陀)의 가름침으로 자위(自慰)하면서...
@연기조사에 대한 기록은 불교대사전에도 보이지 않고 다만『구례군화엄사기실(求禮郡華嚴寺記實)』에만 보인다. 이 책에 의하면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烟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는 범승(梵僧), 즉 인도 스님이라고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고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 도리가 없다. 또한, 연기조사의 명칭은 대체적으로 이 곳에 인연을 세웠다고 하여 연기(緣起)로 표기되고 있으나, 연기(烟氣) 혹은 연기(烟起)라고 쓴 기록도 없지 않다. 그 외에도 황당하긴 하지만 연기조사가 제비(燕)를 타고 우리나라에 왔기 때문에 연기(燕起)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구전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기록적으로 고찰할만한 것은 아니다. 사적(史籍)에는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할 때는 해회당(海會堂)과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지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화엄사가 화엄도량의 대총림이 아닌 소규모의 절집으로 추정된다. 화엄사가 창건된 지 100여 년 후인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화엄사를 크게 증축했으며, 이때 자장율사는 연기조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사사자탑과 함께 석등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관련 기록의 전부다.
금강문(金剛門)
천왕문(天王門)
만월당(滿月堂)
종각
보제루(普濟樓)
@각황전(覺皇殿)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
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각황전유래
지금의 각황전(覺皇殿) 자리에는 옛적에 장육전(丈六殿)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장육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고려 숙종 때 계파선사라는 분이 장육전을 증축하려고 했는데 마당한 도목수(都木手)도 재원도 부족하여 고심하던 중 어느 날 남 꿈속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르기를 내일 아침 두 개의 항아리를 준비하여 하나는 물을 담고 다른 하나는 밀가루를 담아서 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먼저 물이 든 항아리에 손을 담갔다가 밀가루가 든 항아리에 넣도록 해라. 그러면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이가 있을 테니 그 사람을 도목수로 삼아 절을 짓도록 하라는 현몽(現夢)을 받았다. 계파선사는 반신반의 하면서 날이 밝자 꿈에 신인이 이른 대로 모든 절 식구를 다 불러 시험했더니 어느 누구도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없었다. 물 묻은 손에 밀가루가 어찌 묻지 않겠는가. 그래도 계파선사는 실망하지 않고 혹 빠진 사람이 없는가 하여 시자(侍子)들어 다시 둘러보게 했더니 시자가 공양 간에서 일하는 불목한 한 사람을 찾아내어 다리고 왔다. 그를 보고는 실망했지만 그래도 신인의 계시인데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불목한에게 두 단지에 손을 담그도록 했더니 놀랍게도 손에 밀가루 한 톨 묻지 않았다. 놀란 계파선사는 다짜고짜로 그 불목한에게 절을 올리며 도목수가 되어달라고 간청했다. 절을 커녕 기왓장 하나 만들 줄 모르고 오로지 절에서 허드렛일만 하던 불목한이라 그 또한 황당하여 거절했지만 주지의 절까지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부터 절을 짓는데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절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날마다 걱정만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에서 일심으로 기도를 드리는 중 비몽사몽간에 문수보살이 현신하여 이르기를 내일 아침 일찍 산문 앞에서 만나는 첫 사람에게 시주를 받으라고 했다. 우직한 그 불목한은 의심 없이 그 계시대로 아침 일찍 산문 앞으로 나가서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지보다 더 초라한 한 사람이 올라오지 않는가. 자세히 보니 절의 신도도 아닌 절에서 먹다 남은 공양물이나 얻어 겨우 하루를 연명해서 살아가는 행려꾼이 아닌가. 그래도 불목한은 개의치 않고 그 사람에게 시주를 부탁했다. 한 끼 식사도 할 수 없는 비렁뱅이가 무슨 가진 것이 있어 그 큰 절을 지을 보시를 할 수 있겠는가. 불목한의 청탁을 받은 그 행려꾼은 나를 놀리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돌아 와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나의 처지를 분명 잘 알텐데 어찌 그런 부탁을 하겠는가. 인연이라면 고작 먹다 남은 공양물이나 얻어 먹은 것 밖에 없는데 하고 생각하다가 이승에 비렁뱅이라 어찌할 수 없으니 차라리 죽어서 황궁에라도 태어나 이 원을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연못에 뛰어 들어가 죽었다.
현몽의 계시대로 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자 허탈해진 불목한.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절 짓기는 요원하고 하고... 어떻게라도 해야 될 텐데 하는 생각으로 어딘가 그런 시주(施主)가 있을 것 같아 찾아보려고 무작정 한양으로 길을 나섰다. 한양에 닿으니 계절은 따스한 봄날이었다. 어느 꽃이 만발한 정원을 지나는데 갑자기 꽃밭에서 뛰놀던 한 소녀가 방긋 웃으며 달려와 안기지 않는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녀의 손이 펴지지 않는 불구였다. 유모로 보이는 함께한 여인에게 물었더니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다고 한다. 불목한 그 어린 소녀가 귀여워 손을 쓰다듬어 주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펴지지 않았던 손이 펴지지 않는가. 놀란 유모는 바로 돌아가 그 사실을 주인에게 알렸다. 그 소녀가 바로 숙종대왕의 딸이었다. 숙종대왕은 이를 기뻐하며 그 불목한을 찾아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마도 그 행려꾼이 공주로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하여 쾌히 보시금을 내렸다. 그 보시금으로 장육전을 증축하게 되었는데 황제의 성은(聖恩)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장육전을 각황전(覺皇殿)이라 했다고 한다. 여기 쓰인 각(覺)자는 깨달을 각이 아니라 밝힐 명(明)이란 뜻이다. 후일에 숙종대왕은 각황전이라는 친필 편액까지 하사했는데 지금의 편액이 그것이라고 한다.
@홍매화
화엄사 홍매화는 수령 300~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 증축기념식수로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하여 장육화(丈六花)라고 불리며, 붉다 못해 검은 색을 띄고 있어 흑매화라고도 불린다. 만개한 멋진 매화를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주일만 앞당겨 왔드라면...
원통전의 부처
초팔일이 가까워오나보다. 대웅전앞 연등이 화려하다.
가람의 구조 중 특이한 대웅전과 각황전은 <ㄱ> 자로 배치되어있다.
운고각
법고루
일일불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이라 오늘 나는 무엇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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