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9. 21:16ㆍ삶 속의 이야기들
지록위마(指鹿爲馬)
진시황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비록 폭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어느 누가 무어라 해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위대한 황제요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오늘날 그가 남긴 위대한 문화적 치적(治積)은 참으로 위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불행히도 그의 방대한 제국은 2대까지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자식에게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치욕적인 고사(古事) 성어까지 안겨다 준 불운한 황제였지만.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진시황은 37세에 제국을 통일한 후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 270개의 궁전을 짓고 일만 여명의 궁녀를 두었다고 한다.
그는 22명의 자식들을 낳았지만 어느 누구도 황비로 책봉하지 않았고
후계자인 태자도 책봉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순행 중 급사함으로 제국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
환관 조고의 농락에 떨어지게 된다. 갑작스러운 황제의 죽음으로
권력에서 밀려날 것을 우려한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와 연합하여
황제의 조서를 위조하여 장자인 부서를 살해하고
차남 호해를 황제로 등극시킴으로서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 조고의 야심은 승상 이사를 살해하고
더 나아가 자기가 앉힌 호해를 등극 시킨 지 2년 만에 죽이고 황제처럼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행사 했다.
21세에 황제로 등극하고 23세에 살해당한 불운의 황제 호해,
이를 두고 정녕 누구의 잘못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단지 황제가 황제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했다고 단정해야 할 것인가?
환관 조고의 치솟는 권세를 대표하는 사자성구가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다.
조고의 권모술수로 등극한 호해는 모든 정사를 조고에게 위임할 수밖에 없었고
문무백관이 모인 조회는 아예 참석치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권회복에 미련이 생겼는지 조회에 참석했다.
조고는 이를 황제와 자기에게 반 우호적인 대신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기회로 삼고
조회에 사슴 한 마리를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황제에게 물었다.
「페하 이 말이 어떠십니까? 」하고.
호해는 웃으면서
「아니, 승상 저것은 말이 아니고 사슴일세.」
그러자 조고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폐하,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사슴이 아니고 분명 말입니다.
의심이 든다면 여기 모인 대신들에게 한번 물어보시죠.」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진리라 해도 진리가 아닐 수 있고
세상사람 모두가 진리가 아니라고 해도 진리일 수 있다는 부처의 말을 호혜가 일찍이 알았다면,
유마의 침묵으로 훗날 자기에게 손을 들어 줄 대신들의 목숨만이라고 건져줄 수 있었을 텐데..
조고의 속뜻을 알지 못한 아둔한 황제 호해는 누가 보아도 분명 사슴인데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
내 눈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의심도 해 보았지만 조고의 말대로 대신들에게 이것이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조고의 속셈을 알아차린 대신들은 조고의 권세를 의식하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 어물쩍거리다 모두들 말이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생긴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古事)다.
백번 양보하여 작은 콩을 팥으로는 착각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 사슴이 말로 보였겠는가.
그렇게 무소불위(無所不爲)로 떵떵거리든 조고도 자기가 앉힌 2대 황제 호해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위조된 칙서로 자기가 앞서 죽인 진시황의 장자 부서의 아들 자영을
3대 황제로 다시 추대했지만 그 자영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던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무상한 것이 권력임을 몰랐다는 말인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는 말은 있지만,
아닌 것을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라 하지만,
극단적인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다면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생사의 갈림길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지록위마(指鹿爲馬)란 말을 그저 고사(枯死)된 말로 치부하기는 아쉬움이 남는다.
돈 때문에 가족과 부부 관계가 파괴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과 인기에 영합하고,
재물과 명예를 탐하여 빌붙어 뱉어내는 행위들이 바로 현대의 지록위마가 아니겠는가.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자아(自我)를 포장하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네 오늘날 삶이
어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저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돌아가는 구름 같은 인생여정을 생각할 때 또 한 번 하늘을 처다 보게 된다.
~영상/ 서안 진시황의 지하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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