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7. 01:07ㆍ삶 속의 이야기들
제비야 시비마라
일만 가지 세상일 무심히 웃어버리고
봄비 내리는 초당에 사립문 달았노라
밉구나. 발 밖에 새로운 제비야
한가한 나를 향해 시비를 말하라는 거냐.
만사유유이소운(萬事悠悠一笑惲)
초당춘우엄송비(草堂春雨掩松扉)
생증렴외신귀연(生增簾外新歸燕)
사향한인설시비(似向閑人設是非)
~작자 미상~
적반하장(賊反荷杖)
추적추적 비 내리는 지난 월요일. 은행에 볼 일이 있어 가까운 동네 은행으로 갔다. 지점에서 분리된 작은 출장소라 그런지,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대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기다리는 니 내 다니는 사거리 주거래은행 쪽이 빠를 것 같아 그리로 갈려고 돌아 나왔다. 그긴 지점이라 창구도 많아 여기 보다는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행을 나와 골목길을 돌아 건널목을 건너려는 데 큰 길 6차선에서 봉고가 좌회전해서 갑자기 돌진해 왔다. 급한 마음이 길 건너는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내 건너는 길은 좁은 이면 도로와 연결된 신호등이 없는 걸널목이다. 더구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는 스쿨존 지역이라 속도까지 제한 된 곳인데.. 간신히 큰 충돌은 피하긴 했지만 좌측 팔이 봉고의 조수석 범퍼에 충격을 입었다. 다행히 젖은 도로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봉고 측 운전수가 내리자마자 얼마나 다쳤느냐고 묻는 대신 막무가내로 큰 소리만 질러댄다. 왜 돌진해 들어와 좌회전하는 차를 받았느냐고. 내가 좌회전 하는 차를 쫓아와 고의로 부딪쳤다는 것이다. 허리까지 좋지 않아 구부정하게 걷는 나에게.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마치 지 애비라도 죽었는지 자기 혼자 계속 같은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댄다. 어이가 없다.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인간이다. 할 수 없이 경찰을 불렀다. 다친 팔에 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웬만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경찰서에서 사건조서를 작성하는데도 가해자인 봉고운전수가 너무 황당하게 떠벌리고 소리만 질러데니 담당 조사관이 내 신원조회까지 하고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니 그제서야 풀이 죽어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순진한 사람처럼 자기 과실임을 시인했다. 어떻게 보면 교활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의아할 정도로 단순한 사람이다.
인도에서 일어난 인사사고는 벌금이나 형사처벌이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제 조금 제정신 돌아왔는지 목소리까지 기어들어가는 것이 마치 몇 달 앓아누웠던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애원까지 한다. 조사관도 어이없어 하면서도 보기에 애처로웠던지 내게 선처를 부탁한다. 여태까지 많은 사람을 상대해 왔지만 이리 무식하고, 제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거기다가 자기 차도 아닌 남을 차를 빌려 쓰면서 배달을 하는 이런 막가는 사람을 처벌해서 무엇 하겠느냐는 것이다. 저런 인간을 법의 심판대에 맡겨야 하나. 괘심하기 짝이 없지만 불상한 인생 하나 봐 주어야 하나. 나이를 물어보니 쉰 넷이라고 한다. 나 보다는 10년이나 아래지만 저 나이에.. 이빨은 틀니까지를 하고.. 수입안경테 배달로 먹고 산다고 한다. 정식재판에 회부되면 벌금 200만원에 상처의 경중에 따라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조사관이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한다.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용서를 허락하기엔 너무 충격이 컸다. 마치 매스컴에 회자하는 자동차보험 사기꾼처럼 취급을 받았으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철모르는 어린애 억지 부리듯, 자기 행위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도 날 뛰었던 저 눈먼 불쌍한 중생을 어찌 비난할 수 있으랴 하는 생각도 든다. 겨우 쥐꼬리만 한 수당으로 그래도 살아가는 저 불쌍한 중생을 법의 심판대에 맡겨야 하나. 가련한 눈먼 중생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마음이 여려진다. 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지. 살다보면 이렇게 궂은 날도 있는 거야. 그래 이것으로 신년 액운을 때웠다고 생각하는 쪽이 마음 편하겠지 .. 홀로 자위하면서 조사관 건의대로 수락해주었다. 경찰서를 나오면서 꼬깃꼬깃한 지갑 속에 돈 몇 만원을 꺼내 죄송하다며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외관상 드러나는 것은 없어도 교통사고는 늘 후유증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뼈에 이상이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저 가련한 중생을 생각해 부담을 주기 싫어 자보가 아니 일반 의료보험으로. 통증은 있지만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병원에서 돌아 나오는 길 옛적에 읽은 경전의 부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부처가 설법을 위해 다니는 어느 마을에 부처를 미워하는 한 아낙네가 부처가 자기를 강간했다고 남산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보이면서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떠들어댔다. 여인의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처를 비난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러나 부처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 여인의 말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불룩했던 배는 바가지로 위장한 것이 탄로되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여인이 부처를 음해하고 험담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부처는 말이 없었다. 처음 비난받았을 때처럼.
작금의 이 혼탁한 세계에 죄를 묻는 대신
용서한다는 이런 행위가 대우(大愚)일까, 대현(大賢)일까..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법어(法語)로 과연 위로가 될까.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가 있어야지. 겨울인데도 가을비 마냥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을 걸어오면서 우울한 두 마음 달래본다.
부처가 이런 중생이 우굴 대는 이 사바세계에 왜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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