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來蘇寺) 기행

2012. 11. 26. 07:53국내 명산과 사찰

 

 

내소사(來蘇寺) 기행

 

능가산(㘄柯山) 관음봉(觀音峰) 기슭에 위치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 스님이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요」라는 원력으로 세운 절이라고 한다.

 처음 이 절을 세운 때는 대(大)소래사와 소(小)소래사를 세웠는데

대소래사는 소실되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가 남아 전한 것이라고 한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이름이 바뀐 것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중국의 소정방이 이 절을 찾아 시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개명했다고 하는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내소사는 오랜 세월에 걸처 중건(重建)증수(增修)를 거듭해 오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된 절을 조선 인조 때에 청민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인조 11년(1633)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인조 18년(1640)에 설산당과 요사채를 중건하였다.

그후 광무 6년(1902) 관해선사와 만허선사의 증축이 있었으며

 내소사의 오늘을 있게 한 해안선사(海眼禪師)가 1932년 내소사에 자리를 잡고

절 앞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무취학(無就學) 아동들과 무학(無學)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문명퇴치운동을 벌이고 서래선림을 개원하여 호남불교의 선풍(禪風)을 이르킨 고찰이다.

이후 우암 혜산선사가 선풍을 이어 봉래선원을 신축하고 현재의 대가람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왕문

 

 

 

 

 

 

 

 

 

 

 

 

 

 

 

 

설선당(說禪堂)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25호 지정된 설선당은

인조18년(1640) 청명대사(淸映大師)가 승려들과

일반 신도들의 수학정진 장소로 사용하가 위해 창건한 것으로

뒷산이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오른 쪽 지붕을 낮게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문틀을 곡선으로 하여 출입에 불편을 없게 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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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대웅보전에 얽힌 설화 하나.

대웅보전을 짓기 위해 목수가 좋은 재목만 골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갖 정성을 드려 대들보를 받치는 목침을 만들고 있었다.

절의 한 사미승이 이를 보고 은근히 심술이 나서 목침 한 개를 감추어 버렸다.

이를 알지 못한 목수는 법당을 지을 때가 되어 목침을 세워보니 딱 한 개가 부족하지 않는가.

목수는 탄식을 하며 큰 스님을 찾아가

「큰 스님, 법당을 지을 제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제 경계가 부족하여 목침하나가 모자랍니다.」라고 하자

큰 스님 「목침이 그대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 서둘러 법당을 지어시게.」라고 했다.

그래서 목수는 법당을 지었지만 법당 안

남쪽 공포 한 가운데에 목침하나가 모자라 빈 곳을 그대로 두고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법당 남쪽 공포에 목침이 들어갈 한자리가

비어있다고 한다. 만월보다 초생달을 선호하는 아랍의 격언이 문득 생각난다.

 

 

 

 

대웅전 꽃살문

전국적으로 그 아름다움이 잘 알려진 내소사 대웅전 꽃살문이다.

빗국화꽃살문, 빗 모란연꽃살문, 솟을모란연꽃살문,

솟을연꽃살문 등이 살아움직이는 듯 하며 더욱이 처음 조각한 후

 400여년의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부식되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그 아름다움과 무상(無常)한 세월을 한층 더 일깨우고 있다.

 

「한국 불교예술의 정수라고 표현되는 사찰의 꽃살문은

 세계 어느 나라 건축물에서도 좀처럼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예술성이 깃든 조각품이며,

특정 종교의 예술로서의 가치를 넘어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법당의 문은 중생이 이승의 티끌을 털고 부처의 극락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이기에,

불교에서 최상의 장엄을 표현하는 ‘꽃’으로 장식돼 있다.

석가모니 부처가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것도 ‘꽃’이고,

최고 경전인 법화경과 화엄종의 명칭에서도 꽃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꽃은 법이요 부처의 진리이며 극락이다.

 

경건한 불교 신앙심이 민중 속으로 다가가 고려불교의 귀족적인 긴장감은 사라지고

 소박하고 단순하며 따뜻한 정감이 서린 ‘꽃살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한국성을 지닌 문화유산이다.

사찰의 꽃살문은 대부분 부처를 예배하는 법당의 출입문에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를 경배하는 최고의 공양물이 꽃이기 때문이다.

 또, 꽃살문은 부처와 중생을 이어주는 엄숙한 경계를 치장하면서도

그 안에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삶과 같은 순수함과 담담함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극락의 문, 우리의 꽃살문은 아름다움과 장엄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꽃살문은 격자살문과 빗살문, 솟을살문 등 전통 사찰의 출입문에 새겨진 다양한 무늬를 말하며,

주로 교살문, 격자문살의 교차된 부분에 꽃무늬를 붙여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우리네 꽃살문은 단순한 형태의 날살문과 띠살문부터 가장 화려한 솟을꽃살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문틀 안에 세로로 살을 지른 형태로 장중하고 단순한 주심포 맞배집에 어울리는

 ‘날살문’과 널판에 모란, 연꽃, 새, 자라,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들을 투조하여 새긴 ‘통판투조꽃살문’,

또 아(亞) 귀(貴) 용(用) 등의 글자를 본떠 만든 ‘문자꽃살문’,

사각형의 빗살을 상하좌우로 서로 잇대서 배열한 것으로

주로 승방이나 요사채에 사용되고 있는 ‘숫대살문’ 등이 유명하다.


 

이밖에 날살과 띠살을 같은 간격의 사각형으로 짠,

일명 정자살문 또는 우물살문이라고 하는 ‘격자살문’이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격자살과 빗살을 주로 하여 여러 가지 살을 혼용한 ‘솟을꽃살문’,

솟을살의 교차되는 부분에 모란, 국화, 연화 등의 꽃들을 도드라지게 새긴 ‘격자빗살문’ 등도 눈길을 끈다.」

<출처: 블록/한국문화스토리/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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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법당

 

조사전

 

삼성각

 

지장전

 

 

 

 

 

 

 

 

멋진 사람/해안 대종사(海眼 大宗師)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친구가 있다면

구태여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맑은 새벽에 외로이 앉아 향(香)을 사르고

산창(山窓)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불경(佛經)을 아니 외워도 좋다.

 

봄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

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

구태어 시(詩)를 쓰는 시인이 아니어도 좋다.

 

아침 일찍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蘭) 잎에 손질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어도 좋다.

 

구름을 찾아가다가 바랑을 베개하고

바위에서 한가히 잠든 스님을 보거든

아예 도(道)라는 속된 말을 묻지 않아도 좋다.

 

야점사양(野店斜陽)에 길가다 술(酒)을 사는 사람을 만나거든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가 다정히 인사하고

아예 가고 오는 세상 시름일랑 묻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