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느낀 경복궁 향원정(1/2) 멋

2012. 6. 6. 16:51명승지

 

유월에 가보는 경복궁(景福宮) 향원정(香遠亭)(1/2) 

 

고궁의 멋은 여름은 별로이고 단풍든 가을이나 백설이 덮은 겨울철에 가 보아야 운치가 더하고 또 고궁의 그 멋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지난달 야경촬영을 나갔다가 시간에 쫓겨 미처 둘러보지 못한 향원정에 대한 미련을 차마 떨치지 못해 다시 경복궁을 찾았다. 경복궁은 확실히 가을이라면 주변의 단풍과 어울러져 그 풍미를 더하겠다 싶은 생각은 든다.  그러나 여름은 여름 대로 또 다른 운치가 있는 것은 고궁 풍미기 아닐까. 유월의 짙은 푸르름 속에 갖피어 나는 연꽃 하며 그 사이를 자유롭게 부유하는 잉어들의 유희.. 유월에 찾는 경복궁의 색 다른 맛이 아니겠는가.   

 

                                                         향원정(香遠亭)

함하당과 집경당 북쪽 후원 영역에 조성된 네모난 연못, 향원지 그 가운데에 세워진 향원정(香遠亭).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향원정은 세조 때 취로정 터에 건청궁을 지으면서 조성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조 2년 경복궁 후원에 <취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지금의 향원정 북쪽 경복궁 가장 깊숙한 뒤쪽에 건청궁이 자리하고 있는데 고종이  이 건청궁을 지을 때 후원인 서현정 주변에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건청궁은 고종이 1873(고종10)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지적 자립의 일환으로 세운 궁이다.

향원정에는 목조 다리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사진 속에 보이듯 향원정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1873년 고종이 건청궁(乾淸宮)을 지을 당시는 북쪽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건청궁과 이어지는 다리를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이 다리는 육이오 전쟁 때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건청궁은 원래 역대 선조의 어진 (御眞:초상화)등을 보관할 목적을 지어진 이유도 이었지만 을미사변 직전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소로 이용되었다. 또한조선에 최초의 전기를 들여온 것이 건청궁이라고 한다. 당시 낙후된 기술력으로 전기불이 자주 나가 전기를 <건달불>이라고 했다던가.... 또한 이곳은 일제 시대에는 조선총독부미술관이었다가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 1998년 철거되 2004년 6월에 복원되었다. 향원정은 현재 보물 제1761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원정의 이 다리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가장 긴 목조 다리로 취향교(醉香橋)라고 하는데 지금은 남쪽에 있지만 원래는 북쪽에 있어 건천궁 쪽에서 건너게 되었다고 한다.  

 

 

 

<향원정>이란 정자명은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지은 애련설에 나온 말로서 연꽃은 향기가 멀수록 맑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이란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아직은 철이 이른지 몇송이 여린 노란 연꽃이 그래도 향원정의 풍미를 자아낸다.

 

 

애련설(愛蓮說) /주돈이

 

 

水陸草木之花(수륙초목지화)이,

可愛者甚蕃(가애자심번)이나

 

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獨愛菊(진도연명독애국)하고,

自李唐來(자리당래)로,世人甚愛牡丹(세인심애모단)이나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어니이부염)하며,

濯淸漣而不妖(탁청련이부요)하며,

中通外直(중통외직)하며,不蔓不枝(부만부지)하며,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淸(향원익청)하며,

亭亭靜植(정정정식)하야,

可遠觀而不可褻翫焉(가원관이불가설완언)하노라.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좋아한다.

 

 

 

 

 

予謂菊(여위국)은,花之隱逸者也(화지은일자야)오,

牡丹(모단)은, 花之富貴者也(화지부귀자야)오.

蓮(연)은,花之君子者也(화지군자자야)라하노니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噫(희)라! 菊之愛(국지애)는,陶後鮮有聞(도후선유문)하니

蓮之愛(연지애)는,同予者何人(동여자하인)고

牡丹之愛宜乎衆矣(목단지애의호중의)로라.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주돈이(周敦頤 1017~1073)  도가사상에 영향을 받은 송나라 유학자.

 

 

 

 

향원정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따라 사각으로 연못을 만들고 둥굴게 섬을 만들어 정자를 세웠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의 내정간섭을 시작한다. 이에 친러정책을 구사하며 일본에 정면으로 맞섰던 명성황후는 건청궁에서 참혹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1895년 10월 8일(음력8월20일) 일본공사관직원, 일본군, 일본깡패들이 건청궁에 난입하여 황후를 찔러죽이고 그 시신마저도 녹산에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이 명성황후의 시해사건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비운의 명성황후 시해가 화장되어 그 유해가 뿌린 곳이 바로 여기 항원지라 한다. 오늘날 서울을 찾는 일본인들은 여기를 빼놓지 아니하고 방문한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말해야 하나, 무상한 세월 탓이라 말해야 하나..

 

 

 

 

 

 

 

 

향원정은 조선 최초의 스케이트장이 되기도 했다. 영국왕립지리학회의 여성회원인 버드 비숍의 저서 <조선과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ars>에 의하면 고종과 명성황후를 위해 선교사들이 스켜스케이트의 시연을 여기 향원정에서 했다고 한다.

 

 

 

향원전의 발원은 열상지원(洌上之源)다. 이는 물이 물이 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집옥채가 있는 곳에서 흘러내린다. 한강을 일명 <열수洌水>라고 하는데 열수라는 말도 이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지리학적으로는 한강의 근원은 태백시 금릉소이다. 열상지원의 물은 춘당지로 돌아서 향원지로 흘러 들어가게 만들었는데 이는 찬물에는 물고기가 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한다. 선조들의 세심한 지혜가 엿보이게 하는 연못이다.

 

 

 

 

 

 

 

 

 

 

 

 

 

 

 

 

 

 

 

 

 

 

 

 

 

 

 

 

 

 

 

 

 

 

 

 

 

 

 

 

 

 

 

 

 

 

 

 

 

 

 

 

 

 

 

 

 

 

 

 

 

 

 

(경복궁 향원정에서 201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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